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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타고 언덕에서 바라본 튀니스 만
ⓒ 함정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사하라 사막 투어를 하지 못한 점이다. 젊은 배낭 족도 아니고 평소 멀미란 멀미는 가리지 않고 하는(차멀미, 배 멀미, 비행기 멀미, 이번엔 낙타 멀미?) 아내를 생각할 때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사하라 사막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다.

유럽의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면 사막투어를 즐긴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스타워즈>가 튀니지아 사막지대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남부 사하라 사막까지 가는 것은 다음 기회(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로 미루고 튀니스로 가기로 했다.

버스터미널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열심히 설명했는데도 역시나 밴 정류소로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종이를 꺼내 큰 자동차와 작은 자동차를 그리고는 작은 자동차에 가위표를 하고 큰 자동차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제야 활짝 웃으며 "신트리"하더니 버스터미널로 갔다.

튀니스는 4개 노선의 매트로(지상철)와 1개의 교외선(TGM) 철도를 가지고 있다. 페니키아 인이 건설한 고대도시 카르타고를 찾아가는 방법은 교외선 열차를 타야 한다.

▲ 튀니스 매트로(지상철)
ⓒ 함정도
아침 일찍 튀니스의 호텔에서 나와 기차역으로 갔다. 거리는 활기차고 붐볐다. 여성들은 꼭 맞는 청바지와 재킷을 입은 세련된 멋쟁이들이었다. 깊은 눈매와 늘씬한 몸매는 정말 예뻤다. 엉뚱한 얘기지만 이렇게 미인들이니 남자들이 불안해서 히잡을 씌운 게 아닐까 싶다. 기차 안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서구의 어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남녀 모두 자유스럽고 활발해 보였다. 가끔 간단한 스카프 정도만 쓴 여성들도 보였다.

▲ 튀니스 교외선(TGM) 카르타고 한니발 역
ⓒ 함정도
역 이름도 '카르타고 한니발'이다. 역에서 내려 언덕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이 지역은 고급 주택지인지 넓고 깨끗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비르사 언덕'(Byrsa Hill)은 로만 카르타고의 유적지이다. 커다란 성당도 있는데 굳게 닫혀 있었다.

▲ 카르타고 비르사 언덕에 위치한 박물관과 성당
ⓒ 함정도
이 언덕에 국립 카르타고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모자이크는 로마 예술의 진수를 보는 듯 정교하다.

▲ 카르타고 유적지
ⓒ 함정도
카르타고를 포위한 로마 군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주민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만들었지만 지중해 해상 중심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다시 도시를 건설하였다. 로마인의 도시는 철저한 계획도시로 유명하다. 언덕 위에는 공공건물을 짓고 아래쪽은 주택지, 그 아래는 조선소와 항만을 멋지게 건설했다. 지금도 바닷가는 그 항만의 모습이 남아 있다.

유적지 주변을 걸으면서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밝은 햇살 아래 아름다운 전경, 이름 모를 풀꽃들, 마침내 내가 바라던 그 곳, 한니발의 도시에 온 것이다. 폐허의 돌기둥을 쓰다듬어도 감격스럽다.

▲ 로마식 수로
ⓒ 함정도

▲ 로마식 극장
ⓒ 함정도
가는 길에 땅 위에 높이 솟은 수도교를 보았다. 로마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바로 수로이다. 근처에 물이 있는데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저수지에서 돌로 된 관을 통해 계속 흐르도록 하여 도시까지 깨끗한 물을 끌어들이는 기술은 놀라웠다.

물이 계속 흐를 수 있는 일정한 경사를 유지하기 위하여 낮은 곳에서는 다리를 놓고 산지에서는 터널을 뚫었다고 한다. 극장 터는 원형이 많이 남아 있고 계속 보수를 하여 지금도 일 년에 몇 차례씩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 로마인 거주지 유적
ⓒ 함정도
튀니스만이 내려다보는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로만 빌리지는 부자들의 별장 터이다.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도 대통령궁, 대사관 등 고급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 고대 원형 선착장에서 바라본 카르타고 언덕
ⓒ 함정도
작은 연못과 도랑처럼 보이는 곳이 사실은 고대의 커다란 원형 선착장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아저씨가 갑자기 카르타고 시대 고대 주화라고 하면서 진짜라고 하면서 사라고 했다. 언뜻 봐도 가짜 같던데 뭘.

▲ 토펫(Tophet)신전
ⓒ 함정도
토펫(Tophet) 신전은 특이하고 으스스한 장소였다. 고대 풍습인 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치던 토굴들과 기이한 모양의 석상들이 많이 있었다. 성경이나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자식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여기서 이루어졌다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앉아 쉬던 한 총각이 우리에게 "자파니"하고 불렀다. 대답이 없으니 또 "차이니"했다. 정말 지겹게도 듣던 소리다. 귀찮기도 해서 "노, 코리안"했더니 갑자기 영어로 마구 떠들었다. 자기는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에 월드컵대회를 개최한 한국을 잘 안다고 아주 반가워했다.

그는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며 우리 부부에게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우리의 태권도가 이토록 대단할 줄이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면서 해외의 모든 태권도 지도자들이 고맙게 생각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고급스런 레스토랑에 앉았다. 종업원이 다가와 생선을 보여준다. 지중해의 생선은 딱 두 가지, 푸른 생선과 붉은 생선뿐이다. 생선을 고르면 무게를 달아서 가격을 적어온다. "오케이"하면 끝이다.

조리법은 오로지 오븐에 굽는 방법뿐 다른 주문은 필요 없다. 오랜만에 서빙을 받아 가며 우아한 식사를 했다. 나는 밥도 없이 반찬만 먹는 기분인데 아내는 즐거운 표정이다. 유럽에 가면 길거리 샌드위치 수준이 될 걸 생각하면 이만한 식사는 분에 넘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관심을 나타내며 영어로 인사를 한다. 여기서는 영어조차 반가운지라(?) 우리도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신을 '폴'이라고 소개하며 소수 1%에 속하는 기독교도(로만 카톨릭)인데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영어를 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묵는 호텔 옆의 큰 성당에 다닌다고 했다. 우리도 기독교도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한다.

한국은 불교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기독교도가 있다니 소수의 공감대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이게 아닌데.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과 소수가 아니라고 설명해도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았다. 자꾸 주위를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갑자기 아내에게 물었다.

"결혼하신 것 같은데 왜 반지가 없으세요?"
"예? 아 예, 여행 중이라 귀찮아서 안 해요."
"그럼, 집에는 반지가 있어요?"
"아, 예. 집에 많이 있어요."(아내는 액서사리를 좋아한다)
"금으로 된 반지인가요?"
"예? 예."

그러고 보니 이곳 여성들은 반지를 좋아하는지 몇 개씩 끼고 있다. 게다가 팔찌도 주렁주렁 겹쳐서 착용한다. 예사로 보았는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나 보다. 마치 70년대의 우리 사회처럼. 역에서 내리자 '폴'은 아쉬워하며 몇 번이나 손을 잡아 주었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1월 3일부터 19일까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몰타를 호텔팩으로 다녀온 부부 배낭여행기 입니다. 이글은 안락답사회 홈페이지(http://hamjungdotour.netia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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