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민수
물 속 진흙뻘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꽃 중에서 연꽃이나 수련은 잘 알려진 꽃이다. 그런데 어리연꽃은 작아서 그런지 그 귀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꽃인 듯하다. 피어있으되 연꽃이나 수련의 커다란 꽃과 이파리에 가려 존재가 훤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풀도 그들만의 생존전략, 살아가는 방법이 있으니 어리연꽃도 물 속의 뿌리들을 뻗고 또 뻗어 자기들만의 영역을 만든다.

어리연꽃의 속명 님포이데스(Nymphoides)는 수련의 속명 님파에아(Nymphaea)와 무관하지 않지만 어리연꽃은 '용담과'이고 연꽃과 수련은 '수련과'에 속한다. 어찌 보면 사는 조건도 비슷하고, 이름에 '연꽃'이라는 이름도 들어있으니 당연히 '수련과'라 생각을 했는데 '용담과'란다.

ⓒ 김민수
수련의 속명 님파에아(Nymphaea)는 그리스어 님페(Nymphe)와 관련이 있고 님페는 영어 님프(Nymph), '물의 요정'의 어원이다. 즉 수련이나 어리연꽃 모두 '물의 요정'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속해 있는 '과(科)'가 다르니 난감했을 것이다. 수련과도 아닌 용담과의 꽃이 물 속에 피어나고, 이파리도 영락없이 수련을 닮았으니 비슷한데 전혀 다른 것이니 뭐라고 불러줄까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 상상을 해 본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상상이다.
무슨 이름을 붙여줄까 고민하다 어린 아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엄마아빠 손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과 같이 작은 꽃, 수련이나 연꽃이 엄마나 아빠라면 어리연꽃은 아가처럼 보였을 것이다. 동사형 '어리다'를 다 넣으면 이름이 쉽지 않으니 동사형 '다'를 빼어버리고 '어리'만 남겨 놓아 '어리연꽃'이라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그런데 수련도 있으니 '어리수련'은 안 되겠냐고 수련이 항의를 한다. 그러자 연꽃이 "야, 너는 애기수련도 있잖니? 그리고 얘는 나처럼 물 위로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우잖아. 나한테 양보해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리연꽃'이 되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상상이고 진실은 이렇다.

ⓒ 김민수
국어사전에 의하면 '어리'라는 뜻은 '비슷하거나 가까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상상의 날개를 다 접고 연꽃과 '비슷하니까' 붙여준 이름인 것이다.

조금은 싱거웠다.
맨 처음에는 '어리보기'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 어리숙한 것과 무슨 관계는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보았지만 작은 꽃이 얼마나 다부지게 생겼는지 그에게서 어리숙한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며칠간 그를 관찰하면서 느낀 것, 그것은 비가 오는 날이나 햇살이 맑은 날이나 그날 분위기를 맞춰 피어나는 예쁜 꽃이라는 것이었다. 그를 보면서 '사노라면'이라는 노랫말 중에서 이런 구절을 떠올렸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님 함께 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비가 오는 것, 햇살이 맑은 것, 바람이 부는 것은 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이든 작은 어리연꽃에게는 자기의 분위기 연출을 위한 최고의 날인 것만 같았다. 그가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어떤 날이라도 최고로 행복한 날이죠!"

ⓒ 김민수
비오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햇살 뜨거운 날에도
활짝 웃으며 피었습니다.
활짝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날이라도
최고로 행복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자작시 '어리연꽃'


ⓒ 김민수
행복과 불행, 과연 정말 행복해서 행복해 하고, 정말 불행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많은 경우 행복이 충분한 상황 속에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불행도 행복으로 바꾸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고전 같은 말에 아직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리라.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아직 읽는 중이라서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제목만으로 느껴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 사랑'만 말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라고 치부해 버렸다. 결국 병들어 버린 가짜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처럼 행세를 하게 되었다.

어리연꽃은 연꽃과 비슷한 꽃이요, 그래서 '어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을 얻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어리'는 가짜가 아니라 '비슷한'이다. 그 자체가 아니라도 자기만의 모습을 피워내며 어떤 날이라도 최고로 행복한 날로 만들어가는 작은 요정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맞이해야할지를 배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