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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이야기는 곧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이나 그림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무언가를 남긴다. 눈부신 햇살과 신록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안락한 의자에 몸을 기대어 책을 읽는 이의 얼굴 표정은 마냥 평화롭다. 이처럼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겉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 우리는 책을 읽는 정지된 순간을 아름다운 그림의 형태로 만끽하며 덤으로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 독서의 역사까지 알게 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렘브란트, 베르메르, 마티스, 고흐, 호퍼 등 수많은 화가들을 매혹시킨 책 읽는 여자들은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상념에 잠겨 있는 걸까.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과는 달리 놀랍게도 그 옛날에는 책읽기가 권장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실용성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실한 시민 계층인 가장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서는 '시간 낭비이고 게으름뱅이나 하는 나쁜 습관'이며 '다독은 일종의 정신병으로 간주했고 아이들이 그 병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고 하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수긍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밖에. 책읽기의 좋은 점은 어디에 꼭꼭 숨어버리고 나쁜 점만이 부각되어 나타난 걸까.

여자에게 무제한적으로 허용된 독서는 고작 성서와 종교서적뿐이었다는데 아버지가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는 책 읽기를 거둘 수는 없는 법. 여자들은 가장의 눈길을 피해 침실로 숨어들어 독서를 하기에 이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책을 읽을 때의 긴장감, 아마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되었을 것 같다.

지나친 독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이든 엘리트적 남자의 지적 우월감이 깔려 있었다. 즉 독서란 지적 능력을 지닌 특정한 남자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여자와 교양이 없는 대중은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계몽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거의 모든 지식인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자에게 책은 잠재된 위험이며,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가장의 임무를 지닌 남자는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예방해야만 했다. 이제 가정에서 독서는 가장의 도덕적이고 엄격한 시선에 노출되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여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권위주의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남자여야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적 시각이 아니라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말은 애초에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여성들은 비로소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 여자들은 숨어서 책을 읽다가 양지로 나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단지 책을 읽기만 하는 독자에서 급기야는 책을 집필하기에 이르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때문에 더 이상 독서 장소는 침실로 제한되지 않았고 거실이나 부엌 정원 등에서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역사는 진보하기 마련이고 아무도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책 읽기의 기능 중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책에 몰입함으로써 우리는 잠시 버거운 현실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 그러나 현실 세계와 책의 세계를 혼동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몰입은 불가능하므로 아주 잠깐 동안 누릴 수 있는 감정의 유희에 불과하지 않을까.

책을 통해 더 넓은 세계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우리의 몸은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제한적인 공간 안에 머물러 있지만, 책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와 만날 수 있고 세계 어느 곳에나 다다를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 속 세상과도 만날 수 있게 된다.

화폭에 담긴 아름다운 자연과 무언가에 홀린 듯,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대와 역사를 읽고, 독서가 우리 삶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그런 점에서 이채로운 책이었고 수록된 그림과 함께 독자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각인될 책이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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