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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통일교육협의회 초청 강연에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하여 "북한의 자기 판단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여러 가지를 다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자기 판단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

이 발언 외에도, 이종석 장관의 강연 내용 가운데에 관심을 끄는 코멘트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북한은 핵 문제와 금융조치 문제를 연계해 미국이 금융조치를 풀지 않으면 6자회담에 못 나오겠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서 북핵 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 많은 나라들이 미국한테 북한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사정을 봐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

"지금처럼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미국만이 대답할 수 있고 미국 내에서도 대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연합뉴스> 발췌)


핵 문제와 위폐 문제의 연계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

이 장관의 발언과 관련하여 다음 5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북-미 핵대결 구도에 대한 이 장관의 기본적 인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 장관은 '북한이 핵 문제와 금융제재 문제를 연계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핵대결의 발생 원인에 대하여 이 장관이 '미국적 관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북측이 이미 오래전부터 핵무장의 길을 걸어온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대항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북측은 자국의 핵무장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대응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측은 최근 미국의 금융제재 역시 대북적대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측은 핵 문제와 금융제재 문제가 상호 대응관계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두 문제를 연계하여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함께 논의한다면 얼마든지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핵 문제와 위폐 문제를 분리함으로써 자국이 대북 금융제재와 대북 적대정책이 상호 무관한 것임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금융제재와 대북적대정책 및 핵문제를 분리하는 것은 바로 미국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측의 양보를 '투항'으로 인식할 것

또 미국의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측이 선뜻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이는 미국에게 허점을 보이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도리어 대북 제재를 한층 더 강화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보기에, 그런 북측의 행동은 '양보'로 보이는 게 아니라 '투항'으로 비칠 것이 뻔하다.

북측은 다른 사안에서는 '동양적 미덕'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지만, 미국이 그것을 미덕이 아닌 '투항'으로 인식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굳이 미국에게 '불필요한 양보'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정일의 리더십>과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을 쓴 '북한 전문가'인 데다가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 장관의 자리에 있는 분이 이처럼 핵문제 및 북측 지도부에 대해 몰이해적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일 것이다.

북측이 약해지면 중·러는 등 돌릴 것

둘째, 이 장관은 현재의 국제관계를 상당히 '낭만주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는 "북한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 많은 나라들이 미국한테 북한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사정을 봐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측이 전향적 입장을 보인다면, 향후의 상황은 이 장관이 예견했던 것과 정반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마저도 북측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지금 같은 살벌한 상황에서 북측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마 대다수의 국가들은 '대세가 미국에게 기울었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나마 중립을 지키고 있는 것은, 북측의 국력이 제1차 핵대결(1993년) 때보다 훨씬 강하다는 판단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들이 대놓고 미국 편을 들지 않는 것은, 북측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측을 동정하기 때문도 아니다.

중·러가 사실상 북측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북측이 미국에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양국이 '북측의 힘'을 어느 정도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이 '준법 서약서'를 쓴다면, 이는 북측 스스로 '동지들'을 배신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미국은 재판관이 아니다

셋째, 이 장관은 문제 해결의 주도권과 관련하여 다분히 '흥미로운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발언 속에서는 (1)북측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면 (2)국제사회가 미국에게 '탄원서'를 제출할 것이고 (3)그렇게 되면 미국도 사정을 봐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배어 나오고 있다.

이는 이 장관이 지금의 대결구도를 '미국 우위'로 인식하고 있음을 표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이 문제의 '재판관'이 미국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곤경에 빠진 쪽이 미국인데, 그런 미국이 지금 북측의 사정을 봐 줄 만큼 여유가 있겠는지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구도를 북-미 쌍방의 대립구도로 파악하고 적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선보이고 있는 북측으로서는 이 장관의 발언을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미 간의 대결구도를 미국 우위의 관점으로 인식하는 분이 과연 통일 및 한반도 문제를 민족 주체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측이 단호한 태도 보이면 미 온건파 입지 강해져

넷째, 이 장관은 북측의 비타협적 태도가 미국 내 온건파들의 입지를 축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발언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구사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이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면, 이는 미국 강경파의 입지를 도리어 강화시켜 주는 것이 된다.

북측 입장에서는, 어차피 미국이 북측을 극한까지 몰아세울 수는 없으므로 미국의 강공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이 미 강경파들의 '진'을 빼놓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강경파들의 정책에 맞서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도리어 온건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켜는 방편이 될 것이다.

평화만능주의로는 문제 해결 불능

다섯째, 이 장관의 발언 속에서 묻어나오는 '평화 만능주의'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관이 북측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긴 했지만, 이 장관이라고 해서 문제의 근본 원인이 미국에게 있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북측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좋은 게 좋다'는 인식의 표출일 것이다. 이는 누가 '트러블 메이커'인가를 규명하기보다는, '일단 시끄러운 것은 싫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미국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만만한' 북측에게 조용히 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통일보다는 평화'를 우선시하는 한국정부의 심층 태도와도 일정 정도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통일을 완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한국정부처럼 지나치게 '평화 만능주의'로 흐른다면 결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평화를 이룩하자면,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일정 정도는 '현상변경'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집안을 깨끗이 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분주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이룩하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고통을 감수해야 할 터인데, 막연히 평화 지상주의에만 집착한다면 이 세상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북측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맞서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고 민족의 자주를 얻겠다는 것이 북측 지도부의 의지다. 그런데 세계 최강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는 일이 과연 100%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이상과 같은 5가지 점들을 살펴볼 때에, 이 장관의 5일자 발언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는 발언'이다. 물론 이 장관의 발언은 북-미 대결구도가 더 첨예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충심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러한 발언으로 인해 한국 국민이 문제의 본질을 잘못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공조의 또 다른 당사자인 북측마저 한국정부를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관은 북측더러 "여러 가지를 다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지만, 이 장관 역시 다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통일부 장관직이 선생의 입장이 되어 북측을 가르치는 자리인지 아니면 북측과 함께 통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자리인지를 "다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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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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