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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겉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흰 구름이 파란 하늘을 수놓는 가을날 공원 벤치나 거실의 안락 의자에서 책을 펼쳐들고 독서에 몰두하는 여자의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그 수채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성과 감성의 향기가 솔솔 퍼져 나오는 듯 하다.

그런데 그런 향기로운 상상에 재를 뿌리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황당한 제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니 책이 시한폭탄이나 오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오랜 세월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던 남성, 특히 지배계급은 노예나 물건처럼 취급되던 여성들이 책을 통해서 똑똑해지는 일,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며 무언가 따지고 묻는 일, 자신들의 그늘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이상의 날개를 펴는 일을 몹시도 두려워했다.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도발적인 책 제목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

저자는 지식의 보고인 책을 불사른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과 암흑시대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지적 호기심에 충만한 여자들을 죽이기 위한 술책인 ‘마녀 사냥’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무엇인가를 아는 여자와 지식을 담은 책은 권력을 독점하려는 남자들의 눈에는 위험천만한 것일 수밖에 없었기에 오랫동안 책은 남성의 전유물이지 여성의 몫이 아니었다. 더불어 책을 읽거나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여성 역시 위험천만한 존재여서 마녀 사냥을 통해 솎아 냈던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제외시켰던 여성의 책읽기는 오랫동안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시작되었다.

여성들이 자기만의 독자적인 방을 갖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독서하는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이 항상 곱지만은 않다. 책을 읽느라 밀쳐둔 집안 일을 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아니, 여자가 집안도 안 치우고. 도대체 하루 종일 집에서 뭐했어?"

현대의 남성조차 그런 간접적인 방식으로 여성들의 독서를 방해하고 폄훼한다. 자기가 감춰둔 날개옷을 찾아 도망갈 궁리를 하는 책 읽는 여자가 못 마땅하기만 한 남성들은 독서는 무익한 것이니 그저 살림이나 잘 하라고 주문을 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특별히 여성들의 독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여성만의 비밀의 공간을 엿 본 화가의 시선, 그 화가의 시선이 옮긴 그림의 행간을 읽어내는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박식함은 독자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은 독서의 역사에 알맞은 그림과 글로 엮어져 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는 매 순간 당신은 그림속의 여성이 되어 그들과 함께 내밀한 즐거움이나 도피를 함께 즐기게 될 것이다. 때론 은밀하게 때론 고독하게 때론 도발적으로 책이 주는 매혹에 빠져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즐기는 동안 당신은 이미 날개옷을 되찾은 본래의 자아로 되돌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진리가 담긴 그릇인 책을 손에 쥔 순간 독서가 주는 내밀한 즐거움에 빠져버린 여성을 통제할 수 있는 남성은 없다. 그러기에 자아를 찾아 날개를 힘차게 펄럭이며 새장의 안온함으로부터 미련 없이 멀어지는 여성들을 남성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책 읽는 여자들은 위험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아귀를 벗어난 자유혼을 가진 천상의 여인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며 나무꾼이 그토록 애써 숨기려던 날개옷은 어쩌면 책이 아니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천상의 여인들이여 비상을 꿈꾸는가? 천상의 향기가 그리운가?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멋진 일탈을 꿈꾸는가?

지금 당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 후, 그 책을 펼치기만 하면 당신의 겨드랑이엔 어느덧 자유의 날개가 돋아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슈테판 불만 지음.조이한. 김정근 옮김/웅진 지식하우스
/13,800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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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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