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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지하철 풍경

지하철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만 해도 지하철 내에서 뭔가를 읽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던 스포츠신문이 민망할 만큼 보이지 않는 대신 그 손에 무가지인 각종 지하철신문이 들려 있다. PDA나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지하철을 내리는 사람은 완전하게 빈손이고 그들의 손에 들고 있던 각종 1회용 지하철 무가지는 무참하게 버려져 지하철 각 선반을 정신없이 어지럽혀 놓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바뀌어져 버린 지하철 풍경이다.

휴대하기 쉽고 읽기 쉽다는 이유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유가 종이신문의 운명은 그날 그날의 뉴스를 추려내 편집해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1회성 지하철신문에 완전히 밀리고 말았다.

그뿐인가? 비록 유가종이신문의 자리를 당당하게 빼앗은 무가지의 기세등등한 운명이란 것도 고작 지하철 출근시간 내에서만 반짝 숨을 이어가는 하루살이 신세일 뿐 출근시간이 끝나면 그들의 임무는 완전히 끝나고 용도 폐기된 채 지하철 선반 위에 널려 있는 쓰레기로 변한다.

이들의 흥망성쇠를 보니 문득 이곡의 <죽부인전>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 드라마 <주몽>에도 종이 대신 사용되고 있는 죽간을 볼 수 있다.
ⓒ MBC
"그의 이름은 죽(竹)이고 이름은 빙(憑)이다. 그의 가계를 살펴보면 복희씨 때부터 위(韋, 가죽)씨와 함께 문적에 관한 일을 보아 큰 공을 세워 자손 대대로 사관의 자리를 맡아왔으나 진시황이 이사(李斯)의 계략에 빠져 이들을 모두 땅에 파묻고 불 태워 죽임으로써 자손들이 곤궁해졌다. 한나라 때는 채륜의 문객 저생(楮生, 종이)이 글을 배워 붓을 가지고 죽씨와 놀다가 죽씨의 강직한 모습을 싫어하여 몰래 헐뜯다가 마침내 죽씨의 소임마저 가로채버리고 말았다. (이하 생략)"

고려시대 가전체 소설 중의 하나인 <죽부인전>에는 죽간이 혁명적인 기록매체인 종이의 등장으로 역사 속에 쓸쓸히 사라지게 된 과정이 의인화된 채 마치 미디어의 역사책을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에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

종이가 등장하기 전 기록매체였던 죽간의 운명

종이가 등장하기 전 대나무조각을 가죽에 메여 각종 기록을 남겼다는 죽간의 흔적, 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가 주역을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질 정도로 읽을 만큼 독서에 열중했다는 뜻)이라는 고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주몽>에서도 그 비슷한 모양의 형태를 가끔 볼 수 있는 죽간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완벽하게 종이의 임무를 대신하고 있던 기록매체였다. 그 임무 덕분에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수많은 내용을 담은 죽간들이 불태워지는 고난도 당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죽간이 역사 속에 쓸쓸히 사라지게 만든 것은 불도 억압도 아닌 바로 후한 사람 채륜에 의해 만들어진 종이라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비록 <죽부인전>에서 종이를 의인화한 저생은 강직한 죽씨를 헐뜯다가 끝내 죽씨의 소임을 가로채버린 비열한 인간으로 표현되었지만 종이의 등장은 그 이전의 동서양의 모든 기록매체(파피루스, 죽간, 양피지)를 한꺼번에 사망시킬 정도로 혁신적이고 놀라운 발명품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완벽한 기록 매체이자 저장매체로 보였던 종이 또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책 26만 쪽, 또는 74분 분량의 음악이나 비디오를 저장할 수 있거나 더 많은 분량도 저장 가능한 자기디스크나 디스켓, CD-ROM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보조기억장치들이 개발되면서 더욱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뿐인가? 비용 문제나 휴대성, 가독성 문제가 제기되었던 PDA 또한 점차 경량화, 다기능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심지어는 재질이 종이와 같이 구부릴 수 있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도 있고 디스플레이처럼 전기신호로 구동되는 전자종이 또한 개발되어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장소를 불문하고 편안히 앉아 읽을 수 있다는 종이신문의 효용 또한 조만간 <죽부인전>의 죽간처럼 비참하게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종이의 운명, 이미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이다

아니 어쩌면 지하철 선반 위로 굴러다니는 1회용 종이신문의 운명처럼 쓰레기화되는 운명이라면 오히려 설 자리를 잃어버려 조용히 역사 속으로 퇴장한 죽간보다 더 끔찍하게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죽부인전'을 읊어야 할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지하철을 나가려는 순간 지하철 내로 한 사람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쓰레기로 버려진 1회용 종이신문들을 차곡차곡 포대 자루에 담아가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그나마 쓰레기처럼 뒹굴던 1회용 종이신문이 은퇴한 할아버지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왔지만 도도한 변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굳이 '죽부인전'이 아닌 '신저생전'을 목청높여 읊지 않더라도 언젠가 종이는 또 다른 발전된 기록매체에 의해 죽간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또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그 대세의 흐름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오늘 아침….

새삼 필기도구가 사라질 종이 없는 세상을 떠올려 본다. 그 세상이 삭막할지 따스할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 62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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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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