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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8일 밤 9시 25분]

▲ <객석> 3월호는 음악연구가 송병욱씨의 기고문을 통해 독일 연방문서보관소(Bundesarchiv) 산하 영상기록보관소(Filmarchiv)에 존재하는 '안익태 영상물'의 내용을 소개했다.
▲ <조선일보> 8일자 A6면 보도 일부.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이 만주국 창립 기념음악 작품을 작곡하고 대형 일장기가 걸려있는 독일 콘서트홀에서 직접 지휘했다는 것을 보도하고 있다.
ⓒ 조선일보 PDF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1942년 일제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이를 연주한 동영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재연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애국가의 원곡 '한국 환상곡'이 멜로디의 일부를 이 음악으로부터 빌려왔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음악연구가 송병욱(훔볼트대 음악학과 석사과정)씨는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3월호 기고문을 통해 독일 연방문서보관소(Bundesarchiv) 산하 영상기록보관소(Filmarchiv)에 존재하는 '안익태 영상물'의 내용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안익태가 1942년 독일 베를린 구(舊) 필하모니 홀에서 지휘하는 동영상 스틸사진들을 8일자 신문에 보도했는데, 이 동영상은 2000년 3·1절에 MBC <뉴스데스크>에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이미 '구문'인 것이다.

MBC 베를린특파원이었던 손관승 보도제작1 책임프로듀서가 당시 리포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스틸 사진은 MBC가 2000년 이미 보도

"지휘봉을 잡은 안익태의 손이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베를린 필하모니의 단원들도 안익태의 손길 하나하나에 따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베를린 방송합창단의 화음이 장중합니다. 극동의 이름 모를 나라 조선에서 온 작곡가 안익태의 얼굴과 그의 음악이 유럽 전역에 처음으로 중계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지휘하는 안익태의 모습에 노랑머리의 나치 고위관료들과 일본 황실의 가족들도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이 화면은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만주국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음악회입니다. 이 화면은 35mm의 필름형태로 독일 국립영화보관소의 창고 깊숙이 숨겨져 있다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곡을 연주한 악단이 베를린 필하모니가 아니라 베를린대방송관현악단이라는 점을 빼고는 <객석>과 <조선>이 보도한 동영상과 동일하다. 손 CP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익태가 2차대전 때 독일에서 활동하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단독 취재한 내용인데, 국내언론 몇 군데에서 인용 보도한 뒤 흐지부지됐다"고 설명했다.

6년만에 새로운 의미로 부활한 안익태 동영상

그러나 송병욱씨의 <객석> 기고문은 안익태의 친일 이력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있다.

<객석>에 따르면, 이 영상물에는 '만주국 창립 10주년 축하 음악회'라는 독일어 자막이 찍혀있다. 연주곡은 '만주국'이고, 작곡 및 지휘는 안익태, 연주단체는 베를린대방송악단, 합창은 라미 합창단으로 되어있다.

독일주재 일본외교관이었던 이하라 고이치가 자막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작곡자의 이름을 한국어가 아니라 안익태의 일본식 표기인 '에키타이 안'(Ekitai Ahn)으로 표시했다. 손관승 CP도 "필름에 안익태의 이름이 일본어로 표기되어 있는 바람에 2000년에도 필름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송병욱씨는 기고문에서 "영상물이 전해주는 '만주국'에는 우리가 현재 알고있는 '한국 환상곡'의 두 선율("무궁화 삼천리 나의 사랑아, 영광의 태극기 길이 빛나라", "화려한 강산 한반도, 나의 사랑 한반도 너희 뿐일세")이 거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만주국'은 1943년 2월 11일 빈 심포니 연주회에서도 연주됐다. '만주국'은 그동안 악보도 없었고 안익태의 작품 연보에도 올라있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하라 고이치가 쓴 '만주국' 합창 가사를 보면, '만주국'의 창작 의도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총 4연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10년 세월 제국은 무르익었다. 부지런한 땀은 보답받았네. 민중은 환호한다. 나라는 저 멀리 빛난다./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되어 사람들은, 희망에 차 번성한다. 난(蘭)은 환히 피었고, 새 질서의 첫 열매가./
우리는 일본과 굳건히 연결되었네. 이 신성한 목표 속에 하나의 심장과도 같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독일이여 또한 이탈리아여 힘을 냅시다./
영원한 봄날은 이미 가까이 와있네, 모든 족속 만족해할 그날이. 보라! 저 만주 평원 위에, 향기로운 난 환히 피었다."


'만주국'과 '한국환상곡'의 가사는 각각 다르지만, 두 군데에서 아주 흡사한 선율이 있다는 게 송씨의 주장이다. 송씨는 기고문에서 공통 선율 이외에 ▲'만주국' 축전음악의 원제에서 '만주국'을 '코리아'로 바꿔 넣으면 그대로 '한국 환상곡'의 원제목이 된다는 점 ▲두 작품 모두 원래 3악장의 관현악곡이었다는 점을 들어 두 작품이 매우 유사하다는 주장을 폈다.

1935년 7월 미 필라델피아 음악대학을 졸업한 안익태는 그해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리는 작곡 콩쿠르에 응모하기 위해 애국가가 없는 '한국 환상곡'을 작곡한 뒤 이듬해 6월 애국가 부분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환상곡'은 1938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된 후 1940년 이탈리아 로마를 끝으로 더이상 연주기록이 없는 데 반해 '만주국'은 1942년과 43년 잇달아 공연됐다.

"'만주국'과 '한국환상곡', 매우 흡사"

▲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행적이 밝혀지면서 친일논란이 새롭게 불붙을 전망이다.
송씨는 더 나아가 이후쿠베 아키라(伊福部昭)의 1935년 작품 '일본 광시곡'이 '한국 환상곡'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론도 내놓았다. 이후쿠베 아키라는 영화 <고지라>의 테마 음악으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작곡가인데, 지난달 8일 91세 나이로 타계했다.

송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1936년 '일본 광시곡'이 초연될 무렵 안익태는 필라델피아 심포니 클럽의 부지휘자였으므로 이 같은 사건을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제목의 유사성과 창작시기로 볼 때 한국 환상곡은 일본 광시곡의 성공에 자극받아 작곡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이 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는데, <객석>은 송씨의 두번째 기고문을 4월호에 실을 예정이다.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의 건국을 축하하는 음악을 만들고 지휘했다는 사실은 그의 이력에 뼈아픈 오점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1945년 해방 후 안익태가 보완한 뒤 1948년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1964년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가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뒤 '새 국가 제정' 시비가 붙었지만, 1977년 정부와 한국음악협회는 국가를 새로 만들지 않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친일문제연구가인 정운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씨는 "안익태는 그동안 일제시대 한인음악가중에서 흠 없는 인물로 알려져 왔다"며 친일 주장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익태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학술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는 안익태기념재단(이사장 김형진)은 지난 6일 이사회에서 심포지엄에서 안익태의 공과를 두루 다룬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안익태의 손자 미구엘 안(스페인 마요르카섬 거주)씨는 "할아버지가 나온다는 동영상을 보기 전에는 이번 건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견을 <오마이뉴스>에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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