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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메리안>
책 <수메리안> ⓒ 파미르
중동 지방에서 발생하여 세계 문명을 일으켰으나 야만인들에 의해 사라진 나라 수메르. 그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수메르 신화'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온다. 그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작가적 상상력을 풀어낸 소설이 바로 윤정모의 <수메리안>이다.

5천여 년 전에 탄생한 수메르의 신화에는 인류 사상 최초로 역사 시대를 열었고 문자 사용과 도시 국가를 건설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초의 법전까지 만들고 고도 문명을 가진 나라였으나 그들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떻게 멸망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신화를 통해 수메르의 시조가 '검은 머리의 사람'임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주변 중동의 민족과는 다르게 교착어를 사용하고 순장이 강요되었으며 청회색 토기 문화를 갖고 있었던 나라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동방에서 온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종족이었음을 추정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추정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우리 민족과 같은 뿌리였을 것이라는 소설적 상상 아래 작품을 창작하였다. '수메르'라는 국호도 '소머리'라는 우리 단어에서 변형되었으며 우리의 고기(古記)에도 환인의 나라 환국이 12개국으로 동서가 2만리에 달한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 즉 이 기록을 토대로 하여 작가는 수메르가 우리 민족에서 뻗어나간 것임을 믿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현재 상, 하권으로 출간된 <수메리안>은 수메르의 일대기에 관한 역사 소설 중 초반부에 해당한다. 즉 이 나라가 어떻게 우리 시조로부터 뻗어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비록 허구적인 이야기이긴 하나 마치 한 편의 웅장한 우리 역사를 읽는 것처럼 재미 있게 펼쳐지는 수메르 건국의 이야기.

그 출발은 환국의 어린 소년 에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상서로운 새인 봉황을 본 적이 있어 무언가 큰 일을 이룰 인물임을 예견 받았던 소년 에인. 그는 자신의 운명과는 달리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늑대와 함께 산야를 쏘다니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서쪽의 먼 속국으로부터 온 영주를 만나게 되고 침략 당한 속국을 구하기 위해 한 군대의 수장이 되어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냈으나 하늘의 신과 교감하면서 운명을 감지하고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군대를 이끌게 된 에인.

그가 펼치는 온갖 모험들은 마치 무협지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들의 연속이다.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하나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가는 이 왕자의 길에는 느닷없는 행운도 따른다. 하늘의 도움으로 언제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천리마까지 함께 하여 그의 역경은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모험담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강간범으로 몰려 내쫓김을 당하고 모함을 받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은 매우 길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주인공 에인의 역경은 천신의 도움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 의해 극적으로 해소된다.

역경을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는 청년 에인은 군대의 훌륭한 수장으로 우뚝 서고 중동 지방 정벌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 그는 중동 지방의 땅이 풍요로운 청동기 문화를 가진 곳임을 인식하고 고향인 환국보다 이곳에서 더 큰 국가를 이룩하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결국 그 꿈을 이룬 날 중동 지역 5개국의 신인 '엔릴'로 추대를 받으며 어진 왕이 된다.

책의 마지막은 어린 소년이었던 에인이 거대한 문명 국가의 시조가 되어 멋진 나라를 이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120세가 된 주인공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 환국(소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첨성단에서 사라지는 것을 결말로 설정한다.

이 수메리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수메르라는 나라의 건국 신화에 불과하다. 도대체 작가가 어떠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나라 '수메르'의 이야기를 이끌어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특히 이들의 시조가 우리와 같은 뿌리인 하늘의 신 '환인'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천하를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대국(大國)으로 번창하던 시절의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이 작은 땅덩이에서 아웅 다웅 치고 받으며 살고 있으나 과거 우리도 천하를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는 상상. 그것이 상상이든 진실이든 과거를 돌이켜 보며 큰 꿈을 키워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수메리안 - 상 - 환족, 그 머나먼 원정 길

윤정모 지음, 파미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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