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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지배체제의 '덫'에 걸린 현대가(家)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24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몽구(68)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24일 검찰에 출두해 15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귀가했다. 정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한 것은 40세 때인 1978년 이후 28년 만이다.

정 회장은 1970년 32세에 현대차 서울사업소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해 현대건설 자재부장과 현대차 이사 등을 거쳐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든 지 4년 만인 1978년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다. 1977년에 터진 이른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때문이다.

당시 한국도시개발공사(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정 회장은 서울 압구정동에 사원용 현대아파트 35~60평 952가구를 신축하면서 전직 장관 5명, 국회의원 6명 등 공직자 190명과 언론인 34명에게 특혜분양한 사건으로 이듬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

28년 전 정주영 대신 정몽구... 이번엔 정몽구 대신 정의선?

검찰 수사에서 정 명예회장은 굳게 입을 닫았고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 특수부는 아들인 정몽구 회장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아들이 책임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 대신에 아들, 가족 대신에 가신이 처벌받는 현대가(家)의 전통(?)은 이 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당시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의 엄명으로 수사가 시작됐는데, 정 회장은 81년 4월 대법원에서 뇌물죄는 무죄가 확정되고 건축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징역 6월,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수개월 동안 수감되는 시련을 겪었다. 이는 정 회장이 겪은 처음이자 마지막 옥살이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구치소 담장 위에 선' 신세가 되었다. 현대가의 전통(?) 탓에 이번에는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정 회장 대신 구속을 자청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올해 서른여섯으로 28년 전 정 회장과 비슷한 연배인 정 사장 역시 경영권의 승계를 기다리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24일 검찰에 출두해 닷새 전에 아들이 조사를 받은 대검 중수부 1110호 특수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재벌 총수답게 상당히 성실하고 겸손하게 조사를 받았으며 점심으로 배달된 설렁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고 한다.

11층 10호 조사실은 정·관계 고위직, 대기업 회장 전용의 'VIP 조사실'인 1113호에 비해 '작고 초라한' 방이다. 화장실도 따로 없고 테이블과 의자만 놓여 있다. 검찰은 '범털 조사실'인 13호실을 이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방은 현대차와 론스타의 압수물품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고(故) 정몽헌 회장이 조사받은 13호실을 일부러 피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총수 옆방에서 조사 대기하는 임원들

검찰은 이날 정 회장이 자세한 부분을 모르거나 부인할 경우에 대비해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과 채양기 현대차 기획총괄본부 사장도 함께 소환해 바로 옆의 1109호 조사실에 대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비자금 조성과 총수 일가의 경영권 확보 과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최측근들로 이날 함께 조사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109호실은 김동진 부회장이 지난 2003년 12월 10일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바로 그 방이다.

당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중수부에 출석하게 된 경위를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비공식 선거자금을 한나라당 측에 제공하기로 결정한 총책임자이고 그 전모를 제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스스로 '총대'를 멘 것이다.

김 부회장은 검찰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개인후원회(일명 부국팀) 부회장겸 법률고문인 서정우 변호사를 통해 현금 100억원을 '차떼기'로 제공하는 데 관여한 임원을 ▲한나라당으로부터 제공 요청을 받은 최한영 현대차 부사장 ▲제공요청 보고를 받고 제공하기로 결정한 본인(김동진 부회장) ▲김 부회장의 연락을 받고 자금을 마련한 이상기 현대캐피탈 사장이라고 진술했다. 이들은 이 진술에 따라 차례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100억원은 아직도 출처미상 지난 2003년 11월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가 현대캐피탈 본사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관들이 압수한 회계장부가 담긴 박스를 차로 옮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한영 부사장은 검찰에서 "경기고 선배인 서정우 변호사로부터 정치자금을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금 100억원을 주게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이상기 사장은 "김 부회장으로부터 현금 100억원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서울 여의도 소재 현대캐피탈 빌딩 지하4층 창고에 보관 중인 현금 100억원을 두 번에 나누어 50억원씩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 사장은 이 현금 100억원에 대해 "2001년 3월 20일 사망한 정주영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의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삼우제가 끝난 3월 말 경에 현대캐피탈로 운반해 보관해 놓은 '명예회장 돈'"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당시 정몽구 회장이 해외 출장 중이어서 직접 보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책임 하에 비자금을 제공하고 정 회장 귀국 뒤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정 회장은 회사에서 한나라당에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뒤에 사후 보고를 받고 알았으며, 그 현금 100억원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자금이었다는 얘기였다. 아버지 대신에 아들, 가족 대신에 가신이 처벌받는 전통이 다시 발동한 것이다.

임직원을 '사무라이'로 만드는 기업문화

그런데 현대 측은 나중에 "80억원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개인재산과 비자금이고, 20억원은 현대캐피탈을 통해서 만든 비자금"이라고 말을 바꾸었고, 검찰은 이런 현대 측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을 건넨 모든 책임을 지고 불구속 기소된 김동진 부회장은 재판에서 "100억원 가운데 80억원이 정 명예회장의 돈이라는데, 상속인인 정몽구 회장이 이 돈의 존재를 모르고 김 부회장이 이 돈을 사용할 때 정 회장에게 보고도 안 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재판장의 질문에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결국 100억원의 출처를 둘러싼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이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고자 대기업 총수들의 불기소를 조건으로 기업과 '협상'(플리바게닝)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재벌이 천문학적인 돈을 현금으로 정치권에 건넸다는 점만 확인됐을 뿐, 돈의 출처나 조성 방법 등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서도 입증되었지만, 현대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25일 현대와 SK의 경영권 공백에 따른 파급효과를 분석한 자료를 내고 "현대-기아차의 경우 집중화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CEO 부재시 경영 공백 상황이 불가피하며, 이 경우 위기상황 초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할 만큼 현대기아차 그룹은 총수의 1인 지배체제가 당연시돼 있다.

결국 총수 일가의 아버지 대신에 아들, 가족 대신에 가신이 처벌받는 현대가의 전통도 총수 1인 지배체제의 기업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총수의 의사결정이 없으면 기업이 휘청거리기 때문에 임직원들 스스로가 일본 '사무라이'처럼 군주를 위해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992년 당시 정주영 회장의 5남인 정몽헌 현대상선 사장은 회사 운영과정에서 55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바 있다. 또 같은 해 정주영 회장의 6남인 정몽준 국민당 의원은 이른바 '부산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해 범인은닉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둘 다 92년 당시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무관치 않은 사건으로 아들(임원)이 아버지(총수) 대신 처벌받은 경우이다. 또 그것이 기업을 살리는 길이었다.

또 97년 대선 뒤에는 정부-여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강제모금한 이른 바 '세풍' 사건으로 기업들이 사법처리되었는 바, 이 때는 총수 대신에 임원들이 '총대'를 멨다.

1인 지배체제의 '덫'에 걸린 정몽구 회장

가신과 임직원들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예외적인 사례도 있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4대 대선에서 낙선한 뒤 93년 경리 여직원이 비자금을 폭로하는 바람에 업무상 횡령과 선거법 위반죄로 기소돼 사법처리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8월에는 대북송금·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에서 조사받던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면서 현대그룹에 큰 충격을 주었다.

검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현대차의 전체 비자금 규모는 600~800억원대로 추정된다. 검찰은 현대차가 이들 계열사의 비자금을 통합 관리해 온 것으로 판단해 정 회장의 지시나 보고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정 회장을 소환하면서 "비자금 조성과 기업 비리에 대해 몰랐을 리가 없다"고 말했으며 정 회장도 검찰 조사에서 관련 혐의 일부를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대선자금 수사 때의 100억원처럼 비자금 조성에 대해 몰랐다고 부인하고 임원들이 알아서 결정했다고 '총대'를 멜 경우, 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총수 일가는 책임을 면하고 임원진만 대거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검찰은 이미 "정 회장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다 했다"고 결론지었다. 정 회장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다하는 1인 지배체제 하에서 "집중화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CEO 부재시 경영 공백 상황이 불가피하며 이 경우 위기상황 초래 가능성이 높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정 회장 스스로 책임을 분산하지 않는 1인 지배체제의 '덫'에 걸린 셈이다.

게다가 이번 수사에서는 검찰이 비자금뿐만 아니라 '부의 편법 승계'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편법 승계의 이해 당사자인 정 회장 부자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현대가의 전통도 깨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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