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매화산의 신록, 나날이 현란한 녹색의 쇼를 평치고 있다
ⓒ 박도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 이백 <산중문답(山中問答)>


중국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은 "왜 산에 사느냐"는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우리 나라 민족시인 김소월은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라고 노래하였다.

산에서 사는 이는 그 무슨 즐거움이 있기에 산에서 살 것이다. 내 경우는 나날이 달라지는 산의 오묘한 빛깔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때문이다.

이따금 넘나드는 전재 고개를 지날 때마다 초록의 현란한 잔치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어떤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아마도 이런 황홀경 때문에 나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이 산마을에 살고 있을 것이다.

▲ 언저리의 올망 졸망한 산들이 한껏 초록에 물들고 있다
ⓒ 박도
올해는 잡다한 일 때문에 꽃구경 때를 놓쳤다. 이미 꽃이 다 진 줄 알았는데, 아내가 간밤에 수소문하여 알아두었다면서 뒤늦은 꽃구경 길에 나섰다.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에 있는 녹색농원으로 향했다. 지난 겨울 나는 그 댁 혼인잔치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였고, 신랑이 장모를 업은 사연과 그 장면을 담아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하는 신랑'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아내는 농번기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용히 꽃구경만 하고 돌아오고자 일부러 주인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았다.

초록의 현란한 쇼

녹색농원에는 울도 담도 없어서 곧장 과수밭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출타 중인지 삽살개가 부산을 떨며 맞았다. 일만여 평이나 되는 넓은 농원에는 배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반반에다가 사과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배꽃도 복숭아꽃도 막 절정을 넘기고 한창 꽃잎이 지고 있었다.

▲ 청순한 배꽃
ⓒ 박도
▲ 화사한 복숭아꽃
ⓒ 박도
배나무에서 복숭아나무로, 사과나무로, 옮아가면서 여태 남은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그제야 안주인 남광현(46)씨가 인기척을 듣고 나타났다. 바깥주인은 다른 곳에 일 나갔다고 했다. 사흘 전에만 왔어도 한창 흐드러지게 핀 꽃을 구경하였을 텐데 막 절정을 넘겼다면서, 주인은 막 꽃잎이 진 봉숭아 봉오리를 한창 솎아내고 있었다. 한 가지에 두세 봉오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꽃봉오리는 모두 떨어트렸다.

한 가지 한 가지를 부여잡고서 일일이 봉오리를 솎아 주는 주인을 보자 꽃구경하는 게 더 없이 미안했다. 나그네는 팔자 좋게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데 견주어 농사꾼에게는 처절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 과수원 주인이 꽃봉오리를 솎아내고 있다
ⓒ 박도
과수농사의 어려운 점을 묻자, 정작 농사보다 판로라고 했다. 한창 과수가 쏟아질 때는 조합에도 내지만 한 푼이라도 더 받고자 농원 앞 도로가에다가 농막을 지어서 직접 판매도 한다고 했다.

집안으로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대접하겠다는 걸, 시원한 샘물 한 바가지를 청하여 목 축인 뒤 선 걸음에 나섰다. 봉숭아와 배를 딸 때에 꼭 농원에 들려달라는 인사말을 뒤로 한 채, 나그네는 농원을 벗어나서 언저리 봄 경치에 취해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몇 번이나 세우고는 초록의 현란한 쇼를 마냥 즐겼다. 예보대로 날씨가 흐린 게 곧 비가 올 듯했다. 차머리를 횡성 장터로 돌려서 고추 호박 가지 모종을 산 뒤 전재 고개를 막 넘는데 반가운 봄비가 차창에 뿌렸다.

그동안 잔뜩 달구었던 대지를 식히며 아울러 메마른 땅도 촉촉이 적셔줄 단비다. 아마도 내일은 초록이 더욱 눈부실 것이다.

▲ 녹색농원 뒷산의 신록
ⓒ 박도
▲ 모내기철을 기다리는 모들
ⓒ 박도
▲ 전재 고개 언저리의 신록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