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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킹스크로스 기차역
런던 킹스크로스 기차역 ⓒ 한문순
영국 히스로공항에 도착한 후 킹스크로스역까지 가서 기차를 탔다. 미리 준비해 온 '브리트레일패스'를 이용했다. 의외로 브리트레일패스를 모르는 유학생이나 여행객들이 많다. 영국은 철도가 발달했지만 영국 현지의 교통요금은 값이 비싸다. 브리트레일패스는 영국에서는 살 수 없고 영국외 다른 국가에서 구매가 가능한 패스인데 할인을 할 때도 있다.

올해가 할인 기간이라 나는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패스를 구입했다. 연속이용패스와 날짜를 선택하는 선택이용패스가 있다. 국영철도면 어디든 이용이 가능해서 런던, 요크, 에든버러를 오가며 철도를 이용할 때 모두 이 패스를 사용했다. 하루에 기차를 몇 번을 타든 상관이 없다. 날짜만 써 넣으면 된다.

캠브릿지와 글래스고까지 여행할 계획이었지만 사정상 취소가 되어 기차를 이용하지 않은 날이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급하게 버스 탈 일이 생겨 총 4일을 쓰게 됐는데 그나마 이틀은 철도 승무원이 검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아 날짜를 기입하지 않았으니 내 패스는 6일을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2달 안에 8회 사용을 하는 패스였기 때문에 남은 날들을 이용하라고 현지에서 공부하는 친구에게 공항에서 우편으로 부쳐 주었다.

그러나 원래 이 패스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첫 승차시 날짜를 적어 넣어야만 한다. 적지 않은 것이 발각되면 비싼 벌금을 문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는데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분명해 보여 그랬는지 두 번이나 적지 않고 검사를 받았는데도 적어 넣으라는 얘기만 들었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런던 시내버스
런던 시내버스 ⓒ 한문순
그러나 나중에 런던 민박집에서 만난 배낭여행 중인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니 패스에 날짜를 적지 않은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들은 숫자를 쉽게 바꿔 쓸 수 있도록 애써서 적어 넣고는 나중에 날짜를 바꾸는 편법을 쓰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들은 버스 무임승차도 곧잘 하는 듯했는데 배낭여행의 막바지라 여행 경비 부족에 시달리다보니 안간힘을 썼다.

영국에서는 교통패스 체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느닷없이 실시되는 검사에 걸리면 큰 벌금을 문다. 기차만이 아니라 런던에서는 버스도 그렇다. 버스 티켓을 기사가 체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양심에 따라 티켓을 사서 버스에 오른다.

무감독 시험처럼 버스운행도 시민의 양심을 믿고 상호신뢰를 전제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가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기보다 상식과 규칙이행을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한 시민의식에 대한 신뢰는 상호존중의 결과일 것이고 그것이 시민 개개인의 인격적 자부심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우리네 팍팍한 일상의 풍경이 떠올라 이것저것 아쉬움을 주었다.

런던 지하철역
런던 지하철역 ⓒ 한문순
나는 <세계를 간다 영국편>(올해 8월 교보문고에서 구입)을 참고로 여행 준비를 했는데 정보가 잘못된 것이 있었다. 런던에서 버스 타는 방법애 오류가 있었다. 지방에서는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 직접 버스 요금을 내고 타는데 비해 런던은 그렇지가 않다. 정류장마다 설치되어 있는 버스티켓 자동판매기에서 티켓을 직접 사야 한다.

정액제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런던에서 버스를 탈 때 티켓 검사가 따로 없다. 대개의 버스는 앞, 뒤 문이 두 개로 기사는 일일이 티켓을 검사하지 않는다.

<세계를 간다 영국편>에 실린 정보에 따라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기사에게 버스비를 내려고 했다가 그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만 했다. 티켓을 사서 타라고 내리게 했다. 영레이디! 어쩌고 저쩌고, 기사의 말이 다 들리지 않고 모두 알아듣진 못해도 대강대강 어조와 상황으로 이해가 된다. 내리라는 말이다. 조금 당황했다. 엇, 책에 나와 있는 정보와 다르잖아. 그러나 대개의 다른 정보들은 유용했다.

정보를 하나 더 보태자면 지하철 티켓 중 원데이트레블카드가 있다. 브리트레일패스처럼 원데이트레블카드는 지하철을 횟수와 상관없이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어 지하철을 많이 타거나 이동이 많을 때는 이 카드를 구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다. 지하철도 구간 거리가 짧아 여러 모로 편리했고. 게다가 유람선을 탈 때 이 카드를 보여주면 할인도 해 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속버스와 비슷한 코치 얘기를 해보자. 철도를 이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코치를 탈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에든버러에서 반드시 코치를 타야만할 일이 생겼다. 에든버러에서 여행을 마치고 혼자서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집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영국은 철도 시간이 우리나라와 같지 않아 토요일인 그날 기차가 일찍 끊어졌다. 토요일 저녁이었는데 8시 15분쯤인가에서 운행은 종료되었다.

인근 글래스고까지 기차는 있었지만 먼 거리 철도는 모두 끊긴 상태라 나는 종료 시간 5분 늦게 웨이블리역에 도착한 탓에 기차를 탈 수 없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페스티벌 기간이며 그것도 주말이라 숙소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영어도 안 되는데 이를 어쩐다지?

급한 대로 인포메이션으로 달려갔다.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숙소 예약을 해주기 때문이다. 달려 갔더니 직원이 막 문을 닫고 있었다. 급하면 못하는 영어라도 막 튀어 나온다. "sorry. train nothing. help me(이때도 나는 미안한데 나 영어 못해요, 이건 항상 말했다. 그래야 도움을 더 잘 받을 수 있으니까)" 직원은 맞은편에 가서 버스를 타라고 했다. 그러나 정류장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고, 이렇게 된 바에는 하루를 더 묵는 게 낫겠다 싶어 에든버러에서 유일한 한국 민박으로 전화를 했다.

런던유람선과 런던아이
런던유람선과 런던아이 ⓒ 한문순
매우 친절한 분들이 운영을 하시는 데다 한국인이니까 방법을 상세하게 의논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겠는가. 부엌에서라도 잘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했는데 코치 터미널이 어디쯤에 있으니 빨리 가보란다. 코치도 끊어질 시간이라고 했다. 달리 도리가 없었다. 급하게 뛰어 가면서도 서너 번은 물었던 것 같다. 가까스로 터미널을 찾았는데 티켓 판매 창구는 모두 닫혀 있었다. 코치가 없진 않았는데 여기도 종료가 된 것이다.

그런데 딱 한 사람이 창구를 닫아 놓은 채로 자리를 뜨지 않고 일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사정해서 티켓을 샀다. 친구집으로 가야했는데 그곳으로 가는 코치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런던행 티켓을 샀다. 숙박비 삼아 25파운드를 내고 9시간 걸려 런던으로 갔다.

그러나 돌발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연인즉슥, 에든버러 터미널에서는 코치 타는 이가 별로 없어 편안히 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차를 갈아타게 했다. 갈아탄 코치 안에는 모든 의자에 승객이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뚱뚱한 젊은 여성이 탔다. 그 분은 꽤 뚱뚱했다. 키가 작은 동양 여자라고 몸집이 작아 보였을까.

처음 당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유리창과 그 분 사이에 끼어 9시간 동안 꾸겨진 채로 런던까지 갔다. 한국에서는 일찍이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 만원버스라고 해 봤자, 길어야 몇 십분 아니었겠나.

이 분이 코치 같은 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옆 자리 사람들과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9시간을 잘 참고 지내려 했으나 너무 짓눌려 답답할 땐 도리가 없어 왼쪽 팔을 뿌리치듯 쳐 내어 잠시 숨을 쉬어야 했다. 별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으나 예측불허의 돌발변수들이 튀어 나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사람과 창에 끼어 버스 의자에 앉아 9시간 여행하는 일, 흔한 경험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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