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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유네스코직지상 상장. 한지에 인쇄 후 비단 배첩. 106 X 42.5 cm
2005 유네스코직지상 상장. 한지에 인쇄 후 비단 배첩. 106 X 42.5 cm ⓒ 곽교신
이 상장은 오는 9월 2일 오후 3시 충북 청주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2005 유네스코 직지상(제1회) 시상식에서 영예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된 '체코 국립도서관'에 수여될 것으로, 직지 역사에 새길 또 하나의 자랑스런 기록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 전통 두루마리 디자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려가 찍어낸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지닌 인류문화유산으로서 귀중한 가치를 세계에 과시하고, 이 걸출한 문화유산 직지를 찍어낸 문화민족 후손으로서 자존심을 세계에 드높이게 될 상장이다.

직지상은 우리가 인쇄문화 선진국 고려의 후손임을 과시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상장도 우리의 디자인과 우리의 돈으로 만들겠다'는 청주시의 고집이 유네스코에서 지난해 10월 관철되었다. 그 때부터 바탕 소재 선택과 디자인, 제작 등 모든 과정에서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공을 들인 9개월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고려 금속활자 제작 과정 이상의 정성을 들인 것 같다"며 웃는 청주시 관계자의 말이 과장이 아니게 들릴 만큼 상장 제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고난의 과정을 거의 모두 지켜봤기에, 배첩장 홍종진(55·충북도 무형문화재) 장인이 배첩 전수관에서 마지막 매듭 장식을 거는 광경을 지켜보는 순간, 당대 최고의 인쇄 문화 선진국 고려의 후손으로서 자존심을 걸며 이 상장 제작에 참여한 2005년 현재의 많은 사람들 얼굴이 스쳐갔다.

'안되는 일 같으니 포기하라'

직지가 이제까지 원형을 유지하며 보관된 것이 한지에 찍었기 때문이듯, 최고(最高)의 종이 천년한지의 우수성을 살려 상장도 한지에 인쇄하기로 결정한 후, 양지처럼 인쇄 표면이 매끈하게 유지되면서도 한지의 질감은 살아 있는 전통 한지를 찾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매우 쉬울 것 같던 이 과제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한지장의 종이를 거의 다 수집해 시험했음에도 보풀이 일며 인쇄된 글씨가 뜨거나 도안의 색상 구현이 안 되어 애를 먹이기 시작했다. 어떤 한지는 아예 종이가 기계에 말려들어가 수억이 넘는 고가 인쇄기를 정지시키는 등 난관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날짜가 촉박한 지난 7월 초에는 '양지에 인쇄해 최종 장정만 전통의 두루마리 배첩으로 하자'는 중재안이 나오기도 하였다. 주요 제작자 중 한 사람은 '안 되는 일 같으니 유네스코에 솔직히 얘기하고 포기하자'는 말도 했다.

이 와중에 제작팀이 요구하는 종이 재질에서 가장 근접한 시제품 종이를 계속 만들어주던 신풍한지의 안치용(45) 대표가 전통의 재래종 닥나무를 쓰되 인쇄 후 매끈한 표면 유지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새 장비까지 구입하고 마지막 시도란 각오로 종이 제작에 들어갔다.

닥 섬유와 부속 첨가물의 특성상 원래 여름에는 한지를 뜨지 않는다. 그것도 한여름 고온기이니 종이 뜨기엔 최악의 시기였으나 기온 타령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8월 2일에 떠낸 종이에 인쇄를 해보니 전통 한지의 표면 질감은 그대로 지니면서 양지의 인쇄 품질을 유지하는 상장 원본이 나왔다. 종이를 찾기 시작하고서 8개월만의 일이다. 고문헌에 나온 갖가지 첨가물을 넣어보고 여러 가지 방식의 도침도 시도해보는 등 거듭된 실패 끝에 거둔 결과였다.

한지로 상장을 만들어 보내겠다고 유네스코에 약속한 날짜는 한 달 남짓 남았는데 그제서야 종이가 준비된 것. 청주 주성대학 컴퓨터디자인과의 이길환 교수가 인쇄를 거듭해보며 디자인을 수정하여 상장 기본안이 나온 것이 8월 10일.

오로지 이 공정을 위해 일체의 다른 작업을 중지하고 거대한 인쇄기를 가동시키며 최고 품질의 한지 인쇄에 도전한 청주 '일광인쇄소'(대표 연상희)도 영업 이익 같은 건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유네스코 본부에서 상장 원본의 크기와 문구 수정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

급히 전체 디자인을 변경하고 수정 인쇄를 거듭하여 상장 원안이 최종 통과된 것이 8월 12일. 남은 건 '신부화장'에 해당하는 배첩 과정인데 8월 18일 파리로 보내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날짜다. 그러나 화장 안한 맨 얼굴로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는 일.

접착용 풀을 항아리에서 10년을 삭혀서 쓸 정도로 제대로 된 배첩은 그 과정이 인내를 요하는 일이니, 조금만 배첩 지식이 있다면 누가 봐도 턱없이 모자라는 날이다. 그러나 역시 날짜 타령을 할 때가 아니었다. 밤을 새웠고 선풍기가 동원되었다. "돈 바라보고는 절대로 이 짓 안 한다"고 말한 배첩장의 손엔 물집이 잡혀 있었다.

연일 야간작업을 하던 배첩장 홍종진(충북도무형문화재 제7호)씨는 마지막 날인 18일에 상장 글씨들이 도드라지며 튀어나오는 꿈을 꾸고 놀라서,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새벽에 작업장에 나와 봤었다고. 모두가 미친 사람들 같았다.

상장을 꾸밀 전통 매듭 장식은 청주 한국공예관의 전통자수매듭 강사 표경수(43)씨가 역시 밤을 새워 제작하여 보내왔다.

상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것

인류의 문화유산 '직지'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한 이뤄질 수 없었던 9개월의 대장정이었다. 상장의 모든 자재 조달과 인쇄 등 제작과정 일체가 직지를 찍은 흥덕사가 있었던 청주 부근에서 이뤄졌다는 것도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이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 시상될 '직지 원판 활자판' 1매도 18일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직지 하권'(상권은 아직 미발견)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오국진)의 유일한 전수조교 임인호씨가 제작한 것이다.

금속활자판과 상장은 유명 한지공예가 한경화씨가 제작한 만자(卍字) 바탕에 봉황 문양을 새긴 한지 상자에 각각 넣어진다. 고전적 품위를 한껏 높이고자 문양엔 귀티나는 동분(銅粉)을 입혔다는 한씨의 말이다.

그야말로 종이의 선택부터 최종 포장까지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로 치장한 이 작업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상장과 부상으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될 것이다. 오로지 문화적 자존심 하나로 제작한 이 상장은 수상자를 결정하던 지난 6월 중국 리지안 유네스코 회의 때에 상장이 없는 두루마리 기본 형태만으로도 관련자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애초에 상장을 만드는 데 책정된 예산은 100만원이었다. 그것도 상장 하나 찍는데 100만원이나 들여야 하느냐는 청주시 내부 진통 끝에 큰 맘 먹고 책정된 예산이었다. 그러나 제작이 완료된 현재 정확한 정산은 안 되어 있으나 족히 600여만원은 들어간 것 같다는 세계화추진단 김홍현 팀장의 말이다.

상장 하나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야 했느냐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직지라는 걸출한 문화유산의 가치와 무엇보다 고려가 당대 세계 최고의 인쇄문화 선진국이었고 그 문화 인프라의 기초가 한글 발명으로 연결되며 이것이 오늘날 IT강국이 된 뿌리로 이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 상장에 들어간 청주시의 예산 600만원은 하나도 아까운 돈이 아니다.

상장 제작 과정을 장기간 취재하며 지켜본 <청주시청 직지세계화추진단>의 미련해 보이던 고집과 그 고집의 성과에 취재기자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고려시대의 선조들이 이뤄놓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기리는 초대 직지상 시상식 자리를 위해 이 땅의 민초들은 그야말로 혼신을 다하는데, 시상식에 대통령은 공무 일정상 참석치 못한다는 아쉬운 소식이다.

덧붙이는 글 | 부상으로 수여되는 금속주물제 직지 원판 사진은 시상식에서의 이벤트를 위해 아껴달라는 청주시의 요청으로 공개하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완성된 상장 사진도 유네스코보다 우리 국민이 먼저 보는 것이 순리라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으로 독자들을 위하여 공개하였습니다.

보도를 허락하신 청주시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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