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실세가 자신의 정치적 맞수를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개인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참여정부 초대 비서실장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문희상(의정부 갑) 의원은 지난 달 28일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주 내용은 자신의 정적인 홍문종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중형'을 선고해 달라는 것이다.
홍 전 의원은 지난 2004년 총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돼 항소심에서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판결이 파기돼 오는 20일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7일 <시민일보>가 입수한 의견서에서 문 의원은 "선거가 끝나면 낙선자 및 선거참여자의 중대한 법 위반 사실이 흐지부지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홍 전 의원에게 '정당한 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문 의원이 홍 전 의원에 대해 중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사법부에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 의원은 당의장 재임 중이던 지난해 8월에도 2심 재판부에 20여장에 걸친 의견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피고인 홍문종에 대하여는 선고를 유예한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제1심판결보다 훨씬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문 의원의 바람처럼 2심 재판부는 홍 전 의원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1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원종 부장판사)는 홍 전 의원과 선거보좌관 음모씨(35)에 대해 각각 벌금 25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었다.
특히 당시 홍 전 의원에게 250만원의 중형을 선고했던 2심 부장판사가 이후 대법관으로 영전(?)해 '보은인사'라는 의혹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문 의원이 이번에 제출한 의견서는 두 번째로, 고법 선고 공판을 앞두고 제출한 것이다.
문 의원의 의견서 제출로 다시 불거진 '문희상-홍문종'의 정치적 악연은 지난 15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됐다. 문 의원과 홍 전 의원은 '의정부 정치'의 양대 축으로 불리며 의정부 정치권의 영원한 경쟁자이자 맞수로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5대 총선 이후 홍문종(15대)-문희상(16대)-홍문종(16대 보궐)-문희상(17대)으로 이어지는 엇갈림 속에서 '의정부 고지점령'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다.
문 의원은 또 여당 당의장 재임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찍힌 사진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한 일간지는 선거법 위반혐의로 2심 선고공판을 기다리고 있는 같은 당 강성종(의정부 을) 의원이 사건번호와 재판관·주심판사의 이름이 적혀 있는 쪽지를 전달하자 이를 받아 읽고 있는 문 의원의 모습을 보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한 손 안에 쥐어진 이 시대 사법부의 실상'이라는 논평을 내고 "사법부의 권위도 원칙도 실종된 잇달아 나온 '80만원짜리 선거법 위반 벌금'의 의문이 대충 짐작되는 한 장의 사진"이라면서 "문희상 의원의 한 손에 재판사건번호와 담당 판사이름이 적힌 쪽지가 쥐어지듯 지금 이 정권의 손에는 쥐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지적했었다.
실제 서울고법 형사9부(김용호 부장판사)는 지난 4월 27일 1심에서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 항소심에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던 강성종 의원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이로써 강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강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홍문종 전 의원이 지역구를 옮겨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의정부는 17대 총선부터 갑과 을 두 선거구로 분구됐다.
이에 따라 문 의원이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홍 전 의원이 의정부 지역에 출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강 의원 구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었던 것이다.
문 의원 자신도 지난 2001년 1심에서 부인 김양숙씨가 선거법 위반혐의로 징역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했으나,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전력이 있다.
한편 의견서 제출과 관련 문 의원 측은 7일 "의견서 제출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나머지는 재판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 의원이 여권실세라는 이유로 "재판부에 대한 압력"이라는 의혹과 "아무리 정적이지만 너무 한다"는 비난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시민일보(www.siminilbo.co.kr) 9월 8일자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