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못치기와 병뚜껑을 오므려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은 참으로 순박했다. 여자아이들은 핀으로 했다.
못치기와 병뚜껑을 오므려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은 참으로 순박했다. 여자아이들은 핀으로 했다. ⓒ 김용철
마을 앞길은 1년에 두 번 난도질을 당한다. 유월 장마철에 한번으로 모자라 8, 9월 태풍이 몰고 오면 해를 거르지 않고 길바닥을 패이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100여 미터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흙길을 쓸고 가곤했다. 집집마다 마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풍 뒤끝은 추석이 될 때까지 달구지와 손수레도 다닐 수 없게 된다. 같은 마을에서도 아랫동네와 우데미(윗동네)는 단절이 되었다. 막걸리를 싣고 다니던 삼륜차도 대폿집까지 올 수 없어 걷는 사람과 소 빼놓고선 왕래가 불가능했다.

세 곳 미루나무에 걸린 마이크에서 새마을노래가 4절까지 울리고 이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알려드리겄습니다. 오늘 아침 울력을 실시할 것이니 주민여러분께서는 한 집에 두 사람씩 삽가리와 괭이, 낫, 삼태기를 준비하여 회관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전날에 미리 반상회를 통해 공사계획을 세웠나보다. 해마다 이장님 주관아래 일년에 서너 차례 강제동원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공동 작업을 하는 울력이었다. 추석을 앞두고서는 집안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운 좋게 태풍이 거세지 않으면 아랫마을에서 우리 마을 앞까지 도회지로간 손님, 자식들을 맞이하기 위해 길가에 자란 풀과 나뭇가지를 치는 작업이었다. 삽과 괭이로 움푹 팬 자리에 뗏장을 채우는 정도였다.

그 때만 해도 70여 가구가 넘어 보통 5리를 하루면 끝내곤 했다. 올핸 집도 두 채마저 떠내려간 상황이다. 신작로는 그만 둘 모양이다. 며칠 만에 끝날지 모를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오로지 마을 사람들과 동네에 있는 연장으로 마무리를 하여야 한다.

새벽 6시부터 한 무리는 동네에 남아 석축을 쌓고 냇가에서 자갈을 채운다. 들것도 동원되었다. 어머니들은 냇가에서 삼태기와 양동이, 통에 손수 자갈과 모레를 퍼 담아 붓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흙구덩이 산자락으로 몰려가 달구지에 합고짝(*1)을 만들어 황토를 가득 싣는다.

일소 세 마리는 흙이 채워지면 차례대로 침을 질질 흘리며 마을 앞까지 씩씩거리며 끌고 가 1차 단장한 길에 붉은 흙을 부린다. 벌떼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삽가리(*2)로 두툼하게 자갈 위에 흙을 붓는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암소는 목 한번 축일 짬도 없다. 한나절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어도 마당 한쪽 넓이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면서기는 하루에 한 개씩 먹을 빵을 실어다 주고 잠시 구경이나 하고 돌아간다. 마을마다 그리 되었으니 정부로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광개토대왕 후손들 ‘못치기’로 땅따먹기

벌초하러 갈 때 수리취(분대, 떡취나물) 꽃이 피는데 수술을 떼어내면 안쪽엔 가시가 둥글게 있다. 그걸로 머리와 팔뚝을 톡톡 두드려줬다. 친구들과 동생은 내 밥이었다.
벌초하러 갈 때 수리취(분대, 떡취나물) 꽃이 피는데 수술을 떼어내면 안쪽엔 가시가 둥글게 있다. 그걸로 머리와 팔뚝을 톡톡 두드려줬다. 친구들과 동생은 내 밥이었다. ⓒ 김규환
학교에 갔다와보면 조금씩 정상을 찾아가는 길이 빨갛게 되었으니 아이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은 기분이었다. 소 풀을 베어두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야, 거식아! 우리 못치기나 한판 할텨?”
“잉.”
“못 가져왔냐?”
“여기.”

“장깸 장깸 뽀쇼!” 둘이만 있을 땐 가위 바위 보를 낸다. 셋 이상이 있을 땐 “소다이 소다이 멸치!”로 손바닥 앞뒤만 가려 편을 나눈다. 놀이 하나에도 솜씨가 있는 법. 희비가 엇갈리며 편이 갈리면 집에 신주단지처럼 기름을 먹여 보관해둔 대못을 꺼내 오른손엔 못대가리를 잡고 왼손으론 못 끝을 잡고 있다가 오른손만으로 단단하게 굳지 않은 찰흙에 못을 힘차게 내리꽂는다.

마치 광개토대왕이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며 영토를 넓히듯 자신이 박은 못 구멍을 따라 선을 연결했다. 한 번 두 번 차차 우리 편 땅이 모양을 갖췄다. 점에서 선분으로 선분은 삼각형, 사각형 이상이 되면 기존 선은 못으로 줄을 잇고 지운다. 지우느라 검정고무신 바닥으로 어찌나 문질러댔는지 발바닥이 따갑다.

나중에 즐겼던 병뚜껑을 오므려서 노는 땅따먹기나 법칙은 똑같았다. 얼마나 정신없이 꽂고 긋기를 반복했을까. 한 평쯤 되었으니 어깨가 아려온다.

“야 째까만 쉬었다 허자.”
“안 됌마. 우리는 한번도 못 했당께.”
“알았어. 하믄 되잖녀.”

지친 나머지 몇 번을 더 하고는 대충 아무데나 꽂았다. 아니나 다를까 정성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노출되지 않은 땅속에 박힌 돌멩이에 맞고 말았다. 못이 “팅!” 소리를 내며 꼬꾸라져 내동댕이쳐졌다. 불꽃을 튀기지 않은 게 다행이었고 냇가로 떨어지지 않았으니 헛수고는 면했다.

“아따 전디기 심들다. 병문아, 잘 보고 있어라잉.”
“알았어 꺽정 말고 댕겨와.”

병문이와 나는 한 편이었다. 쏜살같이 달려가 샘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왔다. 병섭이와 해섭이가 다른 편이었다. 이제 그들이 제 땅을 다지고 본격 우리 땅을 침범할 차례다. 흙이 몽글고 딱딱하지도 않으면서 푸석푸석하지 않은 못을 꼽기 적당한 땅을 고른다.

못을 던지고 두 점을 따라 선을 긋고 세모를 형성한다. 그 뒤론 해섭이가 예닐곱 보를 걷더니 그 위에 못을 꽂는다. 병문이가 반칙을 하는지 지켜보기 위해 뒤따라갔다.

“야, 이 욕심쟁이야. 김일성 같은 놈!”
“왬마? 씨벌놈이 내가 왜 뿔 달린 김일성이여!”
“뭐 그런 것이 있다냐? 니 심보가 말이다.”
“어쨌다고 그려?”
“째까씩 해야지 고고시 뭐냐?”
“알았어야 담부턴 안 하면 되잖녀.”

어디서나 암묵적인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땅에서 놀아야 하는데 욕심을 가득 채운 상대편은 2~3미터를 갔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 땅 전체를 삼킬 태세였으니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한번 항의로 폭을 줄여 우리 땅 모난 일부를 싹둑 잘라먹는다.

거듭함에 따라 우리 땅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벌어둔 국토 절반이나 남았을까 애가 타고 속이 탔다. 몇 번만 더 이어졌다간 거덜이 날 형국이다. 포위 직전이다. 통째로 먹히면 게임은 끝이다.

하늘이 도운 걸까. 보기 좋게 단단하게 뭉친 진흙덩어리에 못이 박히지를 않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야~. 병문아 인자 니 차례다. 절대 봐주지 마.”

억새가 피기 전 배가 한껏 부른 배동을 뽑아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날리면 물고기 잡는 학이 낙하하듯 "슈웅~"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억새가 피기 전 배가 한껏 부른 배동을 뽑아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날리면 물고기 잡는 학이 낙하하듯 "슈웅~"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 김규환
상대편의 저의를 깨달은 이상 우리도 폭을 넓혀 몇 번 만에 끝내고 싶었다. 뒷짐만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듯, 아버지 따라 복령을 캐듯 맨들맨들하고 맨질맨질 하면서 속살이 좋고 돌부리가 없는 곳을 찾아 시추를 했다.

손가락으로 “쩌기!”하듯 가리키면 그 곳에 백발백중 한 치 오차도 없이 박는다. 친구는 땀이 손에 흠뻑 젖었는지 맨 흙을 손바닥에 분필이나 로진백을 만지듯 골고루 바른다. 속으로 ‘잘했어!“를 연발하며 앞집 동무 병문이를 칭찬하고 있었다. 덩달아 힘이 솟았다.

다섯 시 쯤 시작된 땅따먹기는 어둑어둑해진 일곱 시 무렵까지 이어졌으니 두 시간여 이어졌다. 결국 내 탓이었지만 우리 편은 공방을 거듭한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맨 땅 위에서 놀고 나니 울력을 거들지 않았어도 온몸은 흙투성이였다. 어른들이 말리지 않았던 건 그렇게 해서라도 땅을 다져진다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우리보다 어린 몇 명은 그 아까운 흙을 냇가로 가져가 놀았다.

사나흘을 도로 공사에 힘을 쏟고도 모자라 드디어 주말에는 우리집 마당에도 소가 여섯 번이나 흙을 실어 날랐다. 쇠스랑과 삼태기를 가져다 골고루 뿌려주고는 절굿공이와 떡메를 쳐서 다졌다.

벌초 따라가서도 놀 거리 찾아-수리취 열매, 배부른 억새, 집게벌레 장수하늘소

오래된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팽나무엔 장수하늘소 때위의 집게벌레가 살았다. 달짝지근한 물이 흐른다.
오래된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팽나무엔 장수하늘소 때위의 집게벌레가 살았다. 달짝지근한 물이 흐른다. ⓒ 김용철
며칠 후 아버지는 어린 우리 형제들을 벌초하기 위해 대동하고 집을 나섰다. 엄연히 큰아버지도 계시고 종중도 아닌데도 어쩐 일인지 정유재란 이후 터를 닦은 지 400여 년 동안 수 대 내려와 수십 기나 되는 조상들 묘를 벌초했다. 잔디보다 억새와 나무가 뒤덮었다. 점심을 싸가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낫질을 하는데 이 산 저 산 하루 30여 리를 쏘다녔다.

벌초를 하면서도 나는 짬만 있으면 놀이 감을 찾았다. 배가 한껏 부른 억새를 뽑아 하늘 높이 허공에 날리기도 했다. 급전직하 낙하하는 모양만 봐도 즐겁다. 수리취 절굿대 씨앗 덩어리-푸르스름한 탁구공 크기에 둥글게 가시가 솟아 있는 채-를 머리나 손에 톡톡 두들겨 더위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퇴비로 농사를 짓던 때라 아버지와 형제들은 그날 마지막 벌초를 하고는 풀을 가득 지고 내려온다. 물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 내려오는 동안 동정지라는 곳엔 커다란 나무 서너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 놓아 시원하다. 잠시 아버지와 큰형, 둘째형은 내려가고 셋째형과 나는 얼른 내려가자는 채근에도 그 자리에 남았다.

눈빛만 봐도 우린 알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이유는 가을엔 상수리나무, 팽나무에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먹는 장수하늘소 집게벌레가 있기 때문이다. 늙은 나무라 껍질이 벗겨진 액포부분 수액이 잘잘 흐르는 곳엔 까맣게 반짝이는 하늘소가 있게 마련이다.

이리저리 빙 돌아다니며 나무를 살폈다. 팽나무엔 지의류가 하얗게 이끼처럼 붙어 있다. 상수리나무도 벗겨다가 벌통이나 만들면 좋을 대로 두껍다. 우린 구멍을 찾아 막가지 하나씩을 들고서 긴 집게를 벌름거리며 하늘소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배고픔도 잊고 해질 무렵 시간과 싸움을 벌이고 있노라니 배가 부른 듯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온다.

“어…어 서엉.”
“쉿!”

가까이 가서 등짝을 향해 손으로 재빠르게 잡는다.

“여기 또 나올 것 같어.”
“내껏도 잡아야지.”
“그래.”

한참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서있었다. 어김없이 또 나온다. 이번엔 두 마리가 한꺼번에 나왔다. 복이 터졌다. 몇 마리가 더 나올까 끝까지 기다리려다 배고픔과 어둠에 어쩔 수 없이 풀 짐을 지고 작대기는 뒤에 꽂고 두 손으로 하늘소를 만지작거리며 동네로 왔다.

장수하늘소와 비슷한 사슴벌레를 얼마 전 모꼬지(모임) 때 만났다.
장수하늘소와 비슷한 사슴벌레를 얼마 전 모꼬지(모임) 때 만났다. ⓒ 김규환
그 때 형근이가 앞에 나와 있었다.

“형근아 나 집게벌레 잡았다. 너는 없지?”
“어디서?”
“쩌~기 상수리나무 아래서야.”
“나도 한번만 맨져보자.”

친구에게 건넸다.

“아야! 악~”
“얌마 털어버려.”

손을 뿌리쳐도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손목을 후려쳤더니 그제야 땅으로 떨어져 기어가고 있었다.

“후훗 후~”
“많이 아푸냐? 긍께 조심혀야지 임마. 허벌나게 아푸겠다. 입으로 쏙쏙 빨아주라.”
“손가락 짤라지는 줄 알았다니까.”
“나 인자 가볼란다. 근디 니기 엄니한테는 말하믄 안되는 거 알지?”

감이 노랗게 익어가는 며칠 뒤 즐거운 추석이 다가왔다.

(*2)삽가리: 삽
(*1)합고짝: 짐을 많이 싣기 위해 합판이나 널빤지를 사각으로 두르고 높게 쌓은 괘짝 같은 것.

덧붙이는 글 |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뜻깊은 명절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