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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라스 민박집의 아침식사
ⓒ 김준희
에르킨과 안티카는 오전 10시 조금 못 미쳐서 민박집에 도착했다. 작고 조용한 그리고 손님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민박집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쉬고 있을 때 밖에서 안티카의 차가 빵빵거렸다. 준비를 해서 밖에 나가보니 에르킨과 민박집의 사장이 뭔가 대화를 하고 있다. 내가 나가자 에르킨이 날 맞아주며 말했다.

"어제 너가 말했던 그 전투에 대해서 사장님과 얘기하고 있었어."
"민박집 사장님이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응. 오래 전에 이 부근에서 중국이랑 큰 전투가 있었는데, 그 중국군의 대장이 한국사람이었다던데…."

민박집 사장님은 젊어서 많은 곳을 여행했고, 탈라스의 역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에르킨, 안티카와 함께 나는 차를 타고 마나스 공원으로 향했다. 마나스 공원은 탈라스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다. 에르킨이 말했다.

"어쩌면 나 한국에 갈지도 몰라"
"정말? 언제?"
"11월에. 행사에 초청을 받았는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지금 내 이름은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어."

에르킨의 말은 이렇다. 우리나라 5·18 광주재단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인권학교가 11월 광주에서 열리는데, 현재 자신의 이름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단다. 참가자 중에서 혹시 결원이 생길 경우에 자신이 대신 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고. 그 인권학교는 아시아 10여개 국가에서 나라마다 한두 명씩 초청하는 것으로, 만일 자신이 참석한다면 중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그 학교에 참가하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잠시 후에 우리는 마나스 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키르키즈스탄의 국가영웅인 마나스의 묘와 동상,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려서 입구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넓은 잔디밭과 그 사이로 벽돌이 깔린 길이 나온다. 둥근 원형공간 가운데에 마나스의 동상이 높이 서 있고 그 주위를 많은 동상이 둘러싼 모습이다. 비쉬켁에 있는 마나스 동상은 말을 탄 채로 칼을 휘두르는 역동적인 모습이었는데, 이곳의 동상은 두손으로 칼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다. 에르킨이 말했다.

"마나스 한테는 40명의 충실한 부하가 있었어. 여기 보면 가운데에 마나스의 동상이 있고, 그 주위에 원형으로 40명 부하의 동상이 놓여있지."

'마나스와 40인의 동상'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차마 그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이곳은 신성한 장소라서 술도 마실 수 없는 곳이라는데, 그런 얘기를 해서 산통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키르키즈'라는 어원과도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키르키즈'라는 단어는 '40인의 민족' 또는 '40인의 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의 40이 마나스의 40명 부하와 연관되는지는 모르겠지만, 40이라는 단어가 키르키즈스탄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 마나스와 40인의 동상. 가운데 높이 마나스의 동상이 있고 그 주위에 둥그렇게 40인의 동상이 있다.
ⓒ 김준희

▲ 마나스의 무덤. 내부는 비어있다.
ⓒ 김준희
조금 더 걸어간 곳에는 마나스의 묘가 있다. 하지만 이 묘는 그냥 텅 비어있는 곳으로 실제 마나스의 시신이 있는 묘는 아니라고 한다. 에르킨의 말에 의하면 마나스가 죽은 이후로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칭기즈칸이 무덤도 알리지 않고 사라져간 것처럼.

상징적인 존재인 이 무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이스마일 사마니드 묘와 비슷한 모습을 가졌다. 사각형의 건물에 비슷한 양식. 문은 잠겨있고 구멍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방이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자."

에르킨은 나를 전망대로 이끌었다. 전망대라기 보다는 낮은 언덕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리 높지 않은 흙언덕을 헉헉거리며 오르자 이곳에서는 마나스 공원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멀리 탈라스를 두르고 있는 낮은 산들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탁트인 경치를 바라볼수 있는 이곳의 정상에는 키르키즈스탄의 붉은 국기가 꽂혀있다.

에르킨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 이곳에서 군인들이 외부에서 오는 적을 감시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본 탈라스의 지형은 완만한 평지다. 해발 몇 미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멀리보이는 산줄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지라서 쉽게 외부의 적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 마나스 공원의 전경. 가운데 아래쪽에 박물관이 보인다.
ⓒ 김준희
이곳에서 잠시 경치를 감상하고 나서 우리는 박물관으로 향했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 1, 2층을 마나스 관련 전시실로 만들어 두고 있다. 에르킨이 박물관의 사무실에서 뭐라고 대화를 하고 나더니 나에게 말했다.

"잠시 후에 가이드가 올거야. 가이드한테 설명을 듣는 게 좋을거 같아서"

박물관의 2층에서 서성이고 있자 잠시 후 여자 가이드가 나타났다. 굳은 얼굴로 작은 지휘봉을 들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는 그 모습은 가이드라기 보다는 유격장의 조교를 연상시켰다. 박물관 2층은 마나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장면을 인형을 통해서 재현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탈라스 지역에서 오래전에 사용한 무기, 옷, 갑옷, 그릇 등을 전시한 공간도 있다.

이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마나스의 생을 인형으로 전시한 부분이다. 키르키즈스탄은 오래전부터 중국과 사이가 안좋았다고 한다. 하긴 이웃나라끼리는 원래 사이가 안좋은 법이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중국과 티격태격하던 시기에 중국에서 마나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사절단이 이곳에 찾아온 장면을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당시에 마나스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중국사절단이 타고 온 낙타에 돌을 던져서 한번에 낙타를 죽였다고 한다. 이것을 본 중국사절단은 '저 강한 아이가 마나스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마나스의 죽음도 흥미롭다. 14세기에 베이징으로 쳐들어간 마나스는 중국자객의 독검을 등에 맞고 죽었다고 한다. 14세기면 중국은 원나라 또는 명나라 시대다. 박물관에는 베이징에서 공성전을 벌이는 마나스 군대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해놓고 있다. 그리고 마나스의 뒤로 접근해서 암살하는 중국자객의 모습도 그려놓았다. 죽을 당시에 마나스는 60세가 넘었는데 4개월된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 탈라스 강
ⓒ 김준희
이런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서 만든 것이 '초원의 일리아드'라고 부르는 '마나스 서사시'이다. 키르키즈스탄에서 마나스가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는 만큼 이 마나스 서사시도 많은 인기가 있다. 박물관의 한쪽에는 마나스 서사시만을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는 만담가들의 사진과 수많은 마나스 서사시 관련 책을 전시하고 있다. 한 만담가는 10시간 동안 쉬지않고 마나스에 관한 이야기를 할수있다고 한다.

마나스 서사시는 마나스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과 손자의 활약으로 이어진다. 박물관 계단의 위쪽 벽에는 마나스가 장성한 그의 아들, 손자와 함께 앉아있고 그 뒤에 40명의 부하가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커다란 그림이 있다. 내가 이 그림을 보고 있자 에르킨이 말한다.

"저 그림은 사실이 아니야. 마나스는 아들, 손자하고 나이 차이가 많아서 저렇게 한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거든."

마나스는 거의 신화적인 개념으로 취급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에르킨의 설명을 듣다보니까 마나스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마나스에 관한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까? 여행을 오기 전에 중앙아시아와 유목제국에 관한 많은 자료와 책을 보았지만, 그중 어디에도 마나스가 실존인물이라는 기록은 없었다. 아니 마나스라는 이름 자체를 언급한 문헌이 없을 정도였다.

에르킨은 나에게 가이드의 설명을 통역해주면서 'legendary hero'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을 '전설적인 영웅'이란 의미로 사용한건지, '전설상의 영웅'이란 의미로 사용한건지 모르겠다.

"마나스가 정말 실존인물이었어?"

이렇게 묻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아야했다. 하긴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이 마나스를 실존인물로 믿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서 자긍심을 느낄수 있다면 나로서는 그냥 그 믿음을 존중해주는 수밖에.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탈라스 시내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탈라스 평원이 어딘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1.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2. 에르킨은 작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광주재단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인권학교에 참석하고 키르키즈스탄으로 귀국전에 서울에서 절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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