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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영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변천과정 (배장오의 `한국 대학입시제도에 관한 연구'에서 발췌)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변천과정 (배장오의 `한국 대학입시제도에 관한 연구'에서 발췌) ⓒ 노태영
현행 수능시험은 암기위주의 교육결과 평가에서 고등정신 능력평가로의 전환을 시도한 입시제도로 미국의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본떠서 만든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SAT에서는 적성(Aptitude)를 강조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능력(Ability)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래서 적성이 아니라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된 것이다. 수능시험의 경우만큼 논란이 많은 시험도 드물 것이다.

수능시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능시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과서 외에서 출제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밖에서 문제를 내는 수능시험은 내신 성적과 겉돌면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학교 정례고사는 수업시간에 다룬 내용을 평가하는데, 수능시험은 학교에서 직접적으로 배운 내용이라기보다는 통합교과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한 문제가 나온다.

예를 들면 영어교과의 경우 수능시험에서는 교과서 지문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이 전체적인 이해를 요하는 문제를 내다보니 학생들이 구체적인 암기보다는 피상적인 이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은 문법문제와 어휘문제가 출제되어 학생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암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3∼4문제는 포기하거나 운에 맡기려는 자세를 보인다. 수능시험 이전의 학력고사는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는 물론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푸는 문제가 거의 대등하게 출제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 일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현재의 수능시험은 예외적인 면이 많다. 학교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머리가 좋거나 눈치가 빠른 학생이 정답을 찾기 쉬운 문제가 바로 수능시험문제다. 물론 전부는 아니어도 실제도 그런 사례가 많다. 상대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시험도 평가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학습이다. 시험은 학습자가 알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내재화 과정인 것이다.

결국 학생들이 학교교육의 내신성적보다는 대학입학의 비중이 큰 수능시험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논술시험이 강화되면서 내신 성적의 실질 반영률은 더 줄어들게 되면서 공교육의 붕괴는 심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논술시험이나 수능시험을 학교에서 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학교와 교사의 논술과 수능시험을 위한 준비의 부족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은 입시교육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식중심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과 전인교육, 생활지도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즈음 학교는 이 둘 다는 놓치고 있다.

학교의 입시교육은 사교육에 이미 많은 부분을 뒤진 상태이고 입시교육이 심화하면서 인성교육이나 전인교육도 놓치고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적으로 지속하면서 학교는 학원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바로 학교의 학원화가 공교육 붕괴의 현주소다. 사교육과 공교육은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공교육이 사교육을 흉내면서 공교육이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물론 이는 사회의 왜곡된 교육요구와 학부모의 그릇된 교육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공교육 위기 부채질하는 입시제도...대학교육에 전혀 도움 안돼

서울대 논술고사가 강화되면서 이미 학교와 사교육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논술 사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논술 시장의 규모가 1조2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고, 최근 생겨나고 있는 학원의 80%가 논술학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입시제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이 이렇게 팽창되면 공교육은 그만큼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결국 대학 입시제도가 공교육을 활성화하기보다는 공교육을 위기로 몰아넣는 꼴이다.

대학들이 '우수학생'만을 손쉽게 뽑으려는 전략에 초·중등학교의 학교교육이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격이다. 교육의 연속성과 학교 교육력의 제고를 위해 대학이 초·중등학교를 우선 고려하는 안목과 사려가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경쟁적으로 공교육 위기를 부채질하는 입시제도는 장기적으로 대학교육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일탈적인 행위와 비인도적 행위가 젊은이들만의 책임이나 탓만이 아니라 더 넓게 보면 가정과 학교교육 더 넓게는 사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결국 학교도 사회도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안위도 위협을 받게 된다.

입시제도는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 사회의 정의에 부합되어야 한다. 사교육을 늘리는 입시제도나 기득권을 유지해 주는 입시제도는 바람직한 입시제도라고 할 수 없다. 갈수록 심해지는 사교육비 증가가 가져오는 사회적 부작용과 입시교육의 과열을 부채질하는 입시제도는 국민적 합의에 의해 개정되어야 한다.

사교육 열풍이 망국병이라는 말은 70년대 중반부터 존재해 왔다. 더욱 심화하는 사교육 병폐를 막기 위해 입시제도가 전반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물론 사교육이 모두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사교육이 진짜 필요한 학생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과잉교육이고 입시경쟁의 부산물일 뿐이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내신 성적의 실질 반영률을 높여야 한다. 내신 성적의 조작이나 부정행위는 법으로 엄격하게 다스리면 된다. 신뢰성이 높은 내신 성적은 신뢰성과 타당성을 높이면 다른 어떤 평가보다 객관적이고 타당성이 있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능시험도 교과서 내에서 출제를 해야 한다. 교과서 내에서 출제하더라도 교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영어교과의 경우 한 학년에 18개종이나 된다. 또 고2·3학년 때, 심화선택까지 합하면 수백 개가 넘는 교과서가 존재한다. 굳이 교과서 지문을 제외한 문제를 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를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출제방침을 바꿔야 한다.

왜곡된 입시교육·경쟁교육은 지양돼야

입시제도의 변화는 이해관계에 따라 호불호가 결정된다. 나에게 유리하면 찬성하지만 나에게 불리하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수도권 집중문제나 지역발전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내신 성적의 상대평가를 통한 실질반영률을 높이는 것이다.

강남 8학군에 집중된 우수학생이나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동일계 지원이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교평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학에 자율성을 주면서 내신 성적의 일정비율 반영을 의무화하면 된다. 지나친 성적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비교과의 평가를 내신 성적에 점수화하여 반영하면 인성지도와 생활지도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시문제나 교육문제가 단순한 해법으로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교육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표는 인간성 회복과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입시교육과 경쟁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백년대계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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