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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교육과정의 수업 이수단위표
7차 교육과정의 수업 이수단위표 ⓒ 노태영
그러나 시행초기부터 교육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바로 수요자 중심교육이라는 수준별 선택형 교육과정과 학생의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과목을 통폐합하여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 과목은 줄이고 전문교과에 대한 심화선택 과목은 늘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인적·물적 자원의 과감하고 체계적인 투자와 교사에 대한 재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준비가 부족했다. 그리고 단위학교와 교사들 차원에서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준비를 소홀히하였다.

게다가 수준별 선택형 교육과정의 적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수·학습방법과 교수·학습자료 활용에 대한 교사들의 전문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나 투자는 미약한 수준에 머물렀다. 결국 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교육과정은 학부모나 사회의 교육적 요구에 대한 립서비스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공교육 위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였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상위 학생을 위한 '특강반'

7차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요구와 자율성은 크게 확대하였지만, 학생들의 책임이나 학생의 유급(留級)은 대부분이 완화되거나 폐지되었다.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은 자율과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단계형 수준별 수업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수학 교과는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10단계, 영어교과는 7학년부터 10학년까지 4단계를 각 단계별로 학기 단위로 학습성취도에 따라 2개의 단계를 설정하여 단계형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되어있다.

단계형 수준별 교육과정은 일정한 학력을 성취하지 못하면 외국 여름학교(Summer school)처럼 보충 교육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다음 상위단계로 진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과정은 입시에 대한 학부모의 왜곡된 시각과 학생들에게 유급이 가져다주는 패배감이라는 암초에 걸려 슬그머니 사라지고, 현행과 같은 수준별 이동수업이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수준별 이동 수업에 대한 우리 학교(남성고) 아이들의 생각은 학교나 교육부의 의도와 완전히 다르다. 이야기를 나누어 본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학교가 재미가 없어요. 수준별로 이동수업을 하기 때문에 저희 같은 C반 학생들은 왠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솔직히 선생님들도 C반에서 수업하실 때는 열의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수준별 이동수업 때문에 우리 반이 우리 학급이라는 친근감이 들지 않아요. 담임선생님도 그렇고요.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청소도 안하고 친구들도 멀게 느껴져 나 혼자라는 생각을 갖게 돼요.”

“수준별 이동수업이 아니라 우열반 수업이나 마찬가지예요. 과목별로 이동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과목 성적으로 하기 때문에 성적순으로 반을 나누잖아요. 솔직히 기분이 별루예요.”


공교육 위기에 기름을 부은 7차 교육과정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교육개발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것처럼 수준별 이동 수업은 학습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또래간 동기부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입시교육 위주의 학교교육 탓으로 학생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하위학생들의 학습의욕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러한 학습의욕 저하는 결국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외면을 가져왔고, 수준별 이동수업은 소수의 상위학생을 위한 특강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7차 교육과정의 다양한 전문교과
7차 교육과정의 다양한 전문교과 ⓒ 노태영
7차 교육과정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소기의 교육적 성과를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공교육 붕괴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공통 필수과목이 줄어들고 입시과목이 축소되면서 7차 교육과정에서 많은 과목들이 수능시험과 관련이 없는 과목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공업과 기술과 같은 실업계 과목, 예체능 과목, 수리탐구영역 Ⅱ의 비 선택과목, 제2외국어(2002년 채택)와 한문(2005년 추가) 등이 해당된다.

이런 수업을 학교에서는 편법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이들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나 학습밀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공교육을 등한시하는 경향을 가져왔다. 전문교과나 심화교과는 늘렸지만 실제 학교현장에서 오히려 국영수 과목에 집중되고 있다.

한 공업교사는 “부끄럽지만 수업시간에 자율학습을 시킵니다. 3학년이기 때문에, 입시와 관련이 없는 과목이기 때문에 수업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싫어합니다. 또한, 학교 운영자들도 싫어하는 눈치고. 참 처참한 기분이 듭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한 학교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사례로 들어보면 영어와 수학만 단계형 수준별 교과과정을 편성하도록 되어 있으나 전과목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수준별 반 편성도 내신성적과 수능 모의고사 점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과목별 수준을 고려하도록 되어 있는 본래의 취지와 어긋난다.

8차 교육과정 수립에서 타산지석 삼아야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가방만 본 반에 놓고 수준별 이동반으로 가서 보충수업을 받고 정규수업을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자율학습을 하는데 1, 2학년은 도서관 열람실을 이용하고 3학년은 본 반에서 자율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이렇다 보니 학생과 담임교사와의 인간적인 관계나 상호작용이 일어날 공간이나 시간이 없다.

이에 대해 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과 상담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니 거의 없어요.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주말이나 휴일을 활용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학급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다양한 모둠 활동이나 학급활동을 통해 인간적인 만남이 가능했어요. 우리 반 아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질 못해서 그런지 서먹서먹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라고 하소연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체제에서 학급운영은 담임이나 교사로서 대단히 중요한 책무이자 필수적인 자질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활동에서 다른 나라에 내세우고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학급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학급단위 활동이나 학급운영의 가치마저도 수준별 이동수업은 상실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중요한 영역인 인성교육이나 전인교육은 학급활동이나 담임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이 전 과목으로 확대됨으로써 우열반 편성이 고착화되었고, 이러한 학급편성은 학생은 물론 교사들 간에도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학급활동의 특성을 없애는 부작용을 만들어내 같은 학급이라는 동질감이나 연대감이 약화되어 담임선생님의 학급운영이나 장악력이 떨어져 인성교육이나 생활교육이 어렵게 되었다. 학급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훌륭한 학급운영이 가져오는 많은 긍정적인 효과들이 반감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7차 교육과정의 이념이나 방향은 옳았을지 모르나 입시가 최우선인 우리나라의 교육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변화 사회와 지식기반 사회에서 개인의 자질과 개인의 차이를 고려한 교육과정은 바람직하지만 주입식 교육과 지식중심(knowledge-core)의 교육이 중시되는 사회와 사회의식의 수준을 감안할 때 7차 교육과정은 교육의 현실에서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편법과 형식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단위학교에서 이런 자율적인 교육과정은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으로 왜곡되는 현상이 일상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효율성과 수요자 중심 교육을 빌미로 행해지는 7차 교육과정의 왜곡은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의 불신을 가져왔으며 이런 불신이 학교교육의 위기를 부채질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교육이 성행하는 이유는 바로 공교육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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