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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색깔도 현저히 달라졌다. 나무 중에서는 붉나무 꽃이 밤나무 꽃 마냥 복스럽게 마지막으로 피었다. 색색이 들국화도 몇 가지나 핀 줄 모른다.
풀숲엔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풀무치 따위가 즐겁게 가을을 한 음절 흐느적거림도 없이 맑게 노래했다. 고추잠자리도 가을 싸늘한 기운을 덥혀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도토리나무와 억새를 섞어 풋나무를 베러 다니셨다. 유일한 거름이 퇴비였던 때다. 줄기가 적당히 억세져 소도 먹기 힘들 때 외양짚(외양간 지푸라기) 넣듯 깔아주면 소나 돼지가 배설하여 두엄을 만드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벌초를 하러 가실 때도 그랬고 산에 다녀오실 때마다 풋나무를 살짝 말려 지고 오신 아버지는 한 짐 "푹!" 소리가 나게 부려놓고 질컥거리는 우리에 한 깍지씩 집어 넣으셨다.
"아부지 댕겨오셨는그라우?"
"그려. 막둥이는?"
"예. 아까침부터 자구만이라우."
"그만 깨우그라. 글고 쇠족솥단지에다가 구정물 좀 부어봐."
"예."
콧노래를 부르며 까만 가죽 양동이에 시큼털털한 구정물을 가득 담아 서너 번 오갔다. 일찌감치 쇠죽을 쑤고 자는 게 초가을이었다. 감잎도 좀이 먹은 듯 뽈그족족하고 새파란 게 섞여 있는 오후 늦은 햇살이 우리 집 마당에 깃들어 있다.
마른 풋나무 조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이려는데 아버지께서 손에 들고 있다가 꼴청에 툭 던지셨다.
"뭔디라우?"
"깔 넣었으면 우게다 앉혀라."
콩 줄기 다섯 개에 수수 이삭 두개다.
논두렁콩보다 밭 콩이 일찍 익기도 하지만 물기가 적어 밭에 난 알맹이가 실하다. 아버지는 밭에 다녀오시면서 콩대와 수수를 누렇게 익기 전에 풀 짐에 얹어 오셨다. 수수는 한 이삭이 사람 머리만큼 컸다. 붉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체로도 몇 개 따먹고 싶었다.
풀을 먼저 앉히고 구정물을 부었다. 밥알과 김치쪼가리, 온갖 잡동사니가 풀 위에서 지그시 눌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위에다 풋콩 줄기와 찰수수 이삭을 올리라니! 아무리 사람이 먹고 남긴 구정물이라 손치더라도 쉰 맛이 날 테고 때론 먹다 남긴 쇠죽을 되 끓였질 않나. 그 솥에 아버지는 콩대와 찰수수를 삶으신다는 거다.
달그락 소두벙(솥뚜껑)을 닫고 부삭(부엌)에 불을 붙이니 널찍한 솥단지 바닥을 타고 불이 방바닥으로 깊숙이 몰려 들어간다. 짚여물을 끓일 때와는 달리 풀만 넣고 끓일 때는 파르르 한번 끓으면 쇠죽이 완성된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마른 나무를 한 깎지 더 넣으셨다. 푹푹 밖으로 김이 빠져나와 구수한 냄새가 아래채에 가득 퍼졌다. 그건 소꼴 재료가 대부분 씨를 머금고 있고 구정물에 밥알과 쌀뜨물이 뒤섞인 것과 오늘의 특별메뉴 두 가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막내 깨왔냐(깨웠냐)?"
"인자 인났구만이라우."
여물을 퍼주기 전에 콩과 수수를 미루나무를 파서 만든 쇠죽 바가치(바가지)에 담으셨다. 나는 마구 마당을 달려 뚤방(토방. 마루와 마당 사이에 있는 중간 계단 자리)을 치고 올랐다. 마루에 걸터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릇노릇하고 붉은 줄기를 툭 던져 놓으셨다.
"자, 묵어봐."
저녁때가 다 되었다. 각자 콩대를 하나씩 잡고 콩깍지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자 푸르스름하고 누리끼리한 알맹이가 툭 불거져 나온다. 콩 비린내도 나지 않으면서 부드럽다. 씹을 필요가 없으니까 넣기 바쁘다. 쭉쭉 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한 톨도 빠트리지 않고 확인사살까지 하며 맛나게 먹어치웠다.
이젠 수수를 먹을 차례다. 그날따라 두 가지가 같이 있었던지라 톡톡 불거져 탱탱 불은 수수로 손이 갔다. 한 송이가 포도보다 무겁다. 국물이 질질 흐른다. 며칠만 있으면 딱딱해서 먹지 못하지만 약간 덜 여문 수수를 해마다 우리 간식거리로 삶아 주시곤 했는데 올해도 아버지는 잊지 않으셨다.
가지를 툭 찢어 입에 대고 입술과 이로 따먹었다. 푹 퍼진 밥알이 입안에서 토도독 터져 물컹거린다. 여러 알 한꺼번에 씹다가 수수 껍질만 뱉어내면 입속에 달달하고 끈덕진 찰기가 퍼졌다. 동생이나 나나 입술과 얼굴에 알갱이가 붙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밥을 하시는 동안 우린 군것질을 했으니 저녁밥이 맛있을 턱이 없었다. 배도 적당히 부르고 매일 먹는 밥보다 맛난 걸 맛보았으니 그날은 밥상 앞에 앉지 않아도 되었다.
난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커서는 콩을 몇 번 쌀뜨물에 삶아 먹어보았지만 수수는 맛보지 못하여 한 동안 아버지 자취를 반만 느끼고 지냈다. 어제도 들길을 지나는데 "어서 옵쇼!" 하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수수를 만나니 더 간절하다. 밭주인께 한 송이만 달라고 졸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