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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쉬켁 밸리댄서 동상
ⓒ 김준희
비쉬켁에는 두개의 버스터미널이 있다. 비쉬켁의 중심부를 기준으로 서쪽에 하나, 동쪽에 하나가 있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동부터미널, 서부터미널 정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탈라스에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잠을 설친 나는 일찍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했다. 빵과 주스로 대충 아침밥을 먹고 나서 배낭을 메고 시내를 서성이다가 11시가 되어서 에르킨을 만나기 위해 서부터미널로 향했다.

에르킨은 어제와 같은 모습의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날 반겨주었고, 에르킨의 옆에는 한사람이 더 있다. 탈라스에 살고 있는 '안티카'라는 이름의 에르킨 동료가 에르킨을 태워가기 위해서 폭스바겐 승용차를 끌고 온 것이다. 우리는 함께 차에 올라서 탈라스로 향했다. 에르킨과 함께 탈라스에 갈수 있다는 것만도 행운인데, 승용차로 편하게 간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좋은 날이다.

탈라스에 가기 위해서는 멀리 보이는 천산산맥 줄기를 뚫고 약 5시간을 달려야 한다. 에르킨은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정보기관에서 근무 중인 친구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고 싶지만, 경쟁이 워낙 심해서 아직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곳으로 유학가려면 서류전형과 영어 인터뷰, TOEFL 시험을 고루 통과해야 하는데 TOEFL 시험에서 두번 미끄러졌다고 한다. 영어회화와 TOEFL은 당연히 다른 문제일테지만 유창한 에르킨의 영어실력으로 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너 영어 잘하는데 왜 TOEFL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어?"

에르킨이 웃는다.

"키르키즈스탄에서는 TOEFL 교재를 구할 수가 없어. 교재는커녕 기출문제도 구하기가 힘들거든. 따로 공부를 못하니까 떨어질 수밖에 없지"

보통 22~23살에 결혼하는 키르키즈스탄 남자들에 비하면 28살의 에르킨은 노총각인 편이다. 에르킨은 박사학위까지 받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면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천산산맥을 향해서 달리던 차는 어느덧 산맥으로 접어들었다. 양옆으로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사이로 '카라발타'라는 이름의 작은 강이 흐른다. '카라'는 '검다'라는 뜻이고 '발타'는 도끼라는 뜻이다. 검은 도끼?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거야?"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차는 강을 끼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해발 3500m의 산줄기를 넘어서 완만한 지형으로 들어서면 그곳이 탈라스 지역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미시령이나 한계령을 연상시키는 도로로 진입했다. 구불구불한 포장도로를 따라서 산줄기를 올라가다보니 멀리 보였던 만년설이 차츰 눈앞으로 다가온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천산산맥의 준령(峻嶺)들. 난 차의 창문을 닫았다. 구름없는 하늘의 햇살은 따갑지만, 만년설이 있는 해발 3000m의 바람은 차갑다. 옆을 보니 어느새 에르킨은 잠을 자고 있다.

▲ 탈라스 가는 길. 에르킨(왼쪽)과 안티카.
ⓒ 김준희

▲ 탈라스 가는 길. 카라발타 강.
ⓒ 김준희
탈라스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그곳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300여년 전,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인 고선지 장군이 동쪽으로 진격해오던 아랍 연합군과 최후의 전투를 벌인 곳이 탈라스 부근의 평원이라고 한다. 정확한 전장의 위치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알아서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무작정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막연한 기대이지만 난 그 전장에 서보고 싶고,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서쪽을 바라보고 싶다.

어찌보면 그렇게 커다란 전투가 지금의 키르키즈스탄에서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키르키즈스탄은 1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산악지형일 것이다. 수만의 대군이 진을 치고 맞붙는 전장이라면 그곳은 당연히 넓은 평원이라야 할텐데, 국토의 80%가 해발 1500m 이상인 이 산악국가 어디에 그런 평원이 있을까?

이 전투를 후에 '탈라스 전투'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의 중앙아시아 세력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이 전투 이후로 동양과 서양 모두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바그다드로 끌려간 중국 포로에 의해서 서양에 종이와 비단의 제조법이 전해지고, 중앙아시아에서 전면 철수한 당나라는 내부반란에 시달리며 세력이 약해져갔다.

나만의 과장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가 맞붙은 '이수스 회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한니발이 격돌했던 '자마 회전'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일 것이다. 당시에 고선지 장군도 이 산맥을 넘어서 서쪽으로 행군했을지도 모른다.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서역을 정벌했던 고선지 장군이라면 이 산맥을 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잠에서 깬 에르킨은 창밖에 모여 있는 노점에서 '그루샤'라는 이름의 과일을 한 봉지 샀다. 생김새와 크기가 약간 다르지만 이 과일은 우리나라의 배를 연상시키는 맛을 가졌다. 운전을 하는 안티카에게 한개 권했지만 안티카는 지금 라마단 금식 기간이라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독실한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을 지킨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에르킨의 말에 의하면 라마단 기간 30일 동안 낮 시간에는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한다.

"낮 시간이라는게 몇 시부터 몇 시까지를 말하는 거야?"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데 하루가 지날 때마다 금식시간이 2분씩 줄어들어. 그러니까 한달 후에는 1시간이 줄어드는 거지."
"정말 아무것도 안 먹어? 물이나 차이도 안 마셔?"
"아무것도,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안 먹어."

몇 개의 터널을 거친 차는 이제 낮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 도로주위에는 유목민들의 전통 가옥인 '유르따'가 보이고 그 주위에는 말젖을 발효시켜서 만든 마유주를 팔고 있는 현지인들이 몇몇 모여 있다. 밤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졸음이 온다. 따가운 햇살과 부드러운 승용차의 움직임이 더 잠을 재촉하고 있다. 언제 내가 달리는 폭스바겐에서 잠을 자볼 수 있겠나. 자세를 편하게 하고 눈을 감았다. 당시에 고선지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 서쪽을 향해서 가고 있다. 운이 좋다면 얼마 후에 그 평원에 서볼 수 있을 것이다.

▲ 탈라스 가는 길. 해발 3000m 지점.
ⓒ 김준희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차는 어떤 마을을 지나고 있다. 작은 집들이 있고 소와 말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여기가 탈라스야?"
"탈라스 지역이야. 탈라스 시는 아직 좀 더 가야해."

아까 보았던 높은 산은 뒤로 물러나있고 주위의 풍경은 완만한 경사의 언덕과 그 위로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선 모습이다. 에르킨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왜 탈라스에 가려는 거야?"

뭐라고 대답을 할까.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작은 도시로 오는 것이 이상해 보였나보다.

"예전에 탈라스 부근에서 큰 싸움이 있었거든"
"언제?"
"8세기 중반에. 중국군대하고 아랍 연합군이 맞붙은 싸움이었는데, 그 중국군대의 대장이 한국사람이었어."
"누가 이겼는데?"
"아랍연합군이 이겼지."

탈라스에 도착한 시간은 5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에르킨은 직접 작은 호텔로 안내해 주었다. 작고 깨끗한 호텔이 하루밤에 20달러다.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 에르킨은 안티카와 얘기해보더니 더 싼곳으로 가자고 한다.

"더 싼곳이 있어. CBT라는 곳이야"
"CBT? 그게 뭐야?"
"Community Based Tourism의 약자야"

대충 생각해보니까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 같은 개념인 것 같다. 탈라스는 작은 도시다. 다시 승용차로 조금 달려서 시의 외곽으로 들어서자 작은 주택이 죽 늘어선 길이 나온다. 그중에서 제일 끝의 집앞에 멈추었다. 'Hospitality : Community Based Tourism'이라고 써진 간판이 붙어있는 곳이다.

에르킨은 이 집의 사장과 몇 마디 대화를 하더니 나를 안내해주었다. 이곳의 가격은 아침식사 포함해서 하루에 10달러다. 쾌적한 시설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격이 싸고 아침식사까지 제공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난 이곳에서 묵기로 하고 에르킨, 안티카와 인사를 했다. 에르킨이 말했다.

"내일 마나스 공원에 갈래?"
"마나스 공원?"
"응. 마나스가 태어난 곳이 탈라스거든. 마나스 공원에 가면 마나스 동상과 마나스 무덤도 있어. 원한다면 같이 가자."

나는 그러겠다고 응했다. 안티카, 에르킨과 내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숙소 같아서 혹시 다른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이 곳에는 나밖에 머무는 사람이 없다. 아무튼 키르키즈스탄에 와서 에르킨을 만났다는 것이 행운이고 고마운 일이다.

▲ 탈라스 시내의 모습.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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