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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 오기철씨와 필리핀 출신 베럴리 엠마퀼린씨. 이들은 지난 1999년 결혼해 현재 광주에 살고 있다.
한국인 남편 오기철씨와 필리핀 출신 베럴리 엠마퀼린씨. 이들은 지난 1999년 결혼해 현재 광주에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이사(理事)'가 뭐야?"(아내 베럴리 엠마퀼린)
"봐봐. (먹던 음식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이것을 은정 엄마한테 줘야 한다고 말해.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은정 엄마한테 이것을 안 줘도 되는 거여. 그게 이사여."(남편 오기철씨)


남편 오기철(45)씨는 어휘에 대한 아내 엠마퀼린(31·필리핀)의 질문에 차근히 대답했다. 그들은 지난 1999년부터 7년을 이렇게 살았다.

기능직 공무원인 오씨와 그의 아내 엠마퀼린은 광주에서 딸(6)과 아들(5)을 두고 살고 있다. 이들 부부는 지난달 31일 한국인권재단에서 주최한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은 처음인 엠마퀼린은 이날 12시께 용산역에 도착하자 남편의 팔을 꼭 붙들었다. "은정 엄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라며 이들 부부는 역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배어있는 오씨의 말을 엠마퀼린은 곧잘 알아듣는 눈치다.

"딸이 어느 나라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엠마퀼린은 "딸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며 자녀의 선택을 강조했다. 사위의 국적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국적이 다른 남편과의 생활에 어려움보다는 만족감이 더 큰 것처럼 보였다.

교육권, 직업선택권도 없는 아내

오씨는 토론장인 국가인권위원회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부터 여성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국가적 지원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 법무부 관계자에게 할 말이 많다"며 "한국 남자들이 외국 여성들을 필요해서 한국으로 초청한 것 아니냐, 그러면 국민으로 인정하고 문화를 가르쳐야 하는데 왜 안 하고 있느냐"고 꼬집었다.

오씨는 험난한 외국인 아내의 한국살이에 아쉬움이 많다. 오씨는 필리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아내가 원어민 영어교사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교육청에 알아봤는데, 필리핀 사람은 원어민 교사에서 예외라고 했다. 민원을 넣었는데 법무부에서 교육부로 그렇게 지침이 내려졌다는 말만 들었다. 일할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막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어린이집 영어교사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측은 엠마퀼린이 하와이 출신이라고 학무보들을 속이기를 바랬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행군 수업에 보수도 적어 결국 거절했다.

오씨는 미안한 마음에 아내를 광주의 한 대학교에 진학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필리핀에서 아내의 학력증명서 등을 전해받아 공증을 거쳐 접수시켰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편입학을 위한 필기시험에서 문제가 모두 한국어였기 때문. 학교측은 "한국어 공부를 더 하고 오라"는 답변만 남긴 채 엠마퀼린을 불합격시켰다.

"(아내의 불합격에) 정말 화가 많이 났다. 한국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어로 된 시험 문제를 낸다는 것은 '학교에 오지 말라'는 뜻 아닌가. 시험 전에 분명히 '아내가 외국인'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외국인을 위한 배려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말 통하는 한국 사람들끼리 사는 것도 어려운데..."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3년간 오씨의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한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엠마퀼린이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것을 언어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꼽을 정도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란 쉽지 않았다. 오씨는 "세상에 어려운 일이 왜 없겠느냐,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들끼리도 어려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씨는 외국인 아내와 큰 불화없이 사는 방법을 묻자 "진짜 간단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아기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라"며 "무엇이든 이해하고, 받아주고,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말했다.

그러면서 언어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주변의 도움을 강조했다. 영어를 못하는 오씨는 "주변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덕분에, 한밤중에도 아내와 말이 통하지 않으면 전화로 통역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이) 거의 다 실패한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이주여성들에 대해 "각 지역구청에서 언어·문화 교육을 실시하는 등 국가가 책임져주지 않으면, 이들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결혼한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방치할 것이였으면 애초부터 국제결혼을 불허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혼을 위해 초청을 해놓고, 그들을 이방인 취급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한국 국민도 못 챙기는데 남의 나라 국민을 왜 챙기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한국 사람과 결혼한 한국 국적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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