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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저녁 남쪽 지방에 제법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방과 후에 남아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녀석들은 피할 생각도 안하고 막 뛰어다니다 야단을 맞고 플라타너스 옆 육상기구실 처마 밑으로 어슬렁거리며 오더군요.

우리도 저러했지요. 여름날 소나기가 내리면 우산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비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비의 싱그러움과 볼에 머리에 와 닿던 감촉이 그리워졌습니다.

비가 오면 이제는 우산이 없음을 걱정하고, 금방 세차한 차가 지저분해진다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아직도 남은 비는 조금씩 흩뿌리는 강마을에 핀 자주달개비꽃잎에 물방울이 맺히게 합니다.

창밖을 보니, 모심기를 위해 갈아둔 논에 물이 넘실거립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또 비가 내릴 모양입니다. 비가 온다고 와글와글 시끄럽게 울어대면 금세 바깥이 어둑신해지고 후두둑 나뭇잎에 비 듣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전, 이런 강마을을 사랑합니다. 노랑 꽃창포가 피고, 청보리 물결이 있는 이곳이 저에겐 고향 같습니다. 봄꽃보다 더 예쁜 아이들의 터지는 햇살 같은 웃음과 삐죽거리는 입술이 귀여운 여학생들의 종종거림도 귀엽습니다.

며칠 전 졸업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국어과 전교 1등을 하였다고 은근히 자랑을 섞어 안부를 물었습니다. 유난히 국어를 잘하던 그 녀석이 계속 공부를 잘한다니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찬우야, 니가 우리 학교에서 국어를 젤로 잘했는데, 니가 일등을 안 하모 샘이 섭섭하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마음도 부모 마음과 꼭 같습니다. 눈망울이 말똥말똥한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는 훗날 헌신적인 의사가 되면 좋겠고, 저 아인 분명 최고의 세일즈맨이 될 것 같고, 저 소녀는 다정한 간호사가 어울릴 것이란 꿈을 키웁니다. 아이들과 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자신이 못 다한 꿈을 아이들의 눈 속에서 찾고 싶어하지요. 때로는 이것 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반 반장 설영이 이야기를 합니다.

▲ 고사성어 시험을 치고 있는 강마을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
ⓒ 이선애
설영이는 이번 3학년 첫시험 때 참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밤을 새면서 공부를 하였습니다만, 성적이 별로였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니는 녀석 때문에 저도 신경이 쓰입니다. 축구할 때는 힘이 나서 펄펄 나는 녀석이 학과 공부는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성적표와 진학상담을 위한 조사표를 내어주고 부모님 도장을 받아오라고 했더니, 며칠째 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합니다. 녀석의 눈에 눈물이 그렁합니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만,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니 저도 야단조차 치지 못합니다.

사실, 설영이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설영이 역시 아버지를 설득하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잘 될 것 같습니다.

강마을에 햇살이 비칩니다. 비가 그친 모양입니다. 운동장 가 플라타너스 잎이 참 싱그럽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어느새 그쳤습니다. 대신 옆 교실에서 아이들의 책읽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푸른 유월 행복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조인스/까페/사이이버 독자위원회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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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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