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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동두천에서 발생한 '미군 트럭 압사사건'에 대한 재판권 포기 요청을 두고 고심해오던 법무부가 결국 '주권'과 '인권'을 포기하는 대신 대미 관계를 고려한 '정치, 외교적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하자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상 미군당국이 공무증명서를 발급한 지 21일 내인 7월 26일까지 미군당국에 1차적 재판권 포기 요청을 해야 하나 그마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하루가 지난 27일까지 그에 대한 공식 입장조차 밝히길 거부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02년 6월, 두 여중생을 미군 장갑차로 깔아 죽이고도 미군 피의자 두 명 모두 미 군사법원에서 무죄 평결을 받고 유유히 본국으로 돌아갔던 일을 기억한다. 그 후 3년이 지난 올해 6월, 관련 수사기록 공개로 미 군사법원이 의도적으로 유죄의 증거가 될만한 진술이나 증거 등을 채택하지 않아 사건 사실이 은폐되고, 결국 무죄 평결이 나오게 되었음이 드러났다. 재판장에서 배심원까지 모두 미군으로만 구성된 군사법원에서의 재판 결과란 사실 뻔한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미군 당국이 재판권을 행사한다면 또 다시 무죄 평결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재판권 포기 요청'이라는 주권국가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논리를 앞세운 명백한 '직무 유기'다.

재판권 포기 요청을 한다고 해서 미군당국이 반드시 이에 응한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당시 법무부가 국민 여론에 못 이겨 사상 처음으로 미군당국에 1차적 재판권 포기 요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법무부의 금번 결정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미군범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되고 있는 가운데, 만일 미군당국이 법무부의 재판권 포기 요청조차 거부한다면 그로 인해 미군 문제가 더욱 이슈화되고 반미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식 입장조차 밝히길 거부하며 어떻게든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는 법무부의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왜 우리나라는 늘상 미군 문제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는가. 한미관계라는 정치 논리에 자국민의 생명과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또한, 이번 사건은 미국 대통령이 유감까지 표명할 정도의 중대한 사안임에도 정부당국이 재판권 포기 요청 등 사건 진행에 대한 공식 입장조차 발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알 권리를 심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공식 사과하고,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로 최소한 사건의 진상이라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를 통해 미군당국이 미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라도 지난 여중생 사건 때와 같이 '무죄' 평결을 내리는 어이없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금번 법무부의 정치적 판단이 어떠한 후과를 가져올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한미군 대형트럭에 의한 압사사건 비대위'의 7월 27일자 논평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도 기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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