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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의 ‘정의’는 ‘뻥’이다. 적어도 레오 스트라우스의 생각은 그렇다. 진짜 플라톤의 진리는 “그 자체로 옳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매한 대중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철학자는 진리와는 반대로 얘기를 해야 한다. 이른바 ‘고귀한 거짓말’로 대중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신이란 것도 엘리트들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네오콘 정치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해석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절대 자유롭거나 평등하지 못하다. 태어날 때부터 차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진짜 ‘자연권’이다. ‘자연권’ 아래 인간은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엘리트와 대중으로 양분될 수 있고, 정치는 똑똑한 소수 계층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결국 ‘자연권’을 부정하는 사회를 좀 먹는 정치 체제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라우스가 바라보는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는 위태롭다. 대중의 존재를 과신하고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너도 옳고, 나도 옳은’ 무분별한 상대주의가 판친다. 결국 사회 질서와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줄 연결 나사가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낙태, 동성애 등 상상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가 너무도 쉽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사회 종말’에 대한 스트라우스 추종자들의 진단이다.

미국 사회가 진보 진영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1960년대다. 케네디와 존슨은 ‘위대한 사회’란 캐치프레이즈로 인종차별 철폐, 남녀 평등, 소수자 우대정책, 사회보장 확대, 낙태 허용 등 정책 펼쳤고, 얼 워렌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도 진보 판례 양산하며 자유주의를 크게 확산시켰다. 이어 68혁명으로 서구 정치 철학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진보 운동을 이끌었던 젊은 세대들이 클린턴과 같이 정치계 진출하면서 사회는 자유의 기치를 고양시켰다. 40년 넘게 공화당은 의회내에서 다수당이 돼 본 적이 없고, 2000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며 그나마 보수 진영의 위신을 되살렸다.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걸며, 공동체의 통합을 강조했던 부시 대통령은 911 사태를 겪으며 스트라우스 추종자들과 긴 밀월에 들어갔다. 네오콘이라 불리는 신보수주의 계파 중에서도 이들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세졌다. 테러와의 전쟁 때문이었다.

스트라우스의 정치 철학 원리대로 부시 행정부는 적과 친구를 구분하고, 미국의 편에 서지 않으면 과감하게 친구를 무시했다. 이라크 개전 당시 부시는 유엔 연설에서조차 미국의 단독 행동에 ‘딴지’를 걸지 말라는 식의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프랑스, 독일 유럽 여러 국가들과의 분쟁도 마다 하지 않았다.

이라크 침공의 계기가 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가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부시 행정부의 외교를 주도했던 네오콘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나돌았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처음부터 미국은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걸 알았다는 점이다.

폴 울포위츠와 함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퍼뜨린 장본인인 에이브럼 셜스키는 자신의 책 ‘조용한 전쟁’에서 “정보작전의 목표는 진실이 아니라 승리”라고 공언했다. 결국 애초부터 대량살상무기는 거짓이었다는 걸 증명해주는 말이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인들은 자신의 자유를 국가에 헌납했다. 패트리어트 법이다. 법에 따르면 언제든 국가는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 법은 압도적인 지지로 상하원을 통과했고, 얼마전 연장안도 가결됐다. 이로써 스트라우스 추종자들이 천명했던 엘리트 정치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자유주의는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해악일 뿐이다. 국가는 범죄, 마약, 동성애, 낙태, 가족 붕괴와 같은 해악을 없애기 위해 사회 전체의 도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자유주의 정신에 기초해 탄생한 미국은 지금 근본 이념과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네오콘, 그 중에서도 스트라우스 추종자들 때문이다. 일반적인 보수주의는 자유의 가치를 인정한다. 시장의 질서를 믿고, 큰 정부를 혐오한다. 하이에크와 같은 계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네오콘의 핵심인 스트라우스 추종자들은 ‘강한 정부’를 맹신한다. 국가가 나서 국민 개인의 도덕까지 계몽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지금 보수주의 공화당과 스트라우스 추종자가 핵심인 네오콘의 동거는 기이한 일이다.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에서 지은이 박성래는 말한다.

“911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패러다임이 반 세기만의 패러다임 차원의 변화를 겪었는데도, 한국 정부는 냉전시대 미국을 상대하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의 외교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상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원인으로 지은이는 레오 스트라우스를 꼽았다. 현재 네오콘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다수가 스트라우스 추종자들이다. 폴 울포위츠, 에이브럼 셜스키, 윌리엄 크리스톨,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 네오콘의 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과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이들이다. 결국, 스트라우스 코드를 읽지 못하면 대미 외교는 사상누각이란 얘기.

그 예로 저자는 스티븐 해들리 안보 보좌관의 ‘regime change’를 예로 든다. 한국 외교부나 국회의원, 언론들은 이를 정권 교체가 아니라 체제 변환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스트라우스 코드에 따르면 체제 변환은 시장 개방, 권위주의 해체 등의 의미가 아니다. 스트라우스에게 regime은 경제, 문화, 도덕 등 삶의 모든 영역을 바꾸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월한 regime, 미국적 regime의 이식을 의미한다. 엘리트가 대중을 다루듯, 우월한 regime이 열등한 regime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해석에 따르면 현재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선제공격론’으로 대표되는 MD 구축이 미국의 주요 관심사인 것만 놓고 봐도 이들이 언제 열등한 regime을 골라 이라크처럼 폭격을 퍼부을지 모를 일이다. 거짓 정보를 흘려가며, 또 적과 친구를 구분하며 말이다.

지은이는 기자답게 쉬운 언어로 레오 스트라우스 이론을 설명한다. 나아가 기존의 정치학 교재와는 달리 레오 스트라우스를 네오콘과 묶어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해석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있다. 서문에서 스스로 밝혔듯, 전문가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구성이 매끄럽지 못하고, 중언부언이 많다. 분량은 330 페이지에 달하지만, 필요한 얘기만 압축하고 나면 절반에도 못 미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현재 부시 행정부의 외교 철학을 이처럼 명쾌하게 쉽게 설명해준 서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책값 1만5900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그 값어치는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 박성래, 김영사, 2005.


레오 스트라우스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박성래 지음, 김영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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