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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을 받다보면 무조건 '들이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가령 내가 서울에서 일할 때나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나 전화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와 줄 수 있느냐고 따지듯 물어온다.

그런데 그들의 현주소를 물어보면 수도권으로부터 근거리도 있지만 부산, 대구, 대전과 같은 원거리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면 대개 전화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거나, 가까운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를 소개해 주곤 하는데, 그런 안내가 성이 차지 않았는지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임금체불과 관련하여 사무실을 나와 있을 때, 김포에서 일하고 있다는 인도네시아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도권이라 하지만 찾아오기에 먼 거리일 듯싶어 다른 지원 단체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더니, 그는 '알았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쉼터 입구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택시비를 11만원 이상 들여 기자를 찾아온 수뜨리스노
ⓒ 고기복
그의 이름은 '수뜨리스노'였는데,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김포에서 택시 타고 왔는데 11만3800원 나왔어요. 그거 맞아요?" 하는 것이었다. 수뜨리스노는 택시비가 어이없이 비싸게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택시에서 내리면서 교차로에서 교통통제를 하고 있던 경찰을 불러 자신이 바가지를 쓰지 않았는지를 물었지만, 경찰은 마냥 웃기만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김포에서 왜 택시 타고 와? 거리가 얼만데…."
"택시 영수증 있으면 그거 맞아~."
"갈 때는 버스 타고 가. 수원 가서 지하철 타면 돼."

나름대로 각자 의견을 말하는데 수뜨리스노는 그래도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영수증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경찰에게 물어볼 때, 건네 줬는데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어찌됐든 11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들여 나를 찾아온 그의 사정은 이러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지 한 달 보름 정도 지나고 있는데, 일하고 있는 곳이 미나리를 재배하는 농장으로 용접 자격증을 갖고 있는 자신이 왜 지금과 같은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엔 중국인들이 십여 명 있는데, 밤마다 돼지고기를 안주로 술을 마시지만 자신은 이슬람인이라 늘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계산에 의하면 잔업시간만 92시간이 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요일과 휴일 근무까지 했는데, 첫 월급이 정확히 70만 원이었다는 것이다.

수뜨리스노의 주장에 대해 업체 대표와 전화 통화 결과, 직원 부식비로 월 120만원이 책정돼 있는데, 먼저 온 중국인들이 그 돈을 관리하고 있어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는 말과 함께, '농사일이란 게 손에 붙어야 되는데, 수뜨리스노가 아직 일이 서툴러 임금을 적게 줬다'고 전하며, 앞으로 몇 달간 지켜보다가 임금을 올려줄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부식비 관리 문제를 시정해 줄 것과 급여를 제대로 정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업체 대표는 "그럴 바엔 차라리 사람을 내보내겠다"며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

그런 업체 대표의 말을 전해 들은 수뜨리스노는 '자신은 농장에서 그런 차별을 받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의 말을 듣던 인도네시아인 중 한 명이 "11만원 할 만하네"라고 거들었다. 11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들이고 무조건 들이대듯 달려올 만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뜨리스노와 대화를 하면서 외국인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자존심 그리고 정당한 권리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업체 대표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덧붙이는 글 | 현재 수뜨리스노는 근무처 변경신청 중이다. 단, 그는 입국 당시 농축산업으로 왔기 때문에 그의 희망과 달리 제조업에서 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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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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