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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가는 길에 기차안에서
에든버러 가는 길에 기차안에서 ⓒ 한문순
그래서 맨 앞줄에 선 외국인에게 가서 내가 늦었는데 자리를 바꿔줄 수 있겠냐고 말과 몸짓을 섞어 표현했다.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그것을 지켜보던 출국심사하는 공항직원은 내게 단호하게 제 자리로 가라고 팔을 쭉 뻗어 신호를 했다. 영어도 일어도 안 되니 말문이 막혀 자세한 설명이 어려웠고 별 수 없었다.

3분을 남겨놓고 내 차례가 왔다. 이번엔 출국시 작성해야 할 카드에 체크 안 한 것이 있다고 체크를 하란다. 내가 타고 온 대한항공편을 기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차근차근 기재사항을 확인하고 작성했다. 여권을 받고 2분을 남겨놓고 내리 달렸다. 불길한 마음 가눌 길 없지만 일단 가봐야지 않겠나.

도착하니 내가 들어가야 할 게이트로 사람이 들어가고 있었다. 따라 들어가려했더니 보딩패스를 나눠주던 한국말 할 줄 알던 그 직원이 서 있다가 말을 해 주었다. 들어가지 말라고. 아직 비행기도 안 왔는데! 라면서.

비행기가 연착되어 30분이 늦춰졌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휴. 비행기 타는 건 성공하겠구나. 여기서부터 이렇게 어리버리 헤매는데 영국 가서는 어떨까, 염려가 없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부딪히다보면 답이 나올 것으로 믿고 비행기를 탔다.

창가 좌석을 원했는데 세 사람이 앉는 구조의 가운데 자리이다. 양 옆에는 백인 남녀가 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창가에 앉은 이는 일본에서 1년 간 영어를 가르치고 돌아가는 스코틀랜드 출신 젊은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어 그랬는지 영어를 못한다고 하니까 친절하고 천천히 쉽게 말해 주었다.

여행 가지 전에 나는 외국인들과 말하지 않겠다고 작정 했었다. 왜냐하면 말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못하는 영어 때문에 속만 상할 테니 애초부터 그런 생각을 말자는 것이었는데 운항 시간이 긴 탓에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옆 자리에서라도 말을 붙이는 일이 생긴다.

또 작성해야 할 카드에 대해 내가 물어볼 것도 있다. 친구에게 빌린 영어전자수첩도, 공항검사가 심해 짐에 넣어 부친 터라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은 옆자리 백인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만 보면 내가 써먹은 영어들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 배운 것들이다. 요즘 아이들은 미리부터 영어공부를 하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배운 것만으로도 여행은 간다는 말이겠다. 어리버리해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최저생존영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밝혀보겠다.

마지막 3시간을 남겨놓고 멀미를 했다. 의자에서 벗어나 넓은 자리를 찾아가 앉아 헤매니 동양인 승무원이 와서 아프냐고 묻는다. 생각나는 단어와 손짓을 섞어 말했더니 약을 준다. 편한 자리를 내어주는 이도 있다. 고마웠던 이들에게 인사하는 법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인사하고 헤어지고 나서 히스로 공항 입국심사대로 갔다.

에든버러
에든버러 ⓒ 한문순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여행안내 서적에서 본 대로, 친구들에게 물어본 대로, 무엇을 질문하는지를 알고 대답을 생각해 갔다. 그런데 돌발변수가 생겼다. 방문하는 영국에 사는 친구 집 주소를 적어 넣으라는 것인데 그런 얘긴 아무데도 없었다. 이를 어쩐다?

"나는 난 영어를 못한다, 친구들은 여기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듣기에 뭔 공부를 하냐고 물어보는 듯 해 나름대로 설명을 했지만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닌 모양이다. 몇 분 동안 서로 애를 쓰다 공항직원이 답답해졌는지 그냥 가란다. 드디어 입국 성공이로구나, 말을 못하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입국했다는데 안도를 하며 나는 신나게 빠져 나갔다.

친척집이냐 친구집이냐,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친척집이라고 했다가 연락해 본 결과 친척이 아니어서 입국 못하고 돌아간 이도 있다는데 영어를 못하는 건 거짓은 아닌 거니까 입국에 하자가 없었다. 어리버리 여행객은 이렇게 그렇게 어찌어찌하여 에든버러까지 마침내 다다른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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