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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몸국을 끓였습니다. 몸국은 돼지를 삶은 물에 모자반이라는 해초를 넣어 큰 가마솥에 끓인 국을 말합니다.

몸이란 모자반의 사투리인 거죠. 같은 제주도에서도 제가 태어난 서귀포 지역은 몸을 '몰망'이라고 합니다. 톳하고는 다른 바닷가 바위에 자라는 해초입니다. 이 몸국은 돼지를 삶은 국물이라고 하여 '돗국물(발음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독극물이라고 발음하기 쉽습니다)'이라고도 합니다.

돼지 서너 마리를 잡아 여럿으로 나눠 큰 가마솥에 하루 종일 끓인 물에 이 모자반과 퍼대기배추, 무우 등 야채를 넣어 큰일 때 동네사람들과 나눠 먹었던 음식이죠.

지금도 시골에서는 결혼 같은 큰일이 있으면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솥을 걸어 놓고 돼지를 다 삶고 난 후 몸국을 끓입니다. 하루 종일 돼지를 삶으니 국물이 진국이라 정말 고소합니다. 거기에다 순대까지 삶으면 고소한 맛이 더해져 한 그릇만 먹어도 든든합니다.

이제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올해 제 나이 마흔입니다) 자꾸만 옛날 음식이 그리워집니다. 게다가 날까지 추우니 몸국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집에서 돼지를 하루 종일 삶을 수는 없고 해서 대신 등뼈와 모자반으로 그 몸국을 만들어 봤습니다. 마침 제주시 오일장에 들렸더니 할머니 한 분이 잘 말린 모자반을 팔더군요.

재료: 돼지 등뼈, 모자반, 양파, 된장, 다진 마늘, 무(또는 애기 배추), 메밀가루, 양념(고춧가루, 참깨, 후추)

이렇게 재료를 준비하는데요. 제가 찍은 사진으로 양을 가늠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제가 준비한 재료로 몸국이 냉면 그릇으로 일곱 그릇 정도 나왔습니다.

먼저 돼지 등뼈를 준비하는데요. 정육점에서 감자탕용 뼈를 삽니다. 등뼈는 살점이 많이 붙어 있는 것보다 뼈가 큰 것을 고릅니다. 그래야 국물이 진하게 우러납니다.

▲ 정육점에서 감자탕용으로 돼지 등뼈를 샀습니다. 정육점주인아저씨와 친하다 보니 꽤 많이 주더군요. 6천원어치입니다.
ⓒ 강충민
이 등뼈를 두 시간 정도 찬물에 담가둡니다. 핏물을 빼기 위해서죠. 이렇게 핏물을 뺀 등뼈를 큰 솥에 끓이는데 처음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조금 끓인 다음 그 물을 버립니다. 다시 찬물을 받아 그때 비로소 끓이는데 이때 된장과 양파 그리고 마늘을 넣습니다.

▲ 접시에 담겨 있는 것이 된장과 다진 마늘입니다.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죠. 양파도 통째로 하나 넣습니다.
ⓒ 강충민
앞에 물을 한 번 버리는 과정이나 뒤의 재료를 넣는 목적 다 아시겠죠. 바로 누린내를 없애기 위한 거죠. 아주 오랫동안 푹 고을 것이기 때문에 물은 아주 넉넉히 넣고 끓입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센 불에서 끓이고 그 다음부터는 약한 불로 은근히 끓입니다.

이렇게 여섯 시간 정도를 끓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준비하면 저녁에나 맛볼 수 있으니 그동안 가끔씩 국물이 너무 졸아들지 않았나 살피면서 다른 일을 하셔야 합니다. 가스레인지 위에 무언가 푹 고와지고 있다는 만족감을 누리는 것도 참 푸근하더군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등뼈에 붙은 고기들이 흐물흐물해지는데 이때 준비해 둔 무나 애기배추를 넣습니다. 저는 마침 큰누나에게서 무를 많이 얻어 와서 그걸 넣었습니다. 애기배추는 하얀 속이 없는 파란 그런 배추를 말하지요. 특히 한겨울 눈 맞은 배추라고 해서 그걸 넣으면 칼칼한 맛과 씹히는 감촉이 그만인데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 무도 넣어줍니다. 푸욱 끓여주어야 국물이 개운합니다. 애기배추도 같이 넣어주면 금상첨화입니다.
ⓒ 강충민
말린 모자반은 한 시간 정도 물에 담가 불리는데 불리면 양이 무척 많아집니다. 불린 모자반은 세 번 정도 찬물에 손으로 비비듯 깨끗이 씻어 준비해 둡니다. 마지막에 넣을 거니까요.

▲ 말린 모자반입니다. 옛날에는 참 흔한 해초였는데 요즘은 꽤 귀하더군요(왼쪽). 모자반을 물에 불려 놓았습니다. 이것을 3cm 정도로 칼로 썰면 됩니다(오른쪽).
ⓒ 강충민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끓여 등뼈를 집게를 이용하여 건져냅니다. 집게로 등뼈만 건져내면 힘들이지 않아도 뼈에 붙어 있던 살점들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이때가 등뼈를 건져내는 적당한 시기입니다.

▲ 오래 끓이면 이렇게 뼈가 깨끗이 발라집니다. 이러니 몸국의 국물맛이 진하겠지요.
ⓒ 강충민
이렇게 뼈를 건져낸 다음 준비한 모자반을 넣습니다. 그럼 전에 넣은 무는 어디로 갔냐고요. 무도 뼈에 붙어 있던 살점들과 유쾌한 동거를 하여 국물 맛을 내는 일원으로 자리를 잡은 거죠.

모자반을 넣으면서 다진 마늘도 다시 넣습니다. 처음에 끓일 때 넣은 마늘은 돼지고기의 누린 맛을 제거하는 용도였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함이죠. 이래저래 마늘은 참 유용합니다. 없애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고...

모자반을 넣고 십분 정도를 더 끓입니다. 물에 불린 모자반은 약 3cm 정도로 써는데 너무 길게 자르면 숟가락으로 국물을 뜰 때 모자반끼리 서로 엉키더군요. 가위로 자르는 것보다 도마 위에서 칼로 써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돼지국물의 진한 맛과 모자반의 바다 내음이 구수하게 끓여지는 순간이죠.

왕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이때 진간장을 한 숟가락 넣는 것도 좋습니다. 국물 맛이 소금으로만 간을 할 때보다 한결 개운한 느낌이 들더군요. 딱 한 숟가락입니다.

이렇게 끓인 몸국에 마지막으로 메밀가루를 넣습니다. 메밀가루를 그냥 넣는 것이 아니라 찬물에 개어서 넣습니다. 국물이 걸쭉해지고 맛이 훨씬 좋습니다. 물론 건강에도 좋고요. 찬물에 개어 놓은 메밀가루를 넣고 나면 밑에 국물이 눌러 붙지 않도록 한번씩 저어 줍니다.

▲ 메밀가루입니다. 이 것을 찬물에 개어 마지막에 마무리합니다. 메밀 몸에 좋잖아요.
ⓒ 강충민
완성이 된 몸국에 기호에 따라 양념을 넣습니다. 고춧가루와 참깨 후추를 한데 섞은 양념을 국 위에 뿌리는데 신김치를 잘게 썰어서 얹어 먹어도 좋습니다.

▲ 완성된 몸국입니다. 디카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흐리게 나왔습니다. 돼지고기 살점과 모자반의 환상적인 결합이죠.
ⓒ 강충민
일요일 아침 아홉 시에 돼지등뼈의 핏물을 빼기 시작해 저녁으로 몸국을 먹었으니 몸국 만들기는 거의 열 시간이 걸렸습니다. 조미료 하나 들어가지 않은 진정한 웰빙 음식은 그만큼의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맛은 어떠냐고요. 맛이 있으니 제가 일부러 끓이고 저와 아내, 어머니, 아들 원재가 맛나게 먹고 이제 돌 지난 지운이까지 이유식으로 조금씩 떠먹였고요. 친구들까지 불러 맛나게 먹었습니다. 다들 맛있다고 했는데, 설마 만든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인사치레로 한 것은 아니겠죠?

덧붙이는 글 | 제주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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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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