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차창을 열어놓자 밖에서 거센 바람이 안으로 몰려들었다. 우웅- 하는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비가 막 그친 뒤라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끈적끈적하게 피부에 감겨왔다. 택시 기사는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차창을 닫아달라고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채유정은 허리를 곧추 세운 채 옆을 돌아보았다. 김 경장이 연신 긴장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앉아 있었다. 작은 콧등에 땀이 맺혀 있고, 얼굴엔 그늘이 드리운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경찰서에 갔던 분이 왜 저를 따라 오신 거죠?"

김 경장은 대답 대신 앞에 앉은 택시 기사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채유정 옆으로 바투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을 살해한 범인이 잡혔다고 합니다."

"정말이에요?"

김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공안이 잡았다는 사람은 범인이 아니에요. 이번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해 일부러 만든 범인이 분명해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공안은 있지도 않은 현장의 지문을 조작해냈어요. 범인이라고 잡아온 자 또한 동네 우범자였어요. 박사님이 살해된 이유를 단순한 강도사건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 모든 게 박사님이 숨겨둔 유물과 관련되어 있다 말이죠?"

"그렇소. 그들은 나까지 쫓아내려고 하더군요. 전 강제 출국되어 출국장까지 끌려갔었죠."

채유정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 나오신 거죠?"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트랩을 실은 트럭에 올라탔죠."

"트랩을 모는 기사가 있을 거 아니에요?"

김 경장은 엄지와 검지를 말아 올려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이걸 좀 이용했죠. 그러니 군말 않고 절 태워주더군요."

"그럼 지금쯤 공안기관에서 난리가 났을 거예요. 출입국 사무소에서 연락이 갔다면 시내에 김 경장님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그래서 댁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북릉까지 몰래 따라 갔던 거였소."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거죠?"

"우선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공안에게 잡히더라도 여기 감옥에 가는 걸 피할 수 있어요."

"그럼 박사님이 숨겨둔 유물은요?"

"물론 그것도 찾아야겠죠. 어쩜 그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 몰라요. 그들이 박사님을 살해한 이유도 그 유물을 찾기 위해서잖아요. 범인을 쫓다보면 그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죠."

"우선 지낼 곳부터 구해야죠. 제가 있는 곳도 위험해요."

"그래야겠죠."

김 경장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제 공안의 눈길을 피하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박사를 죽인 살인범과, 그가 목숨을 걸고 숨겨놓은 유물을 찾는 일. 이 두 가지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심양시 일원에서는 자신을 찾기 위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공안을 동원하여 수배가 내려졌을 것이고, 한국에도 연락이 가 자신을 찾기 위해 사람을 보낼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경찰 신분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도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잠시 그런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기왕 여기까지 달려온 그였다. 어떤 식으로든지 결말을 보고 싶었다.

김 경장의 얼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수많은 갈래의 표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불안과 당혹스러움으로 뒤범벅이 되어 동요되고 있었으나,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본래의 냉정한 모습을 되찾았다.

잠시 차창 밖을 살피던 김 경장이 문득 운전석을 향해 외쳤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택시가 도로가에 멈추어 서자 김 경장이 먼저 내렸고, 채유정도 따라서 내렸다. 그는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댁은 지금 경찰서로 좀 가주셔야겠어요."

"경찰서에요?"

"그렇소. 경찰서에 가서 박사를 살해했다는 범인의 신원을 알아내야 합니다. 살인자라는 그자는 분명 누군가의 지시로 죄를 뒤집어썼을 겁니다. 그 자의 뒤를 캐다보면 박사님을 죽인 진짜 범인과도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동안 몸을 피하셔야 되지 않겠어요?"

"아니오. 난 지금 요녕 대학교로 갈 것입니다."

"요녕 대학엔 무슨 일로……."

"우선 그 피라미드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피라미드를 만든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문화를 알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박사님이 숨겨둔 유물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가 우리 대학의 박물관에 전화를 넣어 둘게요. 저의 부탁이라면 박물관의 유물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