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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달개비
자주달개비 ⓒ 이정남 화백 제공

아버지가 혹시 기적처럼 병마에서 자유롭게만 된다면, 정말 저 뇌종양이라는 질고에서 해방이 되기만 한다면 집안이 다시 반석 위에 서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 마음을 바꾸어 초희를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더더욱 목숨 걸고 기도를 했다.

25일. 그 날도 어제처럼 일찍 일어나 새벽예배를 보고 와서 아버지께 성경도 읽어드리고 복음성가도 들려드렸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에 오후 2시 신유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스피커를 통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도원내에 김철민씨라는 분이 계시면 사무실로 오셔서 전보를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전보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보통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전보를 치기 때문이었다. 혹시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할머니의 건강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할머니 일은 아니었다.

-초희가 많이 아픔 급히 오기 바람-

전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초희가 아프다니 그럴 리가 있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간 수척해지기는 했어도 병색은 전혀 없었는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꼭 누가 장난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한 줄기 불안한 마음은 없지 않아 있었다.

혹시 초희가 자살기도를?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그럴 리 없었다. 그렇게 가볍게 행동할 애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희의 집에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 라고. 무슨 일이 있었으면 벌써 노진이 이곳으로 전화를 했겠지. 분명히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래 노진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별 일 아닌 것이 분명해. 그렇다면 혹시 초희가 꾸민 일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까지 다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 시골에 전화를 해서 누나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재촉했다. 누나가 와야 내려가더라도 내려갈 수 있을 테니까. 몸이 무거운 아버지를 어머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을 못하셨기 때문이었다.

3일 후에 누나가 도착했다. 빨리 좀 올라오지 않고 왜 이제야 왔느냐는 나의 짜증 섞인 말에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그랬단다. 그래 할머니는 어떻게 했느냐는 말에 누나는 고모님을 오시라고 해서 좀 부탁하고 왔단다.

나는 아버지에 관한 모든 일을 누나에게 미루고 그 즉시 서울을 경유하여 대전으로 내려왔다. 대전역에 도착하자마자 노진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셨다.

노진을 좀 바꿔달라는 나의 말에 노진의 어머니는 초희가 병원에 입원하여 그곳에 가있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나는 그의 어머니가 알려 준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C대학부속병원으로 갔다. 물어 물어 중환자실 팻말이 보이는 곳으로 가자, 초희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는

"이 사람아, 초희가 얼마나 애타게 자넬 찾았는데 어디 갔다가 이제서야 나타났는가?"

그러면서 나의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다솜은 엄마가 울자 더 크게 울어 제쳤다. 전보는 다름 아닌 초희의 아버지가 보낸 것이었다. 나는 보호자 가운을 입고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초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머리는 칭칭 감은 붕대로 인해 하얀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듯했고, 산소 호흡기를 이용해 숨을 쉬고 있었으며 대여섯 개의 링거 줄이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나는 머리맡으로 한 발자국 옮겨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차마 떨어지는 않는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왔다. 초희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니 그녀는 현재 혼수상태란다. 그러나 뇌 손상이 생각보다 심해 이대로 점점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뇌사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혼수상태? 뇌사? 안 돼! 안 돼!! 그렇게는 안 돼!!!"

나는 남들이 듣든 말든 그렇게 소리쳤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노진에 의해 강제로 병원 밖으로 끌려나왔다.

"혼수상태라니, 뇌사상태가 될 수도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병원 현관문 앞에 나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노진이 이러지 말라며 나를 다시 일으켰다. 나는 일어나서 노진을 보자마자 한 방 날렸다. 녀석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야 이 자식아, 내가 그렇게도 신신당부를 했는데 너 그 동안 뭐 한 거야. 너 뭐 하는 놈이야.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초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냐 말야 임마!"
내가 그렇게 가시 돋친 소리로 공격을 퍼붓자, 녀석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미안해? 미안하다면 다야. 당장 초희를 원래대로 돌려 놔,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너 의대생 아냐? 의대생이라면서 그 정도도 못하냐? 그리고 너 왜 나에게 바로 연락 안 했어? 이런 일이 생겼으면 그 즉시 나에게 연락을 했어야 될 거 아냐 임마."

다시 내가 그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했지만 녀석은 그저 고개를 떨군 채 듣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하자, 그때서야 녀석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포천 기도원으로 떠나자, 초희는 전보다 더욱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를 하더란다. 노진이 말려 볼까도 했지만 오죽하면 저럴까 싶어 내버려두었단다. 또 의기소침하여 멍하니 있는 것보다 저렇게 시위에 참여하여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상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서 그냥 두었단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좋은 징조가 아닌가 그렇게도 생각했단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니 도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보이더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철야농성장에까지 나타나 행동을 함께 하더란다. 24일 밤에도 노진이 밤 9시가 넘었으니 그만 이제 일어나 가자고 설득을 했으나 요지부동이더란다.

"제 걱정 마시고 가려거든 노진씨 혼자 먼저 가세요."

그렇게 말하더란다. 노진은 그렇다고 초희를 강제로 끌어낼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었단다. 그렇게 밤 11시 30분이 넘어 시계가 자정으로 달려가고 있을 무렵, 농성장이었던 학생회관 3층 안으로 갑자기 경찰들이 급습을 했더란다.

물론 명목은 시위주동자를 검거하기 위함이었다. 농성장 안에 있던 학생들은 방심하고 있다가 너무 갑자기 당한 터라 어떻게 손써볼 수도 없고, 또한 대항해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줄행랑을 치기에 바빴단다.

빗물통을 타고 빠져나가는 학생들도 있었고 심지어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학생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단다. 노진은 얼른 초희의 손을 잡고 남문 쪽으로 달려 나갔단다. 그러나 이미 그곳은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어서 다시 서문 쪽으로 갔단다.

서문은 학생회관과 문과대 소강당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통로는 3층에 있는 것이 아니고 2층에 있었다. 노진은 그 통로를 이용하여 문과대 소강당 쪽으로 빠져나갈 요량으로 초희를 데리고 서문을 통과하고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내려갔단다.

그러나 2층에 내려가자 도망가려는 학생들로 인해 계단과 통로가 만원이었던 모양이다.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니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단다. 넘어져서 밟히고 다치고, 비명소리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단다. 노진은 이 와중에서 그만 초희의 손을 놓치고 말았단다.

덧붙이는 글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52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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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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