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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두 번째 단편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의 두 번째 단편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문학동네
소설의 기본 형태는 아무래도 '이야기'일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와 비슷한 형태인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하는 사람은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흥분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고 혹은 점잖게 또는 방정맞게 그러면서 할 이야기 안할 이야기 다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표정 저런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런 흉내 저런 흉내를 내기도 하고 이런 동작 저런 동작을 취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놀란 눈을 하기도 하고 기쁜 웃음을 짓기도 하고 슬픈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주먹을 꽉 쥐기도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묻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제이야기를 하려 하거나 제 생각을 펼치려 할지도 모르겠다.

이기호의 두 번째 단편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를 읽어보기로 한다(들어보기로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소설로 안내하는 소설이다. 아니 독자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최면소설'이기도 하고 소설을 들려주고자 하는 '듣는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들려주는 사람에 따라 변형되고 각색되는 이야기, 소설

소설이라는 게 원래 그랬잖아요. 누군가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는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각색되는 이야기. 그게 소설의 진정한 참맛이잖아요. 이 소설도 읽어주는 사람에 따라, 그의 맘에 따라, 계속 변하고 뒤바뀌고 출렁거려, 누가 진짜 이 소설의 원작자인지 모를 지경까지 흘러가길 원합니다. (9~10쪽)

어디 소설만 그러하겠는가. 시도 낭송하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음색과 성조와 느낌을 반영할 것이다. 어떤 부분은 높이고 어떤 부분은 낮추면서 또 어떤 시구는 반복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생략하거나 고치기도 하면서 낭송하는 이의 개인적인 감정과 정회를 시 속에 투영하여 전달하지 않겠는가.

여하튼 간에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수많은 대화 상대를 찾아가 만나서 두루두루 읽히고 다소간 변형되는 일이 있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유효하게 살아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영원한 공유라고나 할까?

소설가의 주장대로라면 A의 소설을 B가 복사하여 C에게 들려줄 때 B 역시 소설가가 되는 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자인 동시에 소설가인 것이다(자신이 쓴 소설을 자신이 듣는다면?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소설가와 독자의 관계라 할 수 있을 것). 직접 한 사람 앞에서 역시 또 한 사람인 소설가가 소설을 들려준다? 어쩌면 가장 생생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들으려면, 두 눈을 감고 마음을 편히 가져라

우습게도 소설 속의 소설가는 소설을 듣기 위해서는 자세를 취하라고 요구한다. 어떤 자세냐고? 두 눈을 감고, 마음을 편히 가지란다. 배에 힘을 한번 줘보라고도 하고 머리를 목 뒤로 한번 넘겨보라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소설 속의 소설가는 잔소리가 많은 소설가인 것 같다. 어쩌면 소설가 이기호는 이렇게 해서라도 독자들과 대화를 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소설가는 곧이어 소설 속의 주인공을 소설 속의 독자인 '당신' 앞으로 불러내 앉힌다. 소설 속 주인공 남자는 공공도서관 자료실 탁자 귀퉁이에 앉아서 소설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는 이 소설 속 주인공 남자와 독자인 '당신'을 합치시켜 버린다.

당신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저기 앉아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당신과 소설 속 주인공이 하나로 합치되는 거지요. 당신이 곧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주인공이 곧 당신이 되는 거지요. (16쪽)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당신은 9급 공무원 마지막 시험(연령자격제한으로)을 준비하고 있으나 그리 전망이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당신은 공부하다 말고 소설책 복사본(재밌게도 바로 이 소설이 바로 그 복사본이다. 당신이 읽고 있던 책은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이다)을 하나 들고 나와 그 소설을 옛 애인에게 들려주려 한다.

당신은 옛 애인을 찾아가는 시내버스 안에서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떠올린다. 과거에 있었던, 그러니까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을 흉내 냈던, 그러나 소설처럼 그리 되지는 않았던 일들을 돌이켜본다.

주변 사람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어야 하는 소설

소설을 읽고 난 뒤, 한동안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동했던 적은 분명 여러 번 있었던 일입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알게 모르게 소설 속 주인공의 말투를 따라 하고, 소설 속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 했던 당신. (24~25쪽)

우리가 종종 영화에 심취하여 마치 영화 속의 인물이라도 된 듯이 잠시 세상을 착각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기도취에 빠져들기도 하듯이 소설도 그리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소설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소설 속의 인물은 어느새 자기 자신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 곧 당신은 옛 애인을 만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미리 잡아놓은 여관으로 돌아온 당신은 엉뚱하게도 아가씨(?)를 불러내어 그녀에게 소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바로 이 소설을 말이다. 가히 엽기적인 상황이라 할 것이다.

소설을 다 읽은 당신은 이제 최면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소설 속에서 무언가 가져온 것이 있는가? 아니면 소설 속에다 무언가 두고 왔는가? 그렇지 않다면 한바탕 놀고라도 왔는가?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는 다 읽었으면 가능하면 가까운 사람에게 주변 사람에게 딱히 그럴 만한 사람이 없으면 찾아서라도 소리 내어 읽어주어야 하는 그런 소설이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이기호 / 펴낸날: 2006년 10월 13일 / 펴낸곳: 문학동네 / 책값: 9500원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문학동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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