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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6월 15일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성명 4주년 국제학술토론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남북한 철도 연결 문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6월 방북을 둘러싼 남북 실무회담의 가장 큰 난제였다. 그런데 13일 열린 제12차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에서 남북한이 오는 25일 철도를 시험운행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16일로 예정된 실무회담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금강산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남북간 실무접촉이 시작되는 16일부터 18일까지 판문점에서 열리는 제4차 남북장성급회담도 회담 전망을 밝게 한다. 통일부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몽골 울란바토르 발언이 나온 직후에 북측이 장성급회담에 전향적으로 응했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 발언, 북한 군부에 대한 유화 메시지?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9일)은 아직 그 진의가 뭔지에 대한 구체적 부연설명이 따르지 않고 있지만, 북한 군부에 대한 유화 메시지로 읽힐 만한 대목이 있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은 "불신이 있는 동안 어떤 관계도 제대로 진전이 안된다"고 전제하고 "북한 내부도 서로 생각이 다르지 않겠느냐, 우리도 생각해 보면 (북한 군부가) 개성공단을 열었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남침로를 완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군부가 철도·도로 통행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 합의서 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동안 북측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해온 대북사업가 등 관련 업계에서는 '개성공단 문을 열었지만 얻은 게 뭐냐'고 불만을 가진 군부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들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따라서 철도·도로 통행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 합의서가 체결될 경우, 김 전 대통령의 경의선 철도를 이용한 방북이 성사됨은 물론 남북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북핵 6자회담 등 한반도 정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9일 장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개성공단사업을 성공시키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복안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발목이 잡혀 '6자회담 무용론'까지 나오는 가운데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의 유일한 통로로 간주된 북핵 6자회담은 미국의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 관련 대북 금융제재와 탈북자 문제 직접 개입을 통한 대북 인권 압박, 그리고 그에 대한 북한의 반발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00년 6·15 공동선언 같은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지렛대와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6년만의 재방북이 예정돼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은 현재의 북핵 교착을 푸는 승부수라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6자회담 및 한반도 평화정착의 돌파구가 마련되리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일종의 '올인'(다걸기) 전략인 셈이다.

주목되는 실무접촉 대표단과 DJ 수행원들

▲ 지난 2004년 6월 14일 남북정상회담 4주년을 맞아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의 리종혁 부위원장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연재
김 전 대통령의 6월 방북 및 김정일 면담의 3주체는 남북한 당국과 김 전 대통령의 3자이다.

이와 관련 주목을 끄는 것은 'DJ 방북'을 위한 실무접촉 대표단과 수행원들의 면면이다. 수행원의 면면은 실무회담 결과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일단 남북한 당국과 김 전 대통령 측은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올스타'를 내세워 서로 윈윈(win-win)하는 '유쾌한 청백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당국이 리종혁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실무회담 북측 단장으로 내세운 점이 눈에 띈다.

월북작가인 리기영씨의 3남인 리 부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와 평양국제관계대학 불어과를 졸업한 지남파(知南派)이다. 서방 및 남측 언론과의 접촉이 많아 잘 알려진 리씨는 2004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북 초청장을 최초로 전달한 '메신저'이자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만나본 첫 북한인이다.

리씨는 그해 6월 14일 북측 대표단 7명과 함께 서해직항로를 통해 입국하자마자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가진 비공개 환담에서 수첩에 메모한 김정일 위원장의 방북초청 메시지를 전한 장본인이다.

리씨는 또한 다음날 열린 '6·15 공동선언 4돌 국제토론회'에 참석해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환담에 합석하는 형식으로 노 대통령을 만났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리 부위원장에게 "북쪽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난다"면서 "만나보니 자주 보던 분 같은 느낌이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리 부위원장은 이어 가진 비공개 환담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남북이 협력해서 관계를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결국 그 자리는 남한의 전·현직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의 '특사'가 상견례를 통해 처음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자리였다.

리종혁과 이종석·문정인

▲ 이종석 통일부 장관(왼쪽)과 문정인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 이들은 모두 학자 신분으로 2000년 6월 정상회담에 동행했으며, 현재는 정부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돕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 자리에는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현 통일부 장관)이 배석했다. 이 장관은 2000년 6월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길에 동행한 2명의 학자 출신 '특별수행원' 중의 한 사람이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국내파 소장학자인 이 장관은 세종연구소에서 남북관계 연구실장을 맡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인 문정인 교수(연세대 정외과)는 대표적인 '미국통' 국제정치학자이다.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이 두 사람을 '특별수행원'으로 선발한 데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현장에서 지켜볼 두 사람에게 각각 국내학계와 미국 조야에 햇볕정책에 대한 실증적 정책홍보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회 부회장을 맡을 만큼 영어와 조정력이 탁월한 문정인 교수의 미국학계 영향력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토종파'인 이종석 장관은 정부 당국이 정상회담 전에 학자들에게 회담 의제 등을 자문했을 때 실무능력에서 가장 탁월한 평가를 받아 발탁되었다. 이 장관은 그후 참여정부 초대 NSC 사무차장을 거쳐 현재 통일부 장관으로 있는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방북에 직접 가지는 못하겠지만, 전체 틀을 짜고 지원하는 자리에 있다.

문 교수는 참여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장을 거쳐 현재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맡고 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의 산파역을 맡기도 한 문 교수는 '주암회' 간사로서 이미 주암회의 재방북을 추진한 경험이 있어 자연스레 이번 김 전 대통령의 재방북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북에도 직접 수행원으로 참여할 가능성도 크다.

주암회는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인사들의 친목모임이다.

DJ의 두 분신, 박지원과 임동원

▲ 박지원 전 장관(왼쪽)과 임동원 전 장관. 두 사람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번 재방북에 두사람의 동행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리종혁 부위원장은 노 대통령을 만난 다음날 당시 주암회 연락간사이자 총무인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의 초청으로 서울 시내의 한정식집에서 열린 만찬을 겸한 술자리에 참석한 바 있다.

주암회는 6·15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경험이 있거니와, 2002년 10월에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밤 늦게까지 북한 경제시찰단에게 만찬을 개최한 바 있다. 주암회 회원인 손길승 SK 회장은 당시 북한 경제시찰단을 워커힐호텔에 초청해 3000만원의 만찬 및 선물비용을 댔다.

이 무렵 손길승 회장은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에게 주암회 운영경비로 쓰라며 7000만원을 줬다. 검찰은 나중에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로 구속된 박씨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50억원은 못 찾고 그 대신 이 7000만원을 '곁가지'로 밝혀냈다.

대북특사로서 정상회담을 추진한 박지원 전 장관은 공교롭게도 철도연결을 첫 시험운행하는 25일에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50억원에 대해서는 무죄선고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DJ의 그림자'는 이번 재방북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장으로서 정상회담을 추진한 임동원 특사는 '햇볕정책의 설계사'이다. 임씨 역시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보석으로 불구속 재판중임을 감안하면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 또한 두 사람의 '동행'을 강력히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종혁의 맞상대, 정세현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그는 이번 실무회담에서 리종혁 단장과 대좌하는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실무회담에서 리종혁 단장과 대좌하는 남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이론'과 '뚝심'을 모두 갖춘 베테랑 대북협상 전략가이다.

정씨는 77년 당시 국토통일원 시절 공산권연구원으로 특채돼 관계에 첫 발을 내딛은 뒤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이 된 첫 '통일부 맨'으로 참여정부에서도 유임된 케이스다. 같은 자리에서 유임된 장관은 그가 유일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씨는 청와대 통일비서관 시절 '베이징 쌀회담'에서 뛰어난 수완으로 능력을 발휘한 데 이어 98년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회담 수석대표로 활약했다. 특히 남북 당국간 회담만도 30여차례가 넘었던 2002년에는 장관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로서 매끄럽게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재방북 및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남북 관계 베테랑 전문가들이 다 모인 '올스타전'이 될 것 같다. 또 어쩌면 이변이 없는 한 이번 회담은 남북 회담 역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로 '윈윈'하는 '유쾌한 청백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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