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잘 아시다시피 리플은 “대답하다, 대응하다”는 영어 단어 ‘리플라이(Reply)’에서 왔습니다. ‘댓글’ ‘꼬리말’ ‘덧글’과 같은 우리말로 부르기도 합니다. 자세하게 구분하시는 분도 있지만 어쨌든 인터넷에 게시된 글이나 사진 등의 콘텐츠에 자신의 의견을 다는 것입니다.

리플 문화(reply culture)는 백과사전에도''인터넷 게시판 이용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글쓰기 문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리플 문화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인터넷 문화 현상이죠. 처음에는 길게 글을 달았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지르는 것이 특징입니다.

리플문화는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만들어진 것인데 처음에는 언론미디어나 공공기관의 사이트에 네티즌들이 응수의 글을 다는 형태였습니다. 일정한 매체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대응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리플은 다른 거대한 조직이나 기관이 아닌 바로 우리들에게 답니다. 누구나 미디어를 인터넷에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인 미디어 시대라는 말이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블로그, 미니 홈피 등이 대표적인 1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공간을 통해 내용물을 만들거나 재가공하는 작업이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순한 콘텐츠의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생산자이자 소비하는 존재, 프로슈머인 것이죠. 프로슈머(prosumer)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말입니다.

그런데 힘들게 생산한, 공들여 만들어 낸 플래시, 디지털사진, 합성사진,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헛일이죠.

1인 미디어 문화에는 누군가 나의 글과 생각을 보아주었으면 하는 심리, 인정-동의 받고 싶은 심리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실공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동의 받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게시물을 통해 리플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겠죠. 또한 리플을 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리플은 주고받는 것이고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통해 나름대로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역할 혹은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리플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는 리플족도 생겨나고 있는데요, 이러한 사람들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리플을 달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습관적으로 리플을 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폐인문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스타들을 향해 리플을 달면서 하루를 보내는 폐인족, 이들도 리플족의 일족이죠.

이러한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리플증후군을 보일 가능성이 많은데요, 리플을 달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왠지 불안해지는 마음상태를 이릅니다. 또한 자신이 올린 글이나 사진, 작품에 리플이 달리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가 작용하면 악플 보다 너 나쁜 것은 무플이 됩니다. 아무런 리플이 없으면 그 처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리플이 많이 달릴수록 호응이 높고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걸 뜻하기에 사람들은 그냥 기다리지 않고 있습니다. 리플을 달아달라고 따로 나서서 호소하는 것이죠.

"이제 리플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어요.", "달라고 구걸해야 합니다. 기브미! Give Me!" 라는 구호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개 이미지를 통해 호소하게 되는데요, 이때 사용되는 이미지를 ‘리플 요청 이미지’라고 합니다. 애원형, 애교형, 막무가내형, 유혹형, 위협-위협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애원형에서는 소녀가 울부짖듯 '리플하나 다는 게 그리 어려워!!'라고 말하면서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애교형은 영화 <어린 신부>에 출연한 문근영의 애교 넘치는 사진에 '리플을 남겨 달라'는 말을 곁들인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막무가내형은 '리플 남기랬잖아'라며 무작정 때리거나 떼쓰는 이미지를 주로 씁니다.

유혹형은 예쁜 소녀나 귀여운 남성을 그려놓고 '리플 달아 줄 거지'라고 써놓습니다. 또 유혹형에 속하는 것은 레이싱걸과 애기인데요, 레이싱걸이 애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등장시키고는 '리플 달고 가는 사람만 꼭 안아 준다'라는 말을 썼죠. 여기에 기괴스러운 그림이나 이미지를 이용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협박형-위협형이 있습니다.

'리플송'도 있는데요.' 오고가는 리플 속에 싹트는 우정', '손가락 부러졌냐? 리플 쓰고 가면 누가 잡아 가냐고', '너의 리플 하나면 감동이 만땅' 등의 가사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드라마의 명대사를 이용하기도 하는데요, 드라마 <다모>의 한 장면을 이용해 '리플이 필요하냐, 나도 그러하다' 원래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이죠. 영화의 명대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주인공 송강호가 용의자에게 말을 건네는 말, '밥은 먹고 다니냐??' 말이 '리플은 달고 다니냐'로 바뀌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에서 따오기도 하는데요, "관습법에 따르면 리플 안 남기는 건 위헌" 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호소하고 구걸하는데 달아주면 참 좋으련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들에 공격하는 이들이 있죠, 악플을 다는 '악플러'들입니다. “리플 요청 이미지”에 대응해 악플러들이 사용하는 악플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악플러들이 하나하나 악플을 달기 힘드니 한번에 링크시켜 놓는 것이죠. 대개 좋지 않은, 혐오스런 이미지들입니다.

왜 이런 리플문화가 한국에서 유독 활발한 것일까요? 이는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주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야기들을 한번 살펴보면요, 일반적으로 토론문화가 없는 한국사회 풍토 탓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문화의 부재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없는 닫힌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닫힌 사회의 성격에 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생각들을 실험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매체에 사람들이 목말라 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표현하는 존재이고 싶어 했음에도 그것을 적절하게 활성화 시키지 못한 게 한국 사회라는 것입니다. 이때 인터넷이 등장했다는 것이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공유하면서 쌍방향 소통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리플 달기는 그냥 재밌게 노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재밌는 내용을 쓰고 남이 쓴 것을 보기 위해서 리플분위기에 뛰어든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1등 놀이가 있습니다. 리플을 제일 먼저 달려는 고전적인 놀이인 1등 놀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넓은 운동장에 첫발자국을 찍는 맛과 비교할 만하다는 것이죠. 또 농담 따먹기나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터넷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원리는 “이성”이나 “합리”가 아니라 놀이성이라는 지적을 생각해보면 타당한 면입니다. 로제 카이와나 호이징하가 지적하듯이 우리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니까요.

이쯤에서 리플문화를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 긍정성과 부정성을 잠깐 보죠. 일종의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라는 관점의 갈림입니다.

단연 좋은 점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홍윤기 교수는 이를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한 개의 글이나 사진을 두고 여러 가지 잘 한 점,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 때문에 보완이 되어서 처음에는 조악하지만 차츰 훌륭한 작품처럼 변하게 된다는 것이죠.

한편으로 만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리플을 다는 사람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게 합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블로그와 홈피를 넘나들다보면 좋은 인연을 만들 수도 있고 사람들의 생각을 다양하게 호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리플 자체가 큰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회 변화와 밀접해왔습니다. 이는 주로 사화와 닫힌 매체다 아니라 접해 있는 매체에서 두드러집니다.

여기에서 '리플 저널리즘'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현안을 다룬 인터넷 신문기사에는 수많은 리플들이 달립니다. 이러한 리플들에는 기사에서 부족한 부분, 촌철살인의 비판이나 전문가 못지않은 제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리플들이 모여 하나의 언론, 저널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또한 리플이 많은 것 자체가 여론의 방향이나 기준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리플이 많을수록 언론들이나 방송이 주목을 하고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리플들의 위력에 기자들의 기사 작성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각 사이트의 리플들을 보면서 기사를 작성하고 아이템을 얻습니다. 오히려 심지어는 언론매체들이 리플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죠.

아쉬운 것은 "리플저널리즘"이라고 규정할 만큼 체계적인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리플달기의 단점도 있겠지요.

대개 리플은 한두 줄입니다. 한두 줄의 짧은 글인지라 해석상 오해를 빚어 서로를 비난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인지 너무 쉽게 글을 뱉어내는 것도 문제죠. 이렇게 쉽게 뱉은 내용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이야기가 나왔으니 리플의 가장 단점인 쓰레기 리플, 악플을 말해야겠습니다.

‘탈억제 현상(disinhibition phenomena)’ 이 일어나 못할 말, 할 말다하는데요.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방하는 리플, 심지어 무분별한 욕설과 저주의 스팸 메일성 리플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단순히 욕과 비난이 아니라 사이버 폭력인 셈입니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서 폭력을 휘두르고 그것에서 재미, 즉 가학성 쾌락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즐거운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잊고는 합니다.

작년 5월 26일에는 인신 공격성 비방에 괴로워하던 한 네티즌이 투신자살하는 극단적인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촌철살인의 글이나 재미있는 내용을 볼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논리나 기승전결의 글보다는 단편적인 논리나 사고, 감각적인 글만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과연 인터넷 리플이 쌍방성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직접 토론하는데 익숙한 게 아니라 인터넷 공간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만 익숙하게 하는 점입니다.

또한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상호소통이라기 보다는 또 하나의 폐쇄회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끼리끼리만 리플을 달고 노니까요.

공동체보다는 개인으로 집중하도록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대학가와 리플문화의 예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80-90년대까지 대학하면 대자보 문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자보는 그야말로 세상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나와 세상, 세상과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런데 이러한 대자보 문화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학교컴퓨터실이나 노트북, 학교 피시방에서 들어가 미니 홈피 이야기를 하고 리플 달기 놀이를 합니다.

"어제 졸라 예쁜 사진 올려놓았는데 글 좀 달아라" 라는 식이죠.

어찌 되었든 리플문화의 위력은 매우 커서 단지 문화적 풍속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리플이 상품이 되고 마케팅의 대상이 된 지도 오래입니다. 이제는 리플문화가 문화가 아니라 어떻게 상품의 대상이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각종 인터넷 게시물에서 인기를 가늠하는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많이 보았는가 하는 조회 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얼마나 많은 리플이 달려 있는가가 중요한 기준입니다. 리플이 많이 달린 게시물일수록 사람들의 눈을 그만큼 많이 잡아끌고 있고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디시인사이드의 경우에는 네티즌들의 리플로 조그마한 회사가 거대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성공한 디지털 벤처 회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지요. 사이트에 올려진 다양한 네티즌들의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리플 반응이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반응을 보이는 매체는 그만큼 광고가 많이 붙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얼짱”이라 불리는 이들이 연예계에 진출한 일이 있습니다. 얼짱 출신 연예인이죠.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주위에 있는 예쁜 사람들을 사진을 올리고 네티즌들이 이를 평가하면 기획사에서 심사를 해서 데려가는 것이죠.

그동안 포털에는 악플이 많아서 리플제도를 폐지하라는 비판이 많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연예관련 기사에 심각한데요, 팬클럽을 중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는 호의, 자신의 스타와 경쟁하는 연예인이나 싫어하는 스타에게는 공격이 가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리플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이유는 로그인과 페이지 뷰의 증가를 통해 광고 단가를 올리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리플을 조작하는 알바생 논란이 있게 됩니다.

빙송에서도 리플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는 '리플을 달아주세요' 라는 꼭지를 운영해왔는데요, 일정한 말을 하나 주고 그것에 응대하는 재치 있고 감동적인 리플들을 재밌게 소개하는 것이지요.

<상상플러스>의 ‘리플 하우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난감한 상황, 매주 주어지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 시청자들의 지혜롭고 기상천외한 리플을 받아서 상상팀과 플러스팀이 대결을 벌이는 한편, 최고의 리플은 방청객의 실시간 현장점수에 따라 선정됩니다.

<웃찾사>는 작년 말 ‘내가 웃찾사 공연에 꼭 가야하는 이유’를 제출한 네티즌을 대상으로 공연관람권을 주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비단 방송만이 아니라 요즘에는 일반 기업체에서도 인터넷의 리플을 받아서 이벤트를 만드는 경우기 많습니다. 좋은 리플을 올려주면 상품을 주는 리플 마케팅이 한 흐름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리플을 유도해서 자신들의 상품이나 기업홍보를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리플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리플문화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이고자 하는 마음에 우리의 자화상이 비치네요. 상대방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일탈과 가학성 쾌락의 수단이거나 마케팅의 대상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 혼자만의 안온함이나 자신이나 자신의 일족만을 위한 폐쇄왕국을 만드는 것은 더욱 자신을 고립시킬 것입니다.

리플의 공간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려진 공간으로, 그러나 열려져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독립적 공간이라는 복합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는 공간이자 저널리즘의 매개체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 삶의 향기, 우리의 한과 고민이 드러납니다. 리플은 많은 점들을 가능성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겠습니다. 그 속에서 조금씩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EBS <한영애의 문화 한페이지>에서 말한 것을 수정한 것으로 gonews에도 보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무 의미없는 자연에서 의미있는 일을 위하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