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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에게 '네오콘'이 무슨 말인지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매일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었지만,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나 역시 '네오콘'은 'Neo-conservative(신보수주의)'의 준말이라는 것, 미국 부시 행정부를 움직이는 정치 세력이라는 것밖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더욱이 '레오 스트라우스'라는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회사 내에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정치학과를 나온 선배 한 명밖에는 없었다.

ⓒ 김영사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사상을 추종하는 세력이 바로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현재 6자 회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사는 되지 못한다.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나 술자리에서 6자 회담이나 네오콘 같은 것을 화제에 올린다면 아마도 왕따가 될 것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써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정치적 쟁점이나 외교정책 같은 것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러한 무관심이 스트라우스와 네오콘 같은 정치세력이 뿌리내리는 토대가 된다. 그들은 순간적인 쾌락에 골몰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대중들을 조종함으로써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부시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이 노골적으로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보수 기독교도적인 신념과 석유라는 경제적 이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체제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맹목적인 확신과 이해득실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요구 때문에 스스로의 이념을 배반하며 남의 나라에 지나친 내정간섭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신봉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 고전 정치철학을 계승한 스트라우스와 그의 제자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현대의 질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만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선도하기 위해 절대 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말로만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반대되는 정책을 펼친다고 저자는 말한다. 네오콘은 진리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질서를 유지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고귀한 거짓말'을 통해 종교, 도덕, 윤리 같은 것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근거까지 마련해 두고 있으니 참으로 편리한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했다가 끝내 발견하지 못하자 중동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라고 말을 바꾸고, 미국 자신이나 친미 정권이 장악한 나라들은 핵무기를 개발해도 좋고 다른 나라는 안 된다고 하는 등, 네오콘의 '고귀한 거짓말'은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이 된 듯하다.

그러나 이런 황당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미국의 권력을 장악했는지 놀라게 되는 한편으로, 이들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면 지배층은 온갖 책략과 권모술수를 동원해 권력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질서 유지를 위해 자신들도 믿지 않는 신념이나 사상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내부의 모순을 덮어두고 국가적 통합을 이루고자 전쟁을 일으키는 일도 흔했다. 어쩌면 네오콘은 이러한 인류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상으로 체계화한 새로운 형태의 마키아벨리즘일지도 모른다. 물론 네오콘은 겉으로는 도덕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보다 한수 위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을 통해 부시의 이중성과 테러와의 전쟁 이면에 숨겨진 갖가지 모순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진실의 편린에 불과했다. 이 책을 통해 네오콘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의 세계전략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신념을 갖고 일관된 목적의식 하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중이다. 물론 네오콘이 부시를 이용하듯, 부시도 네오콘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므로 그들의 동거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미리 점칠 수 없다. 그러나 네오콘은 레이건 때부터 전면에 나서서 활동했던 오래된 정치세력이며 부시 이후에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장기적인 한미관계를 위해 꼭 필요하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세계제패전략의 핵심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역시 미국인들처럼 국민을 기만하며 조종하려는 권력층을 용인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이므로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에 넘어가지 않았던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전쟁 위험성이 높은 나라 중 하나에 살면서도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쏟는 관심의 10분의 1도 정치나 대외정책에는 보이지 않는다면, 진정 우리 나라의 이익에 봉사하는 정치인들을 배출할 수 없을 것이며, 결국 네오콘의 세계전략에 놀아나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소수 정치 엘리트라는 네오콘들의 믿음은, 현실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조직화한 전 세계 민중의 힘을 통해서만 깨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백지선은 김영사에서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를 진행한 편집자입니다.

레오 스트라우스(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 박성래 지음 / 김영사 펴냄 / 1만5900원


레오 스트라우스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박성래 지음, 김영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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