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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여성 두 배 정도 되는 나의 몸. 그 부피 때문에 가끔은 공익을 해치는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웬만한 여성 두 배 정도 되는 나의 몸. 그 부피 때문에 가끔은 공익을 해치는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몇 년 전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어디론가 가던 길이었다.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타시더니 본능적인 눈빛으로 온 좌석을 훑어 앉을 자리가 있는지 파악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좌석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낙심한 표정으로 서 있던 아주머니는 느닷없이 좌석에 앉은 사람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원래 일곱 아녀?"

그렇다. 그 아주머니는 틀리지 않았다. 서울지하철 좌석은 일반적으로 7인용이다. 그러나 그날 그 자리엔 범상치 않은 몸을 가진 내가 앉아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자저울이 '적재 초과'를 표시하며 몸무게를 알려 주지 않는다는 '0.1톤'대의 인간이 아니던가!

나는 묵묵히 정면을 응시하며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난감+민망+죄책감 등 만감이 교차했다. 7인용 자리를 6인용으로 만들어 버린 나. 사람 한 명을 못 앉게 만든, 사회에서 지탄 받아 마땅한, 공익을 해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까마귀 날자 화장실 무너진다?

몇 년 전 무척 춥던 겨울, 선배 자취방에 찾아간 나는 긴 겨울밤을 부여잡고 불타는 '무한 소주 레이스'를 벌였다. 다음 날 광란의 천둥이 몰아치는 불편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갔다. 불길하게도 그 집은 서울에서 쉽게 볼 수 없다는, 일명 '푸세식' 옥외 화장실이었다.

푸세식 화장실에서 배변 자세를 잡는 건 나 같이 비대한 자들에겐 거의 요가나 다름없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긴박해 불평할 새가 없었다. 어렵사리 자세를 잡고 정신을 집중하자 "뿌지직"하는 소리가 났다.

당연하다고? 문제는 그 소리가 내 몸에 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순간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난 비틀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렇다, 화장실 바닥이 한 쪽으로 기운 것이다. 언덕 위의 변기에 앉아 있는 꼴이 된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전대미문의 화장실 붕괴 사건의 희생자가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 추운 겨울 날씨에 화장실 바닥이 동결 건조된 탓인지, 더 이상 심각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난 후 내 몸은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알고 보니 그 화장실은 붕괴 위험 때문에 '사용 금지' 상태였다. 선배는 눈으로는 위로를 보냈지만 입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선배 고향에까지 화장실을 붕괴시킬 뻔했던, 엄청난 인간으로 알려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도 "제가 바로 화장실을 무너뜨린 그 녀석입니다"라고 하면 "아하~ 그 사람?"할 정도로.

내가 아무리 그 화장실이 이미 붕괴위험 상태였고 누가 앉든지 무너졌을 거라고 항변해 봤자 소용없었을 것이다. 낡아서 위태롭던 의자에 날씬한 누군가 앉으면 의자를 탓하지만, 우리의 비대한 동지들이 앉으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48kg,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몸무게?

167에 54. 내가 아는 한 30대 초반 여성의 신체 치수다. 일주일에 3~4일은 꼭 운동을 하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한다. 보기에도 살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보통의 신체다. 살에 후한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지상 최대 목표는 '살 빼기'. 그녀의 목표치는 몸무게 48kg다. 왜 48kg인가? 그 정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몸무게란다.

이럴 때는 살 빼기가 아니라 '몸무게 줄이기'가 더 맞다. 일정한 숫자에 도달하지 않으면 죄다 비만이 되어 버린다. 아무리 날씬한 사람이라도 몸무게가 특정 기준 이하가 아니면 살 빼기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날씬한 것들은 가라. 이제 곧 뚱뚱한 자들의 시대가 오리니... 먹어라! 네 시작은 삐쩍 골았으나 끝은 비대하리라." 우리 사회 다이어트 광풍을 풍자한 '출산드라'.
"이 세상의 날씬한 것들은 가라. 이제 곧 뚱뚱한 자들의 시대가 오리니... 먹어라! 네 시작은 삐쩍 골았으나 끝은 비대하리라." 우리 사회 다이어트 광풍을 풍자한 '출산드라'. ⓒ KBS
몸무게로 측정되는 비만의 척도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180에 95. 내 남동생의 신체 치수다. 그런데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더니 비만은 고사하고, 오히려 '체지방 평균 이하'로 나왔단다. 불필요한 지방은 없고 근육이 많아 웬만한 70kg 안팎 남자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누가 더 비만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자, 당신은 48kg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비만인가?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살 빼기를 새해 결심 리스트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지나친 살 강박증이나 숫자에 불과한 몸무게의 압박에 눌려 숨을 헐떡거리는 것은 아닌지. 근사한 몸매를 갖고 싶은데 그 기준이 어느 유명 패션모델이고, 자기 몸의 건강을 해치는 불필요한 살과 결별하는 게 아니라 단지 특정 기준 이하로 몸무게 수치를 낮추고 싶은 거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물론 살을 줄이는 게 여러모로 밝고 명랑한 삶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비만은 이미 그 자체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넘치는 살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담배보다도 못할지도 모른다. 최근 5~6년 사이 스트레스성 과식, 불규칙한 식사로 점철된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나 또한 조금씩 습관을 바꾸고 있다. 칼로리 높은 음식은 피하고 꼭꼭 씹어 천천히 먹으며 스트레스성 식욕은 과일이나 껌 같은 걸로 해소한다.

그러나 살 자체에 대한 혐오, 몸무게라는 허상에 대한 집착,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자기 파괴로 이어지니 위험할 따름이다. 살에서 자유롭고 싶어 살을 빼지만 오히려 살에 속박되는 것은 아닌가.

살 빼기는 자기존중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살을 살살 달래 주며 당당하게 자기 모습과 마주할 때 진정한 살 빼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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