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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와 함께 서가에 서있는 서중석 교수.
ⓒ 조성일
그는 "사실과 진실이 밝혀져 반공독재 정권의 본질이 백일하에 폭로되면 우리 사회가 크게 변모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했다. 이 때문에 "현대사 연구가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이 '부분적으로는 틀린 판단이 아니'었지만 '천진'했다는 것을 알았다. "빛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드라큘라 백작처럼 '진실의 빛', '사실의 빛'이 두려운 극우세력이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자의적으로 왜곡한 반공·냉전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짓눌렀고, 모든 사회운동을 철저히 억압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과 사실을 들이대더라도, 마이동풍 격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종전의 억지주장을 되풀이하는" 수구·냉전세력의 당연한(?) 진실 회피는 그렇다치더라도, "지식인과 언론인, 학생 등 어느 계층보다도 지적 욕구에 목말라해야 할 사람들이 현대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그는 놀란다. "진보적 지식인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는 더욱 답답증을 느낀다.

'현대사'에 방점을 찍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누구인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 1호를 기록한 성균관대 서중석(58) 교수가 바로 그다.

서중석 교수는 최근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닷컴)라는 제목의 현대사 개설서를 냈다. 서중석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중·일 양심적 시민세력 연대 필요

"지금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나 독도 문제를, 너무 우리와 관련된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국적 차원에서 일본의 동아시아 역사관이 어떠한지를 살피고, 나아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3국 시민세력의 연대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일본의 양심적 시민세력들이 자기 나라 우익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이들은 우익의 발호를 좌절시키는 데 일정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때인지라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 한국 측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서중석 교수는 작금의 논란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특히 서 교수는 2001년 반대운동의 결과, 왜곡 교과서 채택률이 0.039%에 불과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동아시아 역사인식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짚어보기 위함이 아니기에 아쉽지만 책 출간 소감을 물으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지 1년이 다 되어서야 책이 나왔는데, 이제야 할 일을 일단락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60주년을 맞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현대사를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극우반공주의자들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품어봅니다."

이 책은 '우리 역사를 알고자 하는 중·고등학생이나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우리 역사를 생생한 시각 자료를 통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역사문제연구소가 기획, 집필하여 1993년에 내놓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로, 지난해에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와 짝을 이루며 10여 년의 장기기획에 마침표를 찍었다.

전문 연구자가 쓴 최초 현대사 개설서

▲ 한국 현대사를 자학사관에 빠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하는 서중석 교수.
ⓒ 조성일
전문 현대사 연구자가 쓴 최초의 개설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이 책은 1945년 해방에서부터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까지의 한국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1987년 민주대항쟁까지 본격적으로 다룬 셈이고, 이후는 간략하게 언급했다.

"정치사나 경제사에 치중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사가 가장 많긴 하지만 경제, 교육, 사회, 여성, 문학, 예술은 물론 대중문화까지 종합적으로 함께 기술해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마땅하게 추천할 현대사 개설서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이 책은 정확성에서만큼은 믿을 만하다는 신뢰감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편향된 시각을 피한다'와 '민중 중심의 역사 서술을 한다' 등 두 가지의 큰 원칙을 세웠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칫 "미군정의 잘못이나 이승만·박정희·신군부의 반공독재, 인권유린 행위" 등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자학사관'에 빠져 한국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십상인데, 최대한 객관적으로 공정히 기술하려고 노력하면서 특히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격동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는 쉼 없이 발전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해방이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수반했는지,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상당히 빠른 수준으로 보통선거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리고 교육의 확대로 한글세대가 대거 탄생하고, 또 토지개혁이 이루어져 1950년대에 1960~1980년대 경제발전의 초석이 놓였잖습니까."

서 교수는 "한국사회를 발전시킨 역동적인 힘"을 중시한다고 했다. 그 역동성의 기준은 평준화라고 그는 설명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신분차별이 심했던 한국 사회는 전쟁이 끝났을 때 놀라울 정도로 평준화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일제 강점은 전통사회, 특히 신분차별을 해체시켰습니다. 황족이나 고위 친일파, 지방 유림 등을 대우해주긴 했지만 한국인은 정치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경제권도 약했습니다. 돈 있고 벼슬해야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양반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죠."

또한 변혁적 노동자·농민운동, 청년운동,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평등사상이 급속히 전파되었고, 전쟁을 통해 사회적 평준화도 촉진되었다.

"물론 평준화가 사회적 권위의 부재와 문화 수준도 낮은 상황에서 급속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향평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부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뛰게 했습니다."

한국의 민중은 갑오농민전쟁이나 3·1운동에서처럼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지만 역사의 주체로서 자신의 시대를 만들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도 해방 이후에 나타났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4월혁명과 6월항쟁은 현대사 분수령

서중석 교수는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분수령이 된 사건으로 '4월혁명'과 '6월 민주항쟁'을 꼽았다.

"이 두 사건은 내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감격이었습니다. 이 두 항쟁은 정치사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유는 그렇게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항쟁을 통해 우리는 그나마 근대로 향하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반면 유신체제는 정치적으로만 질곡을 가져다준 사건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유신체제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고, 사회, 문화, 예술의 참신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 '4월혁명'과' 6월혁명' 이 일생일대의 감격이었다고 말하는 서중석 교수.
ⓒ 조성일
서 교수는 한국현대사의 흐름 중에서 1945년에서 1948년 사이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이나 1950년대 진보당 역할, 특히 조봉암의 활동, 4·19, 1971년 전후 시기, 광주항쟁, 1980년대 민주화 자주화 운동 등에 특히 의미부여를 했다.

1987년 민주대항쟁과 1988년부터 불기 시작한 북한 바로 알기 운동과 통일운동이 모두 세트를 이뤄 우리 현대사의 한 줄기를 이루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와 짝을 이루며 한국현대사의 전체를 구성한다고 볼 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남한현대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책제목이 '한국 현대사'로 정해진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러자 서 교수는 부적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북한'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여기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남한'을 쓸 수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며, 자칫 오해의 소지도 있을 것 같아 책제목은 전적으로 출판사에 맡겼다고 했다. 집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자신이 비전문가여서, '문화사 부분 서술'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처리 문제를 담당했던 바가 있기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또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냐고 주장했지만, 제주도를 보면 그건 순전히 기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고, 이젠 화합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입니다. 프랑스가 친나치세력을 처단할 때 사회가 맑아지고, 사회구성원의 연대와 형제 시민의식이 고양되었습니다. 사회의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정상적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억압적 위치에 있는 가해자는 소수자이기에 소수가 참회하는 것은 다수가 기쁨을 얻는 일이라며 친일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한국현대사의 큰 줄기는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했던 "모든 한국인은 단 두 가지만을 열망하고 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는 오직 한 가지만을 원했다. 자유"라는 말에 함축돼 있다며 서 교수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성장이데올로기와 박정희 신드롬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 이데올로기와 박정희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민주 사회 또는 화해 성숙된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노동이나 남북문제 등에 있어서 모든 논리가 가진 자나 기득권자 위주로 사고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서중석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의 머리 속에 이탈리아 역사가 크로체가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서중석 교수의 현대사에 대한 혜안이 크게 돋보이는 말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서중석 교수는 누구인가
현대사 박사학위 1호 기록한 역사학자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서중석 교수는 <한국근현대사 민족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1950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며 특히 조봉암, 여운형, 김규식 등을 높이 평가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중고교 시절부터 그는 한국 현대사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74년 반유신체제 운동을 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던 그는 동아일보사가 발행하는 월간 <신동아> 기자로 10여 년간 활동한다. 이때 그는 주로 농촌 관련 르포를 많이 쓰면서 현대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

역사학의 대중화를 내걸고 1986년에 만들어진 '역사문제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참여한 그는 현재 소장을 맡고 있고, 이 연구소에서 펴내는 계간지 <역사비평> 편집인도 맡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비롯하여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80년대 민중들의 삶과 투쟁>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조봉암과 1950년대> <신흥무관과 망명자>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 등이 있다. / 조성일 기자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판

서중석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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