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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좁쌀은 작은 것의 대명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럴까 '좁쌀만 하다'고 하면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작디작은 좁쌀, 그것이 하나 둘 모여 한 섬이 되고, 한 말이 되는 것을 보면 작은 것에 대해 숙연한 생각이 들 정도다.

좁쌀은 '조의 열매로 찧는 쌀'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에 노르스름한 좁쌀이 앙증맞게 섞여 있는 밥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쌀이 귀하던 시절 까실까실한 조팝('조밥'의 제주도 사투리)을 먹어본 사람은 배부른 소리한다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는 땅이 척박하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도 심을 수 없는 돌밭에는 조를 설설 뿌려 조농사를 짓는다. 괜스레 땅을 갈려고 트랙터라도 들어갔다가는 트랙터 날이 다 상해버리니 밭을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런 밭에 조를 심는다. 물론 상황이 좋은 밭에도 조를 심겠지만, 직접 추수를 같이 하고 제주바람에 쭉정이를 날려가며 새 모이로 줄 조를 선별하기까지 했던 그 밭의 상황은 그랬다.

ⓒ 김민수
작은 좁쌀, 작다고 하면서도 그 좁쌀에 관심들이 많았는지, 좁쌀이 등장하는 속담이나 재미있는 말이 꽤 된다.

혹시 '좁쌀과녁'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좁쌀과녁'이란 얼굴이 큰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좁쌀같이 작은 물건을 던져도 빗나가지 않을 정도로 큰 얼굴이라고 한다. 얼굴 큰 사람의 비애, 그것은 얼굴 큰 사람들만 안다. 그런데 좁쌀이 작아서 우습게 봤는지, 속담도 조금 비꼬는 듯한 속담들이 많다.

'좁쌀에 뒤웅 판다'는 속담은 말 그대로 풀면 좁쌀을 파서 뒤웅박을 만든다는 뜻으로 가망 없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사용된다.

성질이 아주 좀스러운 사람을 비꼬는 말로는 '좁쌀 썰어 먹을 놈'이라는 속담이 있다. 좁쌀 한 알을 입에 넣으면 씹기도 어려운데, 그런 좁쌀을 썰어서 먹는다니 참 재미난 표현이다. 이렇게 좀스러운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좁쌀 알을 대패질해 먹겠다'며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낸다.

▲ 조밭-제주도
ⓒ 김민수
이름으로만 좁쌀꽃을 상상해 보면 아주 작은 꽃이 상상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꽃은 크지 않지만, 좁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꽃이 크다. 물론 다른 꽃들과 비교하면 그리 큰 꽃은 아니다. 꽃망울이 올라올 때를 제외하면 좁쌀풀의 크기나 꽃의 크기는 작지는 않다.

잘 익은 좁쌀의 색깔을 간직하고 피어난 꽃, 아마도 다닥다닥 꽃망울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좁쌀이 모여 있는 듯해서 '좁쌀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닌가 싶다.

꽃망울에 비해서 피어나는 꽃의 크기가 무척이나 큰 꽃들이 있다. 좁살풀꽃도 그런 꽃 중 하나다. 밥과 관계가 있는 조팝나무나 꼬리조팝나무의 꽃 정도의 크기, 그러나 그들보다는 듬성듬성 피어나는 꽃을 보면 이팝('쌀밥'의 함경도 사투리)에 적당하게 얹혀진 조를 보는 듯하다.

주식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구황작물로 먹을 수도 있고, 척박한 땅에서도 튼실한 열매를 맺어주는 조. 더군다나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조의 겸손한 마음까지 좁쌀풀꽃이 간직한 것만 같아서 '좁쌀꽃'은 화사하지 않은 꽃이지만 정감이 가는 꽃이다.

ⓒ 김민수
화사하지 않은 꽃, 풀섶에 수줍게 피어난 꽃
작디작은 꽃망울 튀겨놓은 듯 피어난 꽃
올망졸망 작은 꽃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
혼자 피면 알아보지 못할까 올망졸망 모여 핀 꽃
하나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모여 셋이 되고
모이고 모여 한 되 혹은 한 말 혹은 한 가마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구나
작다고 깔볼 것이 아니구나
숲으로 난 길따라 수줍게 고개 숙이고 피어나는 꽃
잘 익은 좁쌀의 색깔을 담고 피어난 꽃
그 이름은 좁/쌀/풀/꽃

<자작시 - 좁쌀풀꽃>


ⓒ 김민수
7월의 숲에서 만난 좁쌀풀꽃, 올해는 비가 많아 꽃마다 빗방울을 이고 있느랴 꼿꼿하게 자라질 못했다. 그래도 바람불고 햇살이 비치면, 빗방울 툴툴 털어 내고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서 방긋 웃겠지.

때로는 우리의 삶도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인생의 짐으로 인해 고단할 때가 있지만, 어떤 날은 분명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있다.

좁쌀풀꽃을 눕게 한 작은 빗방울, 여름 내내 그들이 좁쌀풀꽃을 눕게 하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도 늘 우리를 묶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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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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