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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하고있는 미2사단장
고인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하고있는 미2사단장 ⓒ 이소희
여기에 부시 미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사고 발생 4시간만에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유감 표명을 하기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소식을 회담 시작 불과 1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때에야 전해 들어 자칫 사고발생 소식조차 모르고 회담장에 들어갈 뻔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온다.

그만큼 미국이 한국 정부나 언론보다도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는 것인데, 이것은 지난 여중생 사건 때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여중생 사건 발생 당시 미국은 초기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사건 발생 한 달하고도 두 주가 지난 2002년 7월 30일에야 주한 미 대사가 한국 국방장관에게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아마 예전 같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일이다.

한편, 여중생 사건과는 달리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는 점이 유족들을 비롯해 전반적인 사회 여론이 소위 비판적 지지로, 소극적인 대응에 나서게 하였다. 그렇게 한미 당국이 미국의 거듭된 사과와 피해자의 과실만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여론을 호도하는 사이 사건의 진상은 철저히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묻혀지고 왜곡된 사건의 진실

사고 당일인 10일 저녁, 양주경찰서에서 미군 운전자와 선탑자에 대한 1차 소환조사를 마치고 간단한 기자 브리핑을 했다. 경찰은 미군 운전자가 신호를 받고 차량을 정상 운행 중에 무단횡단을 하던 피해자 김씨를 미처 보지 못해 발생한 단순 교통사고라고 발표했다. 미군 운전자나 선탑자는 차체가 높아 피해자를 보지 못했고, 운전자는 앞뒤 바퀴로 두 번 피해자를 밟고 지나가는 동안에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고현장
사고현장 ⓒ 동두천시민연대
당시 피해자가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려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무단횡단'이라고 하면 차들이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길을 무단으로 건너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경우 미군차량이 신호대기 중에 정차해 있던 상황에서 피해자가 미군차량 앞을 지나갔고, 반대편 차선에서 차량이 지나가 중앙선에 멈춰서 있던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치고 나간 것인데, 경찰은 단순히 '무단횡단' 이라고 말함으로써 처음부터 사건사실을 왜곡했다.

곧이어 밤 10시에 현장검증을 할 예정이었으나 1시간여간 지연된 끝에 결국 무산됐다. 미군측이 신변 위협과 초상권 침해 우려 등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에 항의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현장검증에 대비하여 지역단체인 동두천시민연대를 중심으로 사고 현장 인근 공터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12일 새벽 5시 20분경, 경찰의 기습적인 현장검증이 시작됐다.

당시 현장검증은 언론에조차 사전에 알리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총 1시간여에 걸친 검증과정에서 사고차량을 이용해 직접 사고의 전 과정을 재연한 것은 고작 13분에 불과했다.

특히 많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는 앞바퀴로 넘어갔을 때만 해도 살아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적어도 앞바퀴로 넘어간 뒤에 바로 정차하기만 했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목격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왜 바로 정차하지 않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군 운전자의 주장대로 피해자를 밟고 넘어가는 동안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상황을 직접 검증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의 신체 조건과 비슷한 마네킹 등 대체물도 놓지 않고 사건 당시를 재연했다.

이를 규탄하며 같은 날 오후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와 '미군트럭 압사사건 진상규명 비대위' 관계자들이 양주경찰서를 항의 방문해 경찰서장과 면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선탑자는 피해자를 보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경찰이 사건사실을 은폐,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파문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경기지방경찰청은 다음 날인 13일 오후 2시 제2청사에서 긴급 기자 브리핑을 열어 조속한 진화에 나섰다.

6월 13일 경기경찰청 긴급 기자회견에서. 왼쪽이 윤재국 양주경찰서장
6월 13일 경기경찰청 긴급 기자회견에서. 왼쪽이 윤재국 양주경찰서장 ⓒ 이소희
경찰은 지난 1차 브리핑 때 선탑자가 피해자를 보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일부러 숨긴 것이 아니라 당시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아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곧 브리핑 자리에 참석했던 모 신문기자가 사실이 아니라며 사과를 요구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경찰은 "현장검증 결과 1.7m의 운전석에서 피해자와 같은 158cm 키의 사람이 지나갈 경우 머리 윗부분이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며 운전자 역시 피해자를 보았을 수 있다며 추후 재소환해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선탑자가 차량 앞을 지나가는 피해자를 보고 운전자에게 말했지만 차량 소음으로 인해 듣지 못했다고 발표하고 운전자를 비롯해 선탑자, 부대장까지 소환해 보강수사를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언장담과는 달리 결국 경찰은 미군측의 진술을 그대로 인정하는 선에서 제기된 의혹은 그대로 남겨둔 채 6월 24일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새롭게 밝혀진 것이라면, 당시 운전자는 차량 소음에다 헬멧을 쓰고 있어 선탑자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비협조적인 미국과 소심한 한국

이번 수사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오로지 미국측 진술만을 토대로 짜맞추기 식으로 수사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미군 운전자의 진술에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경찰은 달리 이것을 반박할 만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어 가며 미국측 주장만을 그대로 대변하거나 심지어 변호하기도 했다.

미군 운전자가 헬멧을 쓰고 있어 선탑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한 경찰 수사관은 헬멧을 직접 써보니 듣는데 별 문제가 없더라고 하면서도 "듣고 못 듣고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상황이라 내가 들린다고 해서 남도 들린다고 말할 순 없다"는 이색적인(?!) 논리를 펴기도 했다.

초동수사의 문제점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경찰청에 질의하여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여중생 사고 발생 이후 한미간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개선안의 하나로 합의한 '초동수사 강화방안'이 사실상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고 직후 미국의 통제 하에 현장 조사를 했고, 미군 운전자는 사망사고를 낸 현행범인데도 신병인도를 받아 조사하기는커녕 우리측에서 신병확보조차 하지 못했다. 미군 범죄자의 소환조사를 위해 SOFA 규정상 반드시 입회하여야 할 정부 대표도 미국측의 비협조로 요청 후 2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석했고, 그나마 임명장을 가져오지 않아 실제 조사는 2시간이나 더 지연되었다.

한미 당국은 여중생 사건 당시 초동수사가 제대로 안되어 진상규명이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고 2002년 12월 ▲한미 공동 현장조사 ▲신병인도 전 조사 ▲미 정부대표의 1시간 내 출석 등을 골자로 하는 '초동수사 강화방안'에 합의한 바 있다.

결국, 여중생 사건 이후 국민 여론을 의식한 미국측의 립서비스나 쇼맨십은 상당히 좋아진 반면 정작 실질적인 사건 처리에서 미국측의 비협조와 한국당국의 소극적 태도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달라진 모습을 원한다

달라질 것이라면 제대로 달라져야 한다. 미군 당국은 괜히 겉모습만 바꾸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우롱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국당국 역시 어디까지나 한국인 피해자의 처지에서 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우선적인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여중생 사건 때와 확실히 선을 긋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상 당시의 참담했던 기억은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미군 트럭 압사사건과 관련해 현재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활동중에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비대위 홈페이지 "http://us-truck.cyworld.com"을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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