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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 담배 한 모금에 날려 버리고. 직장인은 괴롭다.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 담배 한 모금에 날려 버리고. 직장인은 괴롭다. ⓒ 한태욱
직장 생활 첫 해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 친구는 갑작스레 직장을 그만둘 형편이 아니었고, 다니던 회사도 괜찮아 친구도 특별한 불만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내가 전에 말한 과장님 있잖아. 그 과장님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서랍을 뒤진 거야.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그 과장님이 원래 그렇게 서랍을 종종 뒤진다나 봐. 그래서 다른 직원들은 서랍을 잠그고 다녔더라고. 난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런 건 생각도 못했으니까 당연히 신경도 안 썼지. 말로는 정리 잘 되어 있나 검사한다고 하는데 회사가 학교니? 정리정돈 검사하게? 내가 요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를 읽고 있거든. 아침에 지하철에서 읽고 책상 서랍에 넣어 뒀는데 그걸 본 거야.

잠깐 보자고 하더니 다짜고짜 사직서를 쓰라는 거야. 나보고 사상이 불온하대. 이 회사엔 나 같이 사상이 건전하지 못한 사람은 필요 없다나…. 그러면서 인사과에 데리고 가더라. 인사과장에게 그대로 이야기하니까 그냥 사직서 양식을 주는 거야. 그 자리에서 바로 쓰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사직서 쓰고, 사람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어. 나 이제 어떻게 하니?"

당시는 민주화 열기가 강하게 불고 있었고 '민주' '민족' 이런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절이었다. 박세길씨가 쓴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를 민중의 눈으로 조명한 책으로 그때는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현대사 책일 뿐이었다.

그런데 단지 그것 때문에 친구가 회사에서 잘린 것이다. 회사에 노동운동하러 위장취업한 사람 취급 받으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없지만, 어렸던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부당한 줄은 알았지만 겁이 났던 친구와 나는 그 과장을 실컷 욕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 과장은 부하 직원 서랍 뒤지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셈이다. 부하직원 관리감독 잘하는 상사로 말이다. 지금도 그는 부하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서랍을 뒤질까?

상무님, 그렇게 귀여웠나요? 볼을 꼬집을 만큼?

사회생활 2년차쯤이던가? 나에게도 위기는 닥쳐왔다. 내가 다니던 회사 사장님은 다른 회사를 하나 더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경기도 성남에 있는 다른 회사에 들러 업무를 처리했다. 매번 우리 부서에 새로 오신 상무님과 함께 갔는데 그 분은 매우 점잖고 자상했으며, 오가는 동안에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그날도 성남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사무실로 오는 길이었다. 상무님 차를 타고 한참을 오는데, 상무님이 "운전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면허가 없었던 나는 나중에 면허 따면 운전할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무님 왈, 당장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었다.

'츄리닝 소녀 차차의 제멋대로 강좌- 사회생활 잘하는 법'의 한 컷. 직장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카툰 작품이다.
'츄리닝 소녀 차차의 제멋대로 강좌- 사회생활 잘하는 법'의 한 컷. 직장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카툰 작품이다. ⓒ 풀빵닷컴
그러더니 내 손을 가져다가 기어 위에 올려놓고 자기 손을 위에 얹었다. 그 다음에는 기어를 바꾸면서 "이렇게 하면 기어가 바뀌는 거야"하며 힘주어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너무 당황했고 창피함에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어떻게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상무님에게 잡혀 있던 손을 재빨리 빼냈다. 상무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허허" 웃으며 느릿느릿한 말투로 "뭘 부끄러워하느냐~"고 했다.

그날 이후 난 상무님 대하기가 어색해졌다. 그런데 상무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일하고 있으면 뒤에서 내 어깨 위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뭐 하는지 봐야겠다고 했고, 귀엽다는 핑계를 대며 볼을 살짝 꼬집기도 했다.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회식자리에서는 챙겨 준다며 옆자리에 앉기를 강요했고 술 마시라고 권하면서 잔을 다 비웠는지 꼭 확인하려 들었다. 잔을 다 비우지 않으면 집요하게 다 비우게 했다. 당연히 난 회식이 두려워졌고 회사 나가는 것도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씩 상무님과 성남 사무실에 가는 일은 나에게 고역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당장 회사를 그만 둘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던 나는 그냥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한 여직원 몇몇은 동정의 눈길을 던지면서 나에게 참으라고 했다. 이후로 나는 상무님과 둘이 있는 자리는 피하려 용을 썼다. 그런 괴로운 날들은 내가 직장을 그만둔 후에야 끝날 수 있었다.

능력 있는 상사 운전사 노릇까지... 정말 피곤해

다행스럽게도 내 인생에서 '저 사람 때문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꼴불견이었던 상사는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친한 남자 후배가 한 명 있었는데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얼굴 보기가 대통령 보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에게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능력 있는 상사가 있었다. 그는 술자리가 생기면 꼭 후배를 그렇게 끌고 갔다. 1, 2차는 기본이고 새벽 1시를 넘긴 시간까지 술자리는 계속됐다. 그렇다고 해서 후배가 꼭지가 돌게 술을 마셨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상사는 후배에게 절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후배에게는 다른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고 하니, 운전수 노릇이다. 술자리가 파하고 나면 후배는 상사의 차를 몰고 상사를 안전하게 모셔다 드려야 했다. 후배는 그의 기사였던 셈이다. 더 미칠 노릇은 그 후배의 집은 상사의 집과 정반대 방향이었다는 점이다. 상사의 무사 귀가를 확인한 후배는 자신의 돈을 들여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야 했다.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후배보다 내가 더 흥분해 그 직장 당장 그만두라고, 그 상사에게 따지라고 난리를 쳤다. 다행히도(?) 그 후배는 얼마 후에 그 상사에게 하고 싶었던 말 다 털어 버리고 멋지게 사표를 냈다.

이제 나도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되었다. 앞으로 더 긴 직장생활을 해야겠지만 혹여라도 꼴불견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혹시 나도 예전에 그렇게 흉봤던 그런 선배가 되어 후배들에게 열심히 '씹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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