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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모임장소인 강남구 서초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려는 이형진, 주재균, 손상진씨. 지하철로 이동한 기자와 이들 사이의 차이는 불과 몇 분 남짓 지하철이 빨랐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 여섯 남자가 모였다. 이들은 모두 40대 나이에 경력 10년차 이상의 법원 공무원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닮은꼴이 있다. 한결같이 자전거에 빠졌다는 사실. 평일 출퇴근은 물론이고 쉬는 날도 자전거와 함께 산다.

"마누라보다 자전거가 좋다"는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들은 김철환(46), 박영준(41), 손상진(43), 유상규(49), 이형진(40), 주재균(42)씨.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교통수단과 레저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해왔다.

여섯 남자는 "자전거 대중화를 위해 공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8월 4일 저녁 7시 서초동 한 식당에서 그들로부터 자전거에 빠지게 된 사연, 자전거를 만난 후 달라진 삶, 자전거 문화 활성화를 위한 대책 등을 들어보았다.

협심증 치료, 10kg 감량에 술도 싫어져

사회(김용국): 어떻게 자전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또 자전거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 각자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영준 "2002년 6월에 협심증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퇴원한 후에 운동을 하려고 보니 마땅한 게 없었다. 우연히 한강에 바람 쐬러 갔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이더라. 나도 자전거를 사서 한강으로 나갔다. 그 상쾌한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자전거를 탔다. 당시 의사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10층까지는 계단으로 걸어서 오를 정도다."

손상진 "내가 몸무게가 좀 많이 나가는 편이다. 4년 전 동료가 자전거를 한번 타보라고 권유를 하더라. 그래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혈압·콜레스테롤 수치가 상당히 높았는데 자전거 몇년 타고 나니 정상으로 돌아왔고 체중도 10kg이나 빠졌다. 내가 자전거만 타면 날쌘 제비가 된다.(웃음)"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상규(49), 김철관(46), 주재균(42), 이형진(40), 박영준(41), 손상진씨(43). 모두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니아들이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주재균 "등산·마라톤을 하다가 보조운동으로 자전거를 시작했다. 다른 운동은 평일에는 못하고 주말에만 하게 되니까 운동량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전거는 먼 거리를 빨리 갈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마라톤은 한 번 뛰면 20~30km 이상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자전거는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강화도·여주·임진각까지 갈 수 있다. 뛰는 것보다 훨씬 다리에 무리도 덜 간다."

김철환 "젊어서부터 운동이라면 이것저것 다 해보았다. 그런데 등산을 다녀보니 관절이 안 좋아지더라. 테니스도 마찬가지고. 주위에서 자전거가 몸에 부담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2003년 여름 아들 자전거를 갖고 무작정 출근길에 올랐다. 자전거 탄 후로 다른 운동은 거의 안 한다."

"자전거 출근할 생각하면 아침이 즐겁다"

유상규 "나도 마라톤을 오래 하다가 2001년 9월 직장 후배의 권유로 시작했다. 녹번동에서 서초동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자전거가 골다공증에 좋다고 하는데 실제로 건강해진 것 같다. 올해 건강검진 받았는데 비슷한 연배(50살 전후)의 동료들보다 전반적으로 좋게 나왔다."

이형진 "2003년부터 가끔 타다가 지난 5월 새 자전거를 사고 출퇴근을 시작했다. 달리기나 다른 운동은 질리게 마련인데 (자전거는)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자전거 탄 후로 술 약속이 싫어지더라."

사회: 자전거가 그렇게 매력있나.

자전거 보험? 가입하고 싶지만...
전용보험은 거의 없고 동호회서 단체로 가입

자전거를 타다보면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자전거에는 프로급인 이들도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다.

자전거를 탄 지 한달이 안 되어 자전거끼리 충돌로 쇄골이 부러지기도 했고, 인라인스케이트와 부딪히거나 발이 페달에 걸려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좌담 참석자 6명 중 자전거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3명이었다.

주재균 씨는 "자전거보험은 적자 폭이 크다는 이유로 보험사들이 1년 단위로 돌아가면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작년 6만원이던 보험료가 지금은 1년에 10만원 정도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수익성이 없고 사고 위험이 많은 데다, 보험사기 등을 우려한 탓에 우리나라 22개 보험사, 20개의 손해보험사 중에서 자전거 전용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레저형 상해보험에 자전거로 인한 사고가 포함되어 있거나 자전거 동호회에서 단체보험 형식으로 가입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자기차량 손해를 담보하는 보험(자차보험)은 없었다.

이날 좌담 참석자중 3명도 보험 가입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보험을 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박영준씨는 "내가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자동차에 부딪힐 위험이 있으므로 즐겁게 자전거를 타려면 보험은 꼭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용국
주재균 "운동이야 전에도 했었지만 자전거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생각만 하면 항상 아침이 즐겁다. 아침에 억지로 나온 적이 없다. 얼마 전 장마가 왔을 때도 매일 자전거 타고 나왔다. 꼬박 24시간 걸려 해남 땅끝마을(450km 정도)까지 가본 적도 있다. 해외로 나갈 계획도 세웠다."

손상진 "당일치기로 강화도·임진각·강원도 미시령 등 못 가는 곳이 어디 있나. 며칠 후 한강을 따라서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에 갈 계획이다. 직접 한 번 타봐라, 다른 것 하고 싶나.(웃음)"

김철환 "뱃살빼는 데는 자전거가 최고다. 자전거가 남자들 전립선에 안 좋다고 하는데 그건 낭설이다. 오히려 부부관계도 더 좋아진다.(웃음)"

목숨을 요구하는 서울의 차도

사회: 그러고 보면 자전거 타기는 운동·레저·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모두 다 갖추고 있다. 자전거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교통수단의 기능이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출퇴근길은 만족스럽나.

김철환 "집(상암동)에서 사무실(서초동)까지 50분 정도 걸리는데 지하철 갈아타고 오는 시간보다 10분이나 빠르다."

손상진 "개포동에서 구의동 사무실까지 제대로 밟으면 20분 대에 들어간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불만이다."

박영준 "만원 지하철·버스에 안 시달리지, 자가용처럼 막힐 일 없이 시원하게 달리지, 최고지 뭐. 출퇴근(흑석동-서초동)하는데 19분 정도 걸렸다."

▲ 한달에 한번 꼭 서울을 벗어나 '라이딩'을 즐긴다. 지난 5월 다녀온 강화도 자전거 여행 단체사진.
ⓒ 주재균
김철환 "그런데 자동차 운전자들의 인식이 안 좋다. 자전거가 도로에 나오면 교통흐름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어떨 땐 서울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반은 목숨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유상규 "나같은 경우는 겁이 나서 차도로 안 다니고 주로 인도로 다니는 편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차라리 인도가 더 낫다. 그런데 차와 달리 사람은 방향 예측이 힘들어 접촉사고의 위험을 많이 느낀다. 전용도로를 늘렸으면 좋겠다."

주재균 "난 자전거 도로 만드는 것엔 찬성하지 않는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공존, 어렵지 않다고 본다. 자동차가 자전거를 조금만 배려하고 법규정을 조금만 손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도로 사정이 나쁘다고 하는데, 우리보다 못한 나라도 아무 문제없이 자전거가 다닌다. 공존할 수 있는 의식구조가 더 중요하다. 자전거 문화가 정착돼 있다는 상주의 경우 차들이 자전거를 배려할 줄 안다."

이형진 "인식을 바꾸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막상 내가 운전할 때도 자전거가 위험하게 보여서 차도로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용도로를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박영준 "고무적인 것은 서해안을 따라 1218km 자전거 도로를 만들 계획이 되어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에너지 절약, 환경보존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재균 "서울시에서도 지하철에 자전거 전용 칸을 설치해준다고 하니까 한 번 기대를 해보자."

"자전거 출퇴근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자"

사회: 자전거 문화 활성화를 위해 각자 생각하는 대책이 있다면.

유상규 "자전거 운전자들은 한강을 자주 이용하는데 어떤 곳은 좌측통행, 어떤 곳은 우측통행으로 통일이 되지 않았다. 정비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많이 늘려야 한다. 덧붙인다면 일반국도를 정비해서 차도와 분리하여 자전거가 갓길로 다닐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주재균씨(맨 오른쪽)는 2006 KCF 마스터즈 로드레이스 제1전에서 3위에 입상할 정도로 실력파다.
ⓒ 주재균
박영준 "자전거 사고만 나면 공공장소와 공원 등지에 자전거 통행을 금지하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곳이 난지도 하늘공원·남산 공원·구 행주대교·선유도공원 등이다. 자전거 문화를 활성화한다고 해놓고, 행정 편의주의 때문에 통행을 막는 것은 자전거 대중화에 역행한다. 나도 공무원이지만 그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형진 "이웃나라 일본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에게 교통비를 더 많이 지급하고 있다. 환경보존, 에너지 절약 정책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인센티브를 도입해야 하고 공무원부터 앞장서야 한다.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들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느껴야 뭐가 불편한지, 잘못되었는지 알 것 아닌가. 그래야 전용도로도 만들고 교통신호체계도 바꾸지 않겠는가."

주재균 "동의한다. 자전거 타기와 같은 좋은 일에는 공무원들이 광고효과를 내야 한다. 전국 규모의 자전거 대회에 법원에서 단체 출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자양동에서 서초동까지 자전거로 42분
"만원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라면 이젠 못해"

이날 간담회 참석자 중 3명은 서울 구의동 동부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다. 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지나자 그들은 모임 장소인 서초동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 복장을 갖추고 법원 앞에 섰다.

오후 6시 15분 서울 구의동 동부지방법원에서 서초동을 향해 출발했다. 이형진·손상진·주재균씨는 자전거로, 자전거가 없는 조경국 기자와 나는 지하철 2호선(구의역-교대역)을 이용했다. 자연스레 자전거와 지하철의 대결이 된 셈이다.

먼저 도착한 쪽은 지하철이었다. 35분이 걸렸다. 자전거는 7분 후인 6시 57분에 도착했다. 지하철은 환승구간이 없어 갈아타지 않고 15개역을 달렸다. 자전거는 자양동에서 잠실대교를 건너서 한강의 자전거도로를 달렸으며, 한강 반포지구에서 나와 고속터미널을 거쳐 서초동에 이르렀다.

금요일 저녁이라 차량이 많아서 자전거가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빠른 속도로 도착했다. 손상진씨는 "반포에서 차가 막히지 않았다면 자전거가 더 빨랐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손씨는 "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리는 재미는 안 타본 사람은 모른다"며 "나보고 만원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라면 이젠 도저히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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