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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 판소리 '대고구려'를 소리하는 박성환과 고수 성우경
ⓒ 김영조
"어화 여러 동포님네 백의민족 우리 겨레 지혜 있고 용맹 있어 반만년 유구하니 우리 조상 고구려를 꿈엔들 잊힐런가. 늠름한 기상 배달겨레 힘 모아 뜻을 모아 민족정기 되살려 평화로운 통일세상 우리 힘으로 이룩하세. 적토마 말을 타고 너른 들 중원 들판 고려 강산 노래하세. 금수강산 좋을시고 평화통일 그 날이 오면 남남북녀 손을 잡고 떡쿵 장단치며 원앙 쌍쌍 사랑 맺어 아껴주고 보살피고 땀 흘려 일을 하고 딸아들 많이 낳아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

이것은 10월 21일 밤 7시 30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있었던 박성환씨의 창작 판소리 <대고구려> 완창발표회에 나온 사설의 한 대목이다. 우리에게 판소리는 귀중한 전통문화이다. 아니 세계 무형문화유산의 하나이다.

▲ 창작 판소리 '대고구려'
ⓒ 박성환
판소리는 원래 12바탕이었지만 지금 남아 불리는 건 다섯 바탕뿐이다. 그 다섯 바탕에는 해학과 슬픔, 사랑과 교훈이 고루 들어있는 위대한 것들이 분명한데 하지만 그것들을 고집하는 우직함 속에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지 모른다. 따라서 옛 전통 판소리를 굳게 보존하면서 새로운 그리고 올바른 계승을 담보로 하는 창작 판소리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판소리는 요즘에 와서야 창작되어진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도 <열사가>가 있었고, 1972년 박동진 명창의 <성서판소리> 등이 있었으며, 1985년 임진택씨의 <똥바다> 따위가 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 창작 판소리는 잦아들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음에 짐작이 간다.

이런 때에 소리꾼 박성환씨는 꾸준히 창작 판소리 작업을 해나간다. 그는 2000년 소외받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아빠의 벌금>을 발표해 지난 2002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창작판소리 사설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2002년에 <효순이 미선이 추모가>, 2003년에는 인류평화와 반전을 호소한 우화작품 <백두산 다람쥐>, 2004년에 40대 명퇴자 '사오정'의 창업도전을 그린 <번호표> 등을 발표하는 등 창작판소리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 이번엔 우리 역사 바로찾기의 하나로 <대고구려> 완창 발표회를 연 것이다. 여기에 동국대학교 최종민 교수가 해설을 맡아줬다. 최 교수는 어렵게 창작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들 중 그의 노력이 돋보인다고 말한다.

▲ 창작 판소리 '대고구려'를 소리하는 박성환 1
ⓒ 김영조
▲ 창작 판소리 '대고구려'를 소리하는 박성환 2
ⓒ 김영조
"이 <대고구려>는 고구려의 기상이 확인되는 사설을 바탕으로 소리를 한다. 그래서 <적벽가>를 듣는 기분으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소리꾼이 창작 판소리를 발전시켜주기 바란다. 또 이 자리에 있는 청중들은 이 좋은 창작 판소리를 널리 입소문을 내주었으면 한다."

<대고구려>의 사설은 역시 박성환씨가 창작한 것이다. "한겨레 배달민족 우리나라 삼국 시절에 우리 조상 대고구려는..."하는 사설로 문은 열리고, 백두산 정기받은 동명성왕의 고구려의 개국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곤 당나라의 침공과 이를 목숨 걸고 막아내는 양만춘 장군, 그리고 백성들의 힘찬 고구려 기상을 드러낸다.

▲ 창작 판소리 '대고구려'를 소리하는 박성환 3
ⓒ 김영조
중간에 그는 청중의 호응을 끌어내는 기지를 발휘한다. 혼자만의 판소리가 아닌 청중과 함께하는 판소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노래의 후렴구를 부르듯 그의 소리에 이어 청중들은 몇 번의 소리를 소리꾼과 함께하는 귀한 경험을 했다.

그가 "단군왕검 배달겨레 백두산 정기 받아 하늘을 숭상하고 지덕에 감사하니 홍익인간 재세이화 만백성이 태평일세"라고 먼저 소리하면 청중들은 "달려가자, 달려가자, 너른 들판. 적토마상 선뜻 올라 천하를 호령하자"라고 목청껏 노래한다. 이제 청중들도 가슴 벅찬 소리꾼이 된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대고구려의 백성이 된 것이다.

창작 판소리는 바로 그런 것임을 박씨는 말하고 있다. 우리 문화, 우리 음악의 철학인 모두가 함께하는 그런 문화를 추구한 것이다.

이날 해설을 한 최종민 교수에게 박씨의 소리에 대한 평을 부탁했다.

▲ 해설을 하는 최종민 교수
ⓒ 김영조
"박씨는 의식있는 소리꾼이다. 그에 걸맞게 우리 겨레라면 모두 곤두서있는 고구려를 주제로 삼았다는 것이 좋았다. 또 사설이 무겁고 딱딱한 내용이었는데도 중간 중간에 익살을 섞어가며 판소리의 재미를 한껏 살려냈다. 뿐만 아니라 사설을 단순히 문학적인 측면만이 아닌 판소리적인 내용을 담보했다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정광수 선생의 고제를 잘 활용해서 소리의 짜임새가 고급스럽다는 점을 들고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설이 마지막에 가서 통쾌한 감을 가질 수 있도록 끌고 갔어야 하는데 비슷한 내용을 여러 번 중복하여 절정감이 없어진 것이다. 중간에 욕심을 줄이고, 마지막을 잘 여몄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에 덧붙여 이야기의 전개가 속도감이 있도록 하는 짜임새를 주문한다."

이날 발표회를 지켜본 청중들은 흡족한 기분으로 돌아갔을 듯하다. 새롭게 태어난 <대고구려>와 함께 소리꾼으로 등극하는 영광을 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창작 판소리의 발전을 위한 자리에 같이 하여 일등공신이 되는 경험도 맘껏 즐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대고구려!' 우리의 가슴 한 복판에 남아 있어라.

창작 판소리에 소외된 삶의 소리 담을 것
[인터뷰] 소리꾼 박성환씨

- 판소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창작 판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대학 때 풍물을 했는데 판소리가 그저 좋았었다. 우연히 선생님을 소개받고, 군 입대 전 한달 동안 배웠다. 그리곤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남아있는 다섯 바탕 판소리는 옛날 애기에 의존하여 현대인이 공감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음악적 기재를 가지고, 현대인들의 감정과 희로애락을 담아내면 공통적 동시대성을 담보할 것이란 기대를 했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 얘기가 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더 확실할 것이다."

- 판소리, 특히 창작 판소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국악 중 기악은 창작곡이 많다. 하지만 성악은 활성화가 안됐다. 일제강점기 이후 종종 창작 판소리가 발표되었지만 흥행하지 못했다. 또 고전을 답습하여 현대인이 공감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으며, 국민들의 이해도 적었다. 그것이 어려웠다면 어려웠던 점이지만 그것도 우리가 극복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 이번 공연에 소리가 좀 답답하고 트이지 못한 감이 조금 있었는데...
"정말 예리하게 짚었다. 사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고, 고맙다.(웃음) 연습을 하면서도 내내 그런 걱정을 했었는데 실제로 드러나 버렸다. 내가 소속된 국립창극단은 일주일에 세 번씩 지방공연을 다닌다. 그래서 연습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앞으론 더 많은 노력을 해서 그런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다."

- 앞으로 계획하는 창작 판소리는?
"현실적인 문제, 즉 동시대 소외된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모습과 삶에 대환 애환을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또 우리 역사에 빠져 있는 단군신화, 고조선 이야기, 고구려 건국 이야기 등 상고사, 고대사 부분을 조명하는 판소리를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비전향 장기수인 신인영 선생님의 ‘구순 노모와 애끓는 사연’을 담아낼 생각이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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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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