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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들판은 가을꽃으로 가득하다. 눈으로 코로 가을이 마구 들어온다. 쑥부쟁이, 구절초, 취꽃, 오이풀, 바위떡풀, 꿩의비름, 바위솔 꽃향유, 고들빼기, 억새 ….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가을꽃의 대명사인 코스모스다.

달내마을에서도 코스모스가 만발한 곳이 있다. 아랫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빨강, 분홍, 하양, 자주가 알맞게 뒤섞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거기는 길가도 아니고 풀밭도 아닌 논이 죽 펼쳐진 곳이다.

▲ 벼가 자라야 할 논에 코스모스가 만발하다
ⓒ 정판수
사실 코스모스가 만발한 곳은 논이었다, 재작년 이맘때라면 벼가 황금물결을 이룰. 그런데 코스모스로 아름답게(?) 치장된 꽃밭이 된 건 그곳을 전원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논을 갈아엎었기 때문이다.

달내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머든마을과 늘밭마을에는 작년부터 굴삭기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대낮에 낮잠을 한 번 자려고 해도 방해가 될 정도로. 그 소리가 그치자마자 논이랑, 밭이랑, 산이 택지로 개발되었고….

바로 농투성이들이 사정상 자신들의 생명과 같은 땅을 팔 수밖에 없게 되자 낌새를 챈 부동산업자들이 달려들었다. 그 땅을 헐값으로 사들인 뒤 토목공사와 조경공사를 해서는 팔려고 다시 내놓은 상태다.

▲ 밭에도 농작물 대신 잡초만 가득하다
ⓒ 정판수
모르긴 몰라도 이 마을의 땅의 2/3 이상은 울산 등의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넘어갔는데 그 중에서도 대부분 부동산업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개인에게 넘어간 땅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논에는 벼를 심도록 하고 밭에는 밭작물을 심게 해주니까.

그들이 이 마을 땅을 산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나중에 직장에서 은퇴하면 들어올 생각에서다. 주말마다 와서 농사짓는 이도 있지만 극소수일 뿐. 그러니 자기들이 들어올 동안만이라도 마을 어른에게 농사짓도록 해준다.

그러나 부동산 업자들에게 넘어간 땅은 다르다. 언제 팔릴지 모르기 때문에 농사짓게 해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혹 짓게 해주더라도 채 거두기도 다른 주인에게 넘어가면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에는 굴삭기로 다듬어놓았지만 쉬 팔리지 않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풀꽃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니 마을 한복판에 코스모스 꽃밭이 형성된 까닭도 거기 있다. 그곳이 팔려 집이 들어섰더라면 마을도 풍요로워졌을 텐데 말이다.

▲ 산을 택지로 바꾼 바람에 맨땅이 훤히 드러나다
ⓒ 정판수
형질 변경한 채로 묵혀 둔 논과 밭, 산 모두 보기 흉하다. 벼나 밭작물 대신 잡초가 자라도록 내버려진 논과 밭도 보기 흉하지만, 산을 깎아 대지로 만든 곳은 더욱 보기 흉하다. 논과 밭에는 코스모스나 쑥부쟁이 같은 꽃이 자라기도 하지만, 산을 개발한 곳은 그냥 맨흙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오가며 볼 때마다 누구든 진짜 필요한 사람들이 빨리 사서 집을 짓는다면 좋겠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쉬 나설 것 같지 않다. 부동산 업자가 만든 택지는 샀던 값보다 훨씬 높은 값으로 매겨져 있어서다.

논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것보다 벼가 자라는 게 아름답고, 산에는 누런 황토가 보이는 것보다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게 아름답다. 그러나 이왕 전원주택지로 변경했으면 집이라도 빨리 들어서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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