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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월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월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로이터/연합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한국측 기본 개념 1)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공동성명 문안 1)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한국측 기본개념 2)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공동성명 문안 2)

문제는 '기본 개념 2'와 '공동성명 문안 2'의 다른 점

눈치 빠른 독자라면 위 두 문안의 비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기본 개념'은 지난 12월 29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회의에서 논의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협의 추진 방안' 회의록에 담긴 한국 정부의 협상안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한국측 기본개념 1'은 '공동성명 문안 1'과 토씨 하나 안틀리고 똑같다. 이는 한미 간에 상당한 입장 차이를 보였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둘러싼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미국 정부가 바라던 바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본 개념 2'와 '공동성명 문안 2'의 다른 점이다.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바뀌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갑·열린우리당)이 2월 1일 국회 토론회에서 공개한 NSC 상임위 회의록에 따르면, 조영택 국무조정실장이 "전략적 유연성 인정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라고 묻자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미국이 침략을 받지 않은 경우에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음. 이와 관련, 외교부 조약국은 한·미 합의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함. 따라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정신'으로만 하기보다는 '문자와 정신'으로 엄격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함. 그러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서 절충한 것이 현재의 ③항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양보가 한미방위조약에 어긋난다는 것 알았다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문제점을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도 이를 공론화시키지 않고, 국민을 속여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문제점을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도 이를 공론화시키지 않고, 국민을 속여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와 같은 '문맥'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이 침략을 받지 않는 경우에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전략적 유연성)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도 이를 공론화시키지 않고, 국민을 속여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이종석 차장은 이날 NSC 상임위 회의에서 그간의 협상 내용과 관련,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측이 제시한 3개 기본개념 중 '①전략적 유연성'과 '② 동북아 분쟁 불개입'에 대해서는 미측과 합의를 보았으나, 셋째('③사전협의')는 미결 상황임. 우리측은 ③과 관련 향후 상황 도래시 논의하자는 입장임. 따라서 가능하다면 '제2안 : 공동성명 I'로 가는 것이 바람직함."

이에 따르면 공동성명 문안에 대한 정부의 해석과는 달리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하게 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사전 혹은 사후에 대한 '합의'는 물론 '협의' 조항조차 없기 때문이다.

한편 최 의원은 지난 1월 2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한국 PSI 참여, 지난해 말 이미 결정' 기사에서도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 개최한 NSC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키로 결정해 놓고서도 그 결정을 '보안'에 부쳐 놓았다가, 이번에 워싱턴에서 열린 '제1회 한·미 전략대화'의 공동성명을 통해 워싱턴발(發)로 국내에 공개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최재천 의원이 공개한 NSC 상임위 회의에서 논의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협의 추진 방안'이다(최 의원은 외교적 민감성을 고려해 전문을 공개하지는 않고 일부는 생략한 채 공개했다).

[2005. 12. 29, 木, NSC 상임위 회의 논의 내용]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협의 추진 방안>


□ 외교부는 「제3안 : 공동성명 II」입장임. 정치적 성격의 선언이지만 통제절차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봄.(외교부장관)

□ 우리측이 제시한 3개 기본개념 중「①전략적 유연성」과 「② 동북아 분쟁 불개입」에 대해서는 미측과 합의를 보았으나, 셋째(「③사전협의」)는 미결 상황임. 우리측은 ③과 관련 향후 상황 도래시 논의하자는 입장임. 따라서 가능하다면「제2안 : 공동성명 I」로 가는 것이 바람직함. (NSC 사무처장)

□ 「제2안 : 공동성명 I」로 합의되어도 美側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큰 성과로 볼 수 있음. 우리측 기본개념 1, 2가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굳이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필요는 없음.(안보보좌관)

□ … (‘외교적 민감성을 염려’하여 생략함) …

□ 전략적 유연성 인정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국무조정실장)

- 미국이 침략을 받지 않은 경우에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음. 이와 관련, 외교부 조약국은 한?미 합의시 국회동의가 필요하다고 함.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신’ 으로만 하기 보다는 ‘문자와 정신’으로 엄격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함. 그러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서 절충한 것이 현재의 ③항임. (NSC 사무차장)

□ 결론적으로 「공동성명 I안」으로 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공동성명 II안」을 추진함. 「공동성명 I안」의 2개 문안(下記 참조)은 좋다고 봄.

(우리측 기본개념 1)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우리측 기본개념 2)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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