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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포스터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포스터
영화관의 화면은 텔레비전이랑 다르게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너무 컸다. 게다가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왜 그리 크게 확대되어 나오는지 완전히 괴물과 같은 모습이었다.

영화 시간은 어린 아이가 버티기엔 너무 길고 지루하여 하마터면 옷에 오줌을 쌀 뻔할 정도로 꾹 참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른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단체 관람으로 익숙해진 극장 문턱

이렇게 시작된 극장과의 인연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계기에는 아무래도 당시 유행하던 '단체 관람'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때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면서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우리 나라 멜로드라마의 시작은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보는 이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시켜 눈물샘을 터트리는 정통 신파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소년소녀 가장의 삶을 슬프게 그린 영화였다.

캄보디아에서 살아 돌아온 미국 기자가 서술자가 되어 공산주의의 잔인함을 전하는 <킬링 필드>를 보지 않은 학교도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단체 관람 취지는 아마도 '반공 의식의 고취'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반공 의식의 고취보다 머나먼 나라에서 일어난 끔찍한 전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데에 기여했다.

특히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에 돌아온 날 밤은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 잔혹한 장면들이 많았고, 며칠 내내 악몽에 시달리며 지내도록 한 정말 '비극적인' 영화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입을 다물고 있었던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대하여 '아메리카의 학살사를 교묘하게 은폐시킨 영화'라고 재평가하고 있으니, 그저 반공주의에 급급한 당시 정권이 얼마나 황당하게 이런 영화를 어린 학생들에게 권장했을까 생각된다.

영화 <킬링필드>의 포스터
영화 <킬링필드>의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냉전 시대와 반공주의, 군사 독재 정권의 손길은 1970년대와 80년대 사람들의 삶 곳곳에 배어 있다. 그것은 영화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를 경청해야 한다든가 '대한뉴스'라는 제목의 정부 홍보용 뉴스를 봐야만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당연한 영화 보기 직전의 절차로 존재했다. 지금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는 그 자리에 현란한 광고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 예전과 다른 점이다.

영화관에서 가장 집중되고 긴장되는 첫 순간에 교묘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반공주의와 정부에 대한 예찬.

198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19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영화 단체 관람'에 동참했던 모든 초등학생들은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유쾌한 영화도 많지 않았고 늘 어둡고 침침한 내용의 영화를 단체 관람해야만했던 유년 시절, 어두운 영화관의 모습이다.

그것 또한 추억이라면 추억일 것이다. 다 자란 후 영화관에서 얻은 추억들도 많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것은 아마 '극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얻어진 기억이기에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는 듯하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하고 냄새나는 공간에 앉아 우리는 다양한 추억을 만들며 살고 있다. 그 이름이 바로 '극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초보 연인들은 왜 극장에 갈까?>라는 제목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이며 <극장전> 기사 공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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