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윤정모 장편소설 <수메리안 1,2>
윤정모 장편소설 <수메리안 1,2> ⓒ 파미르
..에인이 방금 호수에 도착했다. 어제 그 자리였다. 그는 먼저 사방을 둘러보았다. 참억새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졌고 물길은 잔잔했으며 그 위로 여명이 짙푸른 비단처럼 덮여 있었다. 오늘은 좀 이르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는 천천히 절을 올린 후 정좌를 하고 앉아 해를 기다렸다.

신룡을 본 성현은 옛 선조 태호 복희(환웅 5세, 환웅 태우의 막내아들)였다. 그 성현은 이른 아침마다 소머리강으로 나갔는데, 어느날 해가 불쑥 떠오르자 강에서 거대한 신룡이 고개를 쳐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해는 성큼 자리를 비키면서 색깔이 변했는데, 처음은 자지러질듯 붉어지다가 곧 주황색으로 바뀌고 그것이 또 노란색 푸른색 등으로 열두 번 변했으며 그 사이 신룡 또한 그 긴 몸이 세 번씩 끊어지고 또 세 번씩 이어지면서 그 공중에다 자리 구도를 보였고, 태호 복희는 그것을 풀어 환역(桓易)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환위추리되면서 묘하게도 삼극을 품고 있어 변화가 무궁하였다.'/ 교화방 스승이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에인은 그런 조화까지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형상이라도 본다면, 그 정도라도 천자는 자신을 해방시켜 줄 것이었다./ 마침내 불쑥 해가 떠올랐다. 에인은 정신을 집중하고 하늘을 주시했다. 해가 붉어졌다! 지난 열흘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오늘은 저렇게 붉어지고 있다! 그는 재빨리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1권 80~81쪽, '소호라는 나라가 있었다' 몇 토막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앞, 바빌로니아 땅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도시국가 수메르. "자신들을 일러 항상 '검은 머리 사람들'임을 강조"했던 수메리안. 수메리안의 인종적 특징은 "첫째 머리카락이 검고, 둘째 후두부가 편편하며, 셋째 몸이 땅딸막하고, 넷째 중동 언어와는 전혀 다른 교착어를 사용했으며, 다섯째 청회색 토기 문화와 여섯째 순장이 강요되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소머리). 태음력과 60진법, 쐐기문자를 사용하고, 참성단(지구라트)을 세웠다는 그 소머리국의 검은 머리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따르면 "환국은 12개국으로 동서가 2만 리고 남북이 5만 리며, 그 중엔 수밀이국과 우르국도 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기에 나오는 수밀이국이 곧 소머리국인 수메르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수메르국은 환국에 속하는 자치국가였다는 그 말이다. 환국? 환국은 또 무엇일까.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은 우리 민족의 시조 환인이 세운 나라를 말한다. 환인, 환웅, 환검(단군)으로 이어지는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 곧 환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대사는 환국(환인시대), 배달국(환웅시대)에 이어 단군이 세운 고조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5천여 년 전에 탄생한 수메르도 그랬다. 인류사상 최초로 역사시대를 열었고, 문자사용과 도시국가 건설, 각 도시간의 연방제, 민회와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왕을 선출하기도 했다. 문학, 신학, 수학, 천문학은 물론 최초의 법전까지도 만들었다. 거대한 신전건축과 프레스코, 모자이크 벽화 양식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세계 문명의 원류가 되었으나 그런 고도의 문명을 가진 국가도 한 야만의 세력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독자들에게' 몇 토막

지난 2002년, 한국전쟁에서 IMF까지의 격동기를 살아낸 모녀의 이야기와 치매에 걸린 삼촌의 삶을 꼼꼼하게 그려낸 장편소설 <꾸야삼촌>(2002년 8월 13일, <오마이뉴스>)을 펴낸 작가 윤정모(59)가 3년 만에 장편소설 <수메리안 1, 2>(파미르)를 펴냈다.

이 책은 지난 2003년 11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장편소설로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앞 바빌로니아에 있었던 선진 문명국가 '수메르'가 환인들의 후손이 세운 '소머리국'이었다는 가설을 주춧돌로 삼았다.

작가 윤정모는 "그들은 환인의 자손이었고, 민족 이동기에 수메르로 건너갔다"고 말한다. '수메르'라는 국호도 곧 '소머리'에서 나온 말이며, 그 어원은 성스러운 하늘의 강, 또는 소머리강(송화강)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작가는 이 같은 사실을 고대 사학자 문정창 선생의 말을 빌려 "수메르 최고의 신 엔릴(에인)도 천자의 명을 받고 메소포타미아로 건너가 5개 도시를 정복한 소호국의 영웅"이라고 곱씹는다.

"아까 강가에서 무얼 하고 있었소? 아직 이른 시간인데."
"예, 신룡을 만날까 해서 매일 아침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이라 에인은 그만 솔직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신룡이라면 해와 더불어 괘를 보였다는 그 용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건 아주 옛날 어떤 성현께서 보셨다는 것 아니오?"
"예, 성스러운 소머리강에서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긴 소머리강이 없지 않소."
"아까 그 호수도 소머리강만큼 신성하다고 했습니다."

천 년 전부터 환족이 동쪽으로 뻗어나와 소머리에서 우수리강까지 영역을 넓혀나갔지만 소호국이 곡부에 도읍한 것은 불과 2백여년 전이었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 태호 복희가 보았다는 신룡을 그것도 엉뚱한 곳에서 기다리다니 이 청년이 지금 제 정신인가? 사나이가 다시 물어보았다.

"한데 어찌 청년이 그 신성한 용을 기다린단 말이오?"

-1권 83~84쪽, '소호라는 나라가 있었다' 몇 토막


작가는 다시 일본 학자 우에노의 말을 빌린다. "우에노조차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문자는 태호 복희의 팔괘부호와 흡사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 작가는 보다 정확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대만 학자 서량지의 <중국전사화> 246쪽을 펴든다 그곳에는 "중국의 역법도 그 시조는 동이이며, 태호에서 비롯되어 소호에서 계승, 역정관을 두어 크게 발달시켰다"고 적혀있다.

환족의 비밀 밝힐 <수메리안> 3권 더 집필
작가 윤정모는 누구인가?

▲ 작가 윤정모
ⓒ파미르
"고대사를 여행하다보면 세 가지 공통점을 만나게 된다. 첫째는 왕이나 영웅들의 정복기가 너나 없이 잔인했다는 것, 둘째는 그들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거나 신격화를 원했고, 셋째로는 아무리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해도 1천 년 이상 지속된 국가는 없으며 그것도 거의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신세력에 의해서 멸망해 갔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몇 토막

작가 윤정모는 1946년 경주 나원에서 태어나 1968년 <무늬져 부는 바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 <여성중앙> 중편 공모에 '바람벽의 딸들' 이 당선되었다.

작품집으로는 <광화문통 아이>(1976)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82) <밤길>(1986)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1986) <님>(1987) <고삐>(1988) <빛>(1991) <들>(1992) <봄비>(1994) <나비의 꿈>(1996) <그들의 오후>(1998) <딴 나라 여인>(1999) <슬픈 아일랜드>(2000) <우리는 특급열차를 타러 간다>(2001) <꾸야 삼촌>(2002)이 있다.

1988년 <신동엽 창작기금>, 1993년 <단재 문학상>, 1996년 <서라벌 문학상> 받음.

/ 이종찬 기자
그런 까닭에 윤정모는 수메르인들이 사용했던 태음력이나 60진법이 분명 소호라는 나라에 그 뿌리가 있다고 믿는다. 또한 수메르라는 고대 도시국가를 세운 검은 머리 사람들 수메리안이 환족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작가는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신화를 배제한 역사소설로, 그것도 민족 우월이 아닌 종족의 문화와 풍습을 과장없이 증언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하지만 곧 벽에 부딪치고 만다. "환족의 역사는 거의 신화로 서술되었고, 수메르인들이 남긴 것 역시 신화 밖"에 없다는 것. 작가는 고민한다. "그 신화를 과연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풀어낼 것인가?" 하고. 하지만 작가는 곧 그 고민에서 벗어난다. "신화도 문자에 의해 재탄생되었고, 따라서 문자 없이 산 수십만 년의 인류사를 축약, 기록하다 보니 신화로 서술되었다"는 큰 틀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데 엔릴 신께서 어찌 천상도 아닌 이곳 시냇가에서 사랑을 했을까?"
"나는 그보다도 신께서 어린 여신을 강간했고 그래서 지하 세계로 추방당했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더 궁금하다네."
"그 내막은 기실 엔릴 신을 사위로 삼으려고 여신의 어머니께서 일을 꾸몄다지 않는가?"

젊은 교사들의 그런 대화에서 부사제장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지자 교장이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신화는 사실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 읽는 것이네. 내가 자네들이라면 어떤 연유로 엔릴 신께서 수메르 전 역사에 걸쳐 항상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는가. 그 문제부터 연구해 보겠네."

-1권 71~72쪽, '니푸르1' 몇 토막


이 소설은 수메르의 마지막 왕 이비 신의 몰락을 들머리로 내세운다. 이어 제1장 '소호라는 나라가 있었다'로 신화와 역사가 마구 뒤엉겨 있는 머나먼 길을 걷기 시작한다.

소호국 태왕의 조카 에인은 어릴 때 신조라는 봉(鳳)을 목격하고 소호국 태왕으로부터 왕자로 선택된다. 그즈음 딛을 문의 영주가 급히 소호국으로 찾아온다. 딛을 문은 소호국에서 "이역만리로 2백년 전 환족이 터를 잡았고, 50년 전부터 소호국의 종속국이 되어 동서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근데, 닫을 문의 영주가 찾아와 "주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대상들도 거점지를 잃었다. 소호뿐만 아니라 환족의 국제 시장 지위를 위해서도 그 땅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부디 조처를 취해 달라"며 간청한다. 소호국으로서는 노른자를 잃은 셈이었다. 게다가 그 땅이 같은 환족도 아닌 가까운 중동지역의 어느 종족이 탈취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태왕은 딛을 문을 침입한 이민족의 정벌에 에인을 내세운다. 에인은 점점 기울어져가는 소호국의 미래를 짊어진 채 머나먼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에인은 시파르, 에리두, 슈르파크, 라라크, 바드 티비라 등으로 이어지는 머나먼 원정길에서 이민족들과의 수없는 전투, 끝없는 사막길 등으로 큰 고통을 당한다.

"에인은 천둥이를 타고 사막을 걸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온누리를 짓눌러 달려갈 수가 없었다. 입술도 쩍쩍 갈라졌고 눈의 물기도 말라 시야마저 온통 희부옇게 흐렸다.

'빼빼 마른 나무만 찾으면 거기 물 웅덩이가 있어. 천둥아, 거기까지만 가면 넌 물을 마실 수 있을 거야.'

천둥이보다 자신의 갈증이 더 깊은데도 에인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빼빼 마른 나무, 그래 그 나무...../ 에인은 지금 전날의 그 메스키트 나무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 나무에는 그늘이 없었다. 그럼에도 거기 앉았을 때 엉덩이로 수액이 뻗어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살아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이었다.

타 민족으로부터 봉변을 당했을 때, 자기 앞의 그 처지가 너무 버거워 죽음 속으로 도피하고 싶었을 때 그 수액은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밝혀 주었다.

'네가 저지른 실수는 네 스스로 닦고 지워야 한다. 그것이 벌이라면 벌로서 치러야 한다......'

그래서 사막의 긴긴 나날들, 모기처럼 물어뜯는 햇살도 묵묵히 견디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와 달랐다. 자기 실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고,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 광분했고,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해결하거니 수습할 수조차 없다는 것에 놀라 혼자 버둥거린 것이었다.

-2권, 206~207쪽, '새로운 세상' 몇 토막


에인은 그 고된 여정 끝에 마침내 바빌로니아 땅에 도착, 그곳 군주와 군사들을 제압하고 검은 머리 사람들의 문명국가 수메르국을 세운다. 그때 에인은 천신에게 "제가 이 땅과 하늘을 가졌나이다! 천신은 바다 멀리까지 하늘 호수를 덮어 주셨나이다! 신이여! 하늘 아래 호수 아래의 모든 백성을 평화와 안정으로 천년만년 품어주소서!" 라고 아뢴다. 그리고 에인은 1천여 년 동안 수메르의 신 엔릴로 추앙받는다.

작가 윤정모는 이 소설을 모두 5권으로 펴낼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수메리안> 상, 하 편은 우리 고대사의 접목 편. 윤정모는 다음에 나올 3권에서 5권까지는 "실존 인물 길가메시, 그리고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우루카기나 시대, 마지막으로 극대로 팽창했다 갑자기 멸망한 우르 3왕조의 찬란한 문화업적"까지 쓸 것이라고 귀띔했다.

<수메리안 1,2>는 오랜 역사 속에 지워졌거나 잃어버린, 그리하여 모든 역사가 신화처럼 되어버린 우리 민족의 고대사 찾기다. '환족, 그 머나먼 원정길'이란 덧글이 붙어 있는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이라는 삽날로 우리 민족의 찬란한 고대 문명국가였던 수메르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하여 인류의 찬란한 문명의 모든 뿌리가 환족에게 있었음을 새롭게 들추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의 신문>에도 보냅니다


수메리안 - 상 - 환족, 그 머나먼 원정 길

윤정모 지음, 파미르(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