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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누명을 쓴 거다."

위성락(사진 왼쪽)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는 19일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오는 위 공사의 목소리에는 '정말 억울하다'는 느낌이 짙게 배어 있었다.

위 공사는 "내 명예가 훼손되고 심지어 저를 사기꾼으로 보는 독자들도 있는데 내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라며 "지난 몇 년 사이에 진보매체로부터 얻어맞았는데 그게 참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 2004년 8월 정무공사로 영전해 현재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위 공사는 지난 2003년 10월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관련된 외교각서 초안의 교환을 주도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로부터 대통령·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 누락의 핵심인물로, 특히 언론에 의해서는 '외교각서 초안 바꿔치기'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위 공사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침에 충실한 안(제3국 분쟁 불개입 조항이 들어 있는 이른바 'A안')을 미국측에 보냈기 때문에 외교각서 초안을 바꿔치기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200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4차회의에서 한국은 미국 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 대한 외교각서 초안을 전달했다.

위 공사는 "실무차원에서 미국 측의 응수를 타진해보려는 취지였다"며 "그런 아이디어에 대해 미국 측이 호의를 보인다면 (상부에) 공식 건의해 우리 정책으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위 공사는 "(외교각서 초안을 교환하는 것은) 외교적 관행"이라고 밝힌 뒤, "그래서 NSC에서도 습작수준을 보낸 것이라고 해명한 것"이라며 "이걸 가지고 상부를 속였다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가장 센 A안을 보냈지만 미국이 거절했다"

평통사, 평택대책위, 번민련남측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반미월례집회에서 '국민기만'이 적힌 종이를 붙인 위성락 주미공사의 사진을 모형감옥에 넣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평통사, 평택대책위, 번민련남측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반미월례집회에서 '국민기만'이 적힌 종이를 붙인 위성락 주미공사의 사진을 모형감옥에 넣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위 공사는 "실무자는 (미국측의) 응수를 타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문구를 검토해볼 수 있다"며 "그걸 내부에서 협의하다가 내가 제일 센 거(A안)를 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가지 안을 생각하는 것은 실무자의 재량"이라며 "(문제가 된) B안은 미국에 제시된 것도 아니고 대외적으로 실행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외교부 북미국에서는 미국 측에 전달할 외교각서 초안으로 두 가지를 검토했다. 제3국 분쟁 불개입를 명시한 A안은 노 대통령의 의중과도 일치하는 안이다. 반면 B안에는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라는 다소 모호한 문구가 들어 있었다.

국정상황실은 미국 측에 전달되지 않은 B안을 자체 입수해 청와내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결국 '외교각서 초안 바꿔치기' 의혹으로 이어졌다. 즉 외교부가 미국 측에는 B안을 보내놓고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에 A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 공사는 외교각서 초안 바꿔치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A안의 경우) 형식은 각서지만 세 가지 포인트가 다 들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뜻이 반영돼 있고 국정상황실 문건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 측이 수용했다면) 공을 세운 셈"이라고 밝혔다.

위 공사가 언급한 '세 가지 포인트'란 ▲한미상호방위조약 준수 ▲제3국 분쟁 불개입 ▲진정한 사전협의 등을 말한다. 즉 2003년 10월 한국이 미국 측에 전달한 외교각서 초안(A안)에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이 내용들이 다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측의 '답변'은 우리가 요구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위 공사는 "우리는 제3국 분쟁에 개입할 수 없고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이동시 사전협의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며 "특히 우리는 우리가 가부(yes or no)를 정할 수 있는 사전협의를 요구했지만 미국 측에서는 한국이 승인권이나 비토권을 갖는 것에 대해 준비가 안돼 있더라"고 전했다.

또한 위 공사는 "B안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돼 있지만 표현이 마일드(mild)하고 외교적일 뿐"이라며 "강한 걸 주면 상대가 그대로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일드하게 표현하면 협상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위 공사는 "몇가지 조각을 엮어서 곡해하고 엄청나게 오해한 것"이라며 "비교적 단순한 일인데 이걸 의심하는 사람이나 오해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일로 비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2004년 1월 워싱턴 방문시 실무자의 실수로 A안이 아닌 B안이 자신에게 전달된 것이 의혹을 더 증폭시켰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 공사 졸업식 발언 때문에 미국이 반발한 것 아냐"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3월 8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3기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도들에게 경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3월 8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3기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도들에게 경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연합뉴스 백승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남는다. 지난 2004년 3월 노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미국측이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느냐"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이는 외교각서 초안 바꿔치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즉 위 공사가 밝힌 것처럼 외교부가 미국 측에 B안을 전달한 뒤 공사 졸업식 발언을 통해 노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나자 NSC에는 A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위 공사는 "노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미국이 반발한 게 아니다"라며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자꾸 공개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한국 측이 이것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니까 그렇게 얘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위 공사는 "이런 일을 안 해본 사람이 미국측으로부터 '불쾌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한국 측이 말을 바꿨다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며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다루는 전 과정에 대해 미국 측이 불평하는 것인데 이것을 제3자가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 공사는 "민감한 외교교섭이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걸 공론화해서 논란이 되니까 그것에 대해 미국이 불평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 측에서 싫어하는 안을 내서 미국이 거절했는데 한국이 미국을 디스터빙(disturbing, '불안하게 하는' 혹은 '교란시키는') 한다는 것은 연결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즉 한국이 전달한 A안에 대해 미국 측이 못마땅하게 생각해 거절했는데 노 대통령의 공사 졸업식 발언 직후 미국측이 '한국이 말을 바꿨다'고 불평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위 공사는 "노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에서 연설한 내용과 미국 측에 전달한 외교각서 초안의 내용은 같다"며 "같은 내용인데 미국측이 불평한 것은 외교각서 초안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 공사는 "(2003년 10월)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하거나 합의해준 바가 없다"며 "한국과 미국이 서로 노(no) 노(no) 하다가 끝난 것"이라고 밝혔다.

위 공사는 "우리는 (사전협의조항에 대해) 사안별로 검토해서 노(no) 할 수도 있고 예스(yes) 할 수도 있다고 미국 측에 설명했다"며 "물론 반미 스탠스에서 보면 이것이 반미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저는 대미협상팀에서 강한 입장을 취해왔다"고 항변했다.

"국정상황실 문건은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 아닐 것"

최재천 의원이 지난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FOTA 5차회의 당시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위 공사는 정반대라고 밝혔다.
최재천 의원이 지난 2일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부는 2003년 10월 FOTA 5차회의 당시 미국측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교환각서 초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위 공사는 정반대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또한 위 공사는 지난 2004년 4월 두 차례에 걸친 NSC 청문조사가 끝난 뒤에도 국정상황실에서 이전과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자기(부서) 차원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며 "판결결과가 중요하지 판결 후에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은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위 공사는 "국정상황실 문건(2005년 4월 18일자)을 보면 '읽어봐 주기를 부탁드린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부탁드린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며 "그 문건은 (언론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비슷한 사람에게 보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위 공사는 국정상황실이 자신에 대한 엄중한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과 관련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왜 그런 것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사안 때마다 어떻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밝혔다.

위 공사는 "이것은 외교안보의 난맥상이 아니다"라며 "(특정) 개인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논란은 생산적인 논쟁이 아니었다"며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단순한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위 공사는 "2005년 당시 도저히 해명이 안되니까 미 대사관에 확인한 결과 미국측에 A안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돼 누명을 벗게 됐다"며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근거도 없어졌고 국정상황실도 납득해 다 끝났다"고 밝혔다.

"나는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니다"
'각서 바꿔치기' 논란의 핵심 위성락 정무공사는...

위성락(53)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외무고시(13회)에 합격한 뒤 본격적인 직업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위 공사는 외무부 동구과 과장과 주미 참사관을 거쳐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통일·안보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와 워싱턴 근무 등을 통해 대미협상의 노하우를 축적해온 위 공사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6자회담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에 참여했다. 당시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와 함께 참여정부 대미라인의 핵심인물로 부상했다.

하지만 위 공사는 지난 2003년 말과 2004년 초에 불거진 '외교부의 참여정부 외교정책 비판 발언' 파문으로 문책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윤영관 장관의 요청과 노 대통령의 발탁으로 NSC 정책조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노 대통령은 "유능하다고 하니 실력을 발휘해 보라. 그리고 내가 정말 반미주의자인지 옆에서 직접 관찰해보라"며 위 공사를 발탁했다고 한다.

특히 위 공사는 2003년 외교부 북미국장으로 재직하면서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 협상 관련 외교각서 초안을 교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언론에 의해 대통령 보고를 누락한 핵심인물로, 외교각서 초안 바꿔치기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위 공사는 19일 저녁 전화통화에서 자주파-동맹파의 대립구도에 대해 "그런 구분은 이롭지 않다"며 "저는 어느 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익을 지키는 방향의 건전한 논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공사는 2004년 8월부터 현재까지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로 재직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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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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