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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 원 안은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지점. 혈흔이 얼룩져 남아있다.
사고현장. 원 안은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지점. 혈흔이 얼룩져 남아있다. ⓒ 이소희
한편 조씨는 병이 깨지면서 오른쪽 눈두덩을 비롯하여, 미간에서 오른쪽 뺨 아래까지 15cm 이상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응급 후송된 조씨는 과다 출혈을 막기 위해 대충 찢어진 부위를 임시로 봉합하는 1차 수술을 받았다. 조씨는 “피가 얼마나 많이 흘러내리던지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붓는 느낌이었다”며 당시의 순간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4일 임시로 봉합한 부위를 다시 뜯어내고 재수술을 받았는데, 담당의사는 너무 많이 꿰매 몇 바늘이 꿰맸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직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눈과 뼈에도 부상이 있는 듯해 정밀 진단을 받아봐야 하고, 약 6개월 후에는 성형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찰이 직접 피해자의 얼굴을 병으로 찍어 누른 미군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포함해, 현장에 있었던 두 명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거물 수집이나 목격자 확보, 신병인도 전 조사 등 초동수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고 현장에서 인근 의정부경찰서 가능지구대로 인계된 미군 제롬 일병은 처음에 자신은 나머지 두 명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발뺌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만 피해자를 발로 찬 사실이 있다고만 인정했다. 그에 따라 도망간 두 명에 대한 신병확보가 매우 시급한 상황에서,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결정적인 증거물이라 할 수 있는 깨진 병조각조차 수습하지 않았다.

미군 역시 손에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고, 깨진 유리조각에 혈흔이 남겨졌을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유리 조각은 피해자를 가격한 후 도망간 두 명의 신원을 밝혀내는데 매우 유력한 증거물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것은 경찰 초동수사에 결정적인 허점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구대 담당 경찰은 "유리병이 완전히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 수습할 수가 없었고 대신 사진을 찍어두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 직후 피해자에 대한 응급 처치에 나섰던 친구 황정선씨는 "친구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주변의 유리병 파편을 치우고 지압을 하는데 파편은 가루가 난 정도는 아니었고, 성인 손가락 한마디 이상 크기의 파편도 여러 개 있었다. 그리고 종이 라벨이 붙어있던 부분은 유리가 깨지긴 했어도 상당히 큰 조각으로 붙어있었다"며 경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번 사고로 얼굴의 절반 가량을 꿰맨 피해자 조수환씨. 하지만 병원비 걱정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얼굴의 절반 가량을 꿰맨 피해자 조수환씨. 하지만 병원비 걱정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 이소희
또 다른 피해자 친구 김승환씨는 병으로 찍어 누른 미군이 도망가다 벗겨진 모자를 주변에 떨어져 있던 라이터 두 개와 함께 증거품으로 지구대 경찰 윤아무개 순경에게 전달했지만 그마저 미헌병 카투사가 가져가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지구대에서 이번 사건을 담당한 엄아무개 경장은 자신은 모자 등이 있는 걸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아무개 소장 역시 "자신이 카투사가 모자를 가져가는 것을 직접 보긴 했으나 그것이 증거품인 줄은 몰랐다"며 당시 지구대에 피해자쪽 만이 아니라 미군쪽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던 터라 통제가 안 되고 경황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로써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물품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고 모두 놓쳐버린 상황이다.

개선된 초동수사 강화방안에도 불구, 관행은 그대로

한편, 미군 신병이 지구대에서 의정부 경찰서로 인계된 후에도 경찰은 미군에 대해 신원 확인만 했을 뿐 피의자 신문조서조차 받지 않고 바로 신병을 미국 측에 인계했다. 이에 대해 담당 경찰은 "SOFA 사건이라 한국에 수사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구금 인수증만 받은 뒤 신병을 바로 미국 측에 넘겨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2년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을 계기로 SOFA 사건 발생 시 진상 규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동년 12월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개선을 통해 '초동수사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한국 경찰이 미군 피의자에 대해 신병인도 전 충분한 예비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미 정부대표의 출석을 요청 후 1시간 내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SOFA상 미군 조사시에는 미 정부대표가 반드시 입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경우 미군의 진술은 증거 능력을 갖지 못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SOFA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미군 피의자를 조사도 안하고 바로 신병을 미군측에 넘기는 관행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은 새로 마련된 초동수사 강화방안에 따라 2003년 1월 1일자로 경찰청 세부 지침을 만들고, 2003년과 올해 6월, < SOFA 사건 처리 매뉴얼 >까지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그와 같은 지침 또는 매뉴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의정부경찰서 담당 경찰은 계속해서 "미군의 경우 SOFA에 따라 신병인도 전 조사를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다 개선된 초동수사 강화방안에 대해 말하자 "그런 것이 있는 줄 몰랐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피해자, 병원비 부담에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피해자에게는 당장의 치료비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상해사건의 경우 보험처리조차 안되어 병원비 부담이 엄청나다. 사고 당일 응급실에서만 치료비가 110만원이 나와 큰 부담을 느낀 조씨는 3일 퇴원했고, 친구들이 모은 돈으로 재입원해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7일 오후 퇴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는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는 상황이다.

조씨는 미군측으로부터는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지난 4일 미 CID(미육군범죄수사대) 민원실에서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많이 다쳤냐고 물은 것이 전부다. 당시 화가 난 조씨가 "그럼 직접 와서 보면 될 거 아니냐. 지금 얼굴 반을 꿰맨 상태"라고 했더니 "그럼 중상이네요?"라고 했다는 것. 그러면서 그냥 알아보려고 전화했다고 말한 뒤 끊었다는 것이다.

미군 당국의 수사 협조 관건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도망간 두 명의 신병을 확보하고 소환조사를 벌이는 게 시급하다. 처음에 경찰은 신병을 확보한 미군 한명에 대해서도 미군측에서 자체 일정에 따라 금주 중 소환조사를 받는 건 어렵다고 해 오는 다음 주 월요일이나 출두요구서를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이 이미 현장을 이탈하여 도주의 우려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큰 상황에서 하루 빨리 미군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고 조사를 벌이는 게 필요하다는 피해자측의 요구에 따라 이번 주 금요일인 8일 오후 2시, 미군 제롬 에버렛 일병에 대해 1차 소환조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정확한 목격자도 없고, 증거물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 신병이 확보된 미군마저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도망간 두 명의 신원조차 알아내지 못한다면 사건 진상규명이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군당국의 수사 협조가 중요하다. 피의자로 지목된 미군 병사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 미군 당국이 당일 외출한 소속 부대원들을 확인하고, 그 중에서 손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찾아낸다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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