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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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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날아간 불화살의 첫사랑은 돌이킬 수도 멈출 수도 없고 단 한번에 열정을 불태우고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박힙니다.

첫사랑은 인생의 이정표나 등대 같은 불빛으로 남습니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되돌아보는 것은 인생의 참다움을 그때 그 순간에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은 마치 신적인 존재와 같아서 큰 힘을 갖습니다. 인생에는 꽃피운 사랑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많기에 첫사랑은 결혼과 실연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메아리로 살아 숨쉬게 됩니다.

누구나 첫사랑의 순간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지요. 생명과 맞바꾸고 싶었던 것이 첫사랑이라면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그 첫사랑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 생명의 이야기는 인간 존재의 슬픔과 외로움, 쓸쓸함과 적막함 때문에 애련의 그림자로 다가옵니다. 첫사랑, 그 가슴 뛰던 이야기와 더불어 애련의 적막을 풀어놓아 우리의 그늘진 가슴을 장마를 이긴 7월의 하늘처럼 맑고 밝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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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 깊이 묻힌 한의 응어리를 단숨에 깨는 비수와 같은 글이었다.

"이거 네가 쓴 글 맞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서진이가 거침없이 말했다.

"제가 직접 써보려고 했지만 워낙 글재주가 모자라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언니가 즐겨보는 작은 책자에서 따온 글입니다."

"어쨌든 무장해제. 완전히 꼼짝마라구나!"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2학년 5반 아이들과 첫 번째 시간이었나? 두 번째 시간이었나?

"선생님, 총각이시라면서요? 왜 그 나이 들도록 결혼 안 하셨어요? 혹시 못하신 것 아니에요? 선생님, 기다리신 김에 조금 더 기다리시면 안 될까요? 한 오 년 만 기다리시면 제가 대학교 졸업반, 그러면 제가 매일 아침 커피 끓여 드릴 의향 있는데…."

아이들의 빗발치는 질문 공세, 아니 집중 포격을 모면하기 위하여

"그래 좋아, 다음에 비가 와서 땅이 흠뻑 젖고 분위기가 커피향처럼 고동색일 때 지금껏 내가 혼자 사는 이유를 말해주지."

"그 이유가 뭔데요? 혹시 실연 당한 아픔에…."

"글쎄, 좋을 대로 생각하렴. 그런데 하나 걱정되는 게 있는데. 내가 만약 나의 가슴 아픈 첫사랑 얘기를 풀어놓으면 수재민이 엄청나게 발생할 텐데…."

"그건 왜요?

"왜기는 너희들의 눈물이 한강이 넘을 테고, 그러면 자연히 서울이 잠기는 거지."

"우--- 추워! 추워!"


이 녀석들이 영악하게도 그것을 기억해 내 미끼삼아 성화다 못해 협박이다.

"선생님, 여기 분위기 죽여주는 음악도 준비했고요, 야야 영숙아, 빨리 커피 가져 와. 이렇게 따끈한, 아니 뜨거운 커피도 대령했습니다. 이것, 이래봬도 자판기 커피 아니에요. 아침에 없는 시간 쪼개 서무실 언니한테 부탁해 정성스럽게 만든 원두커피라고요."

영숙이 받쳐들고 나타난 커피잔에서 아지랑이처럼 커피향이 피어올라 코끝을 간질인다.

"식기 전에 어서 드시와요!"

호순과 영숙이 떠밀다시피 한 커피잔을 받아들고 창가에 섰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가 싶으면 이내 봄비처럼 내리고, 그러고 보면 비도 안개, 는개, 이슬비, 가랑비, 여우비, 소나기, 장맛비 등 참 그 모습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기상대의 예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어제는 하루 종일 잿빛 하늘이더니 저녁 무렵부터 시작된 비는 밤중이 되자 제법 거세게 창문을 두들겼다.

몇 번이고 거듭되는 번개와 뇌성에 도저히 잠을 못 이루고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빗줄기를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여간해서는 피지 않는 담배까지 피워 물고서ㅡ 그래 장마철만 시작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매일 매일 깎아도 깎아도 피부를 뚫고 솟아나는 수염처럼, 여름만 되면 재발하는 무좀균처럼 이제는 잊혀졌나 싶다가도 비만 오면 생각나는 나의 유일한 여인 초희, 가슴속 깊이깊이 묻어두어 한으로 응어리진, 딱딱하게 굳어 돌이 된 이야기를 언젠가 누구에겐가는 꺼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하필 제자들일까. 이것은 또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아니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저 초롱초롱한 눈동자, 저 순결한 영혼들에게 나의 아픈 가슴을 드러내 보이자.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하듯이, 그러나 어쩐지 자꾸만 망설여진다.

커피를 한 모금 물었다. 갑자기 커피맛이 소태를 씹은 듯 쓰게 느껴진다. 왜일까? 꼭 벗겨지는 양파처럼 알몸으로, 또는 갈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되어 아이들 앞에 서있는 것만 같다.


그래 지금부터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되는 것이다.

아홉 살 때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체를 끝내 잊지 못하고 스물 넷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그녀를 <신곡>으로 부활시켜 작품 속에서나마 영생하도록 한 단테,

16년 동안 쌓아올린 애틋한 사랑탑을 그냥 가슴속에 묻어두지 아니하고 42세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3년이라는 긴 광음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완성하자마자 이내 숨을 거둔 단테, 나도 단테처럼 그녀를 문학으로나마 돌올하게 살려내고 그녀 곁으로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환청처럼 음악이 흘러 들어온다.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

- 2회차에서 계속됩니다 -

소설 <라일락 꽃그늘 아래> 연재를 열며

먼저 제 소설을 연재할 수 있는 글마당을 마련해주신 <오마이뉴스>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부터 제가 연재하고자 하는 소설은 첫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입니다.

여자는 첫사랑을 잊어도 남자는 첫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속 깊이 묻어둔 채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가 그렇고 제가 아는 남자들의 경우 대개가 그렇습니다. 잊었다고,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현듯 무의식중에, 또는 꿈에 보이는 첫사랑의 여인….

어디다 내놓고 말도 못하고, 행여 들킬까 싶어 죄인처럼 가슴 밑바닥에 숨겨놓고 살아가는 것이 한국 남자들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술 한 잔 먹거나 속절없이 내리는 빗속에 서있거나 낙엽지는 소리를 들으면 떠오르는 옛사랑의 추억!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첫사랑을 소재로 한 감성소설로, 사랑 때문에 속 태우고 가슴앓이 하는 남성의 입장에서 풀어본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어둡고 춥고 그늘졌던 1980년대, 그 암울한 시대에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대학시절과 꽃다운 청춘을 보내야 했던 386세대, 그들의 눈물겹도록 슬픈 사랑! 또는 거룩하도록 아름다움 사랑이야기!

다시 말해, 80년대 자유와 민주와 통일을 뜨겁게 열망하던 대학캠퍼스를 배경으로, 첫사랑 얘기를 풀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고교시절 바람처럼 스친 인연, 그로 인해 대학에서 다시 만난 두 주인공(철민과 초희)은 어렵게 사랑의 꽃을 피우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시련과 역경 또한 계속됩니다.

철민과 초희, 두 사람은 서로 진실로 사랑하여 장래까지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되었지만, 그러나 곧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성동본이라는 점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양가에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습니다.

철민과 초희, 두 사람이 헤어진 진정한 이유는 서로를 너무나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어쩌면 목숨까지도 담보해야하는 그런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어두운 시대 현실 속에서 인권목사의 푸른 꿈을 키우는 철민!

민주화 운동을 위해 자기가 겪는 고초야 감내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까지 차마 고생시킬 수는 없다는 판단아래 사랑하는 여인 초희의 행복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떠나보내는 철민! 그것이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에…….

그러나 뜻하지 않은 초희의 의문의 죽음!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자책 아닌 자책으로 마흔이 가깝도록 가정을 이루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노총각 철민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용이 다소 무거워질 수 있다싶어 작품 중간중간에 시(詩)와 가요(歌謠), 편지 등을 감초처럼 섞어가며 최대한 서정적으로 써보려고 애썼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파격일 수도 있겠지요.

또한 동성동본, 종교, 시대 문제 등을 80년대 현실에 걸맞게 자연스럽게 풀어가려고 애썼고, 그리고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하게 하기 위해 철민, 한철, 노진 3총사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우정 및 애정관계를 구축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80년대의 향수에 젖어들 것이고, 동성동본의 부당함을 알게 될 것이고,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요즈음 보기 드문 두 주인공의 아름다운 순애보에 가슴이 찡해지리라 사료됩니다.

그럼,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면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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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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