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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여 있는 굴 껍질
ⓒ 김준

고흥은 동쪽으로 순천만과 여자만 그리고 해창만이, 서쪽으로는 득량만이, 남쪽으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낀 남해가 안고 있다. 이곳 특산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유자와 굴을 꼽는다. 특히 고흥 굴은 나로도, 오도, 취도 등을 둘러싼 해창만에서 많이 양식하고 있다.

해창만은 광양만과 함께 일제 강점기부터 석화양식이 시도되었던 지역이다. 해창만 간척사업으로 많은 갯벌이 논으로 변해버렸지만 지금도 남성리, 오취리, 상오리, 사도리 등 어촌마을 앞에는 알맹이를 까고 쌓아둔 굴 껍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 굴 껍질은 석회비료로 활용된다.
ⓒ 김준

"대통령도 고흥 남성리 굴이단다 그러면 먹는다요"

굴을 까는 남성리 아낙과 이야기 도중에 나온 말이다. 그 아낙은 딸만 아홉이란다. 옆에서 굴을 날라주던 남자가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그 아줌마 미스코리아요. 잘 박아 줄쇼."

사진 한 장 잘 찍어달라는 말이다. 말끝에 이어진 말이 딸만 아홉이라고 일어준다. 기술이 부족해서 딸만 낳았다고 한술 거들었다. 딸을 가진 필자가 ‘기술이 좋아야 딸을 낳죠’라며 대응을 했더니. 지금이야 다 검사하니까 그렇지만 옛날 생긴 대로 낳을 때는 딸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옆에서 굴만 까며 듣고 있던 할머니가 고흥 굴 자랑으로 말싸움을 막고 나섰다. 고흥굴은 전국에서 다 알아주는 굴이라고 한다. 서울에서도 다른 굴보다 가격을 더 받는다. 광주의 대표적인 수산물 시장인 ‘남광주시장’의 굴도 상인들은 고흥 굴이라고 팔고 있다. 다른 데 굴도 고흥굴이라고 해야 잘 팔린다는 것이다. 어디 굴에 고흥 굴이라고 상표가 붙었으랴마는 그래도 소비자들에게는 고흥 굴이라고 해야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키로에 만안(만원)이 넘었었어. 만2천원까지 갔어. 지금은 반값이그만."

"광주에서나 서울에서나 고흥군 포두면 남성리 굴은 대통령도 알아준 굴이요."

"대통령도 남성굴이단다 그러면 먹는다요. 광주시장에서 고흥굴이요 고흥굴이요 하고 판디. 고흥에서 왔다 그러면 다 알아줘."

도대체 고흥굴이 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일까. 그 답도 주민들이 직접 해주었다. 우선 갯벌이 좋고 청정해역은 굴 생산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고흥 굴은 바다에서 2년 정도 자란 것을 시장에 내놓는다. 너무 어리지도 않고, 너무 늙지도 않는 먹기에 적당한 굴이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면, 돼지로 말하면 100kg 미만 흑돼지에 해당하는 것이란다. 껍질도 얇고 먹기 알맞게 통통한 것이 고흥 굴의 특징이다. 굴이 크고 나이가 먹은(몇 년 자란) 굴들 중에는 공장의 가공용으로 양식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요건 남해안에만 돼. 충무, 남해, 여수, 고흥 해안으로 해가지고 아무 간대나 되간디."

"충무, 남해 저런 대는 오래 한 것이고. 요렇게 자연산도 있지만 나이 먹은 것도 많고 공장용으로. 고기로 말하면 애저제 돼지 100근 미만짜리 흑돼지."

▲ 마늘 밭에서 일하는 어민
ⓒ 김준

마을 논보다 비싼 바지락 밭

굴양식은 크게 투석식과 수하식으로 구분된다. 투석식은 갯벌에 돌을 집어넣어 돌에 부착된 굴을 조새를 이용해서 까지만, 수하식은 갯벌이나 바다에 지주나 부표를 띄워 포자가 붙은 패각을 매달아 양식을 한다.

투석식은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 직접 갯벌에 나가 굴을 까지만 수하식은 매달린 굴을 줄 채로 베어와 육지에 지어놓은 하우스나 막 안에서 깐다. 대체로 투석식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양식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하식은 개인이 자본을 투자해 시설해서 양식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리의 경우에 5가구가 수하식 굴양식을 하고 있다. 남성리에는 굴양식을 하는 집이 모두 5가구 있다. 이들은 적게는 20-30줄에서 많게는 200-300줄의 굴양식을 하고 있다. 줄의 길이가 100m에 달하며 각 줄에는 굴이 매달려 있다.

▲ 파래가 덮힌 양식장
ⓒ 김준
남성리 갯벌은 바지락 양식장과 굴 양식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굴양식장은 물이 빠져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깊은 쪽에 위치하며, 바지락 양식장은 육지와 접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굴 작업이 끝나는 봄철과 가을철에 바지락 채취를 하는데 호(戶) 별로 양식장이 논처럼 구분되어 있다.

바지락 양식장은 마을 앞 논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렇다고 언제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파래가 파랗게 바지락 밭을 덮고 있지만 날씨가 풀리고 사람들 입맛이 돌기 시작하면 굴을 까기 위해 모였던 아낙들은 모두 널배를 끌고 바지락 밭으로 모일 것이다.

"바지락 밭도 주인 있어요. 많이 한 사람, 작게 한 사람, 그때는 맘대로 했제, 게을러 가지고 이녁 것은 적제. 지금을 하고 싶어도 못 하제. 바닥이 없어. 돈만 주면 사면 되제. 여기 바닥 살라면 논값보다 더 비싸제. 하루에 10만원도 넘게 나오는디. 500평만 있으면 대학생 하나 가르친디."

▲ 바지락 밭에서 일하는 어민
ⓒ 김준

아기 낳은 것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굴 농사

굴양식은 크게 굴껍질을 엮어서 어린 유생 즉 포자를 받는 채묘, 채묘된 유생을 햇볕에 노출시켜 단련시키는 단계, 포자가 잘 붙은 것을 선별, 양식, 수확 등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은 공장(채묘장)에서 가지고 와서 양식장에 바로 넣기 때문에 양식어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양식과 수확의 과정만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용도 그만큼 많이 들어간다. 보통 1억 투자가 된다면 3배 정도 나와야 계산이 맞는다는 것이 양식어민의 이야기이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 하는 농사라 큰 바람이나 파고가 와서 포자가 붙은 굴 껍질을 쏟아버리기도 하고, 태풍이라도 오는 날이면 아예 시설물조차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손해보지 않았다고 하면 2-3천만원 남는 것이고, 농사가 좀 되었다고 하면 7-8천만원 정도 소득을 올린 경우다.

이 경우도 사실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다시 다음해 굴 농사를 위해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빈손이다. 적어도 먹고 쓰고, 다음해 투자할 돈이 손이 쥐어 지려면 1억 투자하면 3억 정도 봐야 한다.

어떤 때는 굴이 모두 폐사해 버려 손을 탈탈 털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굴 농사를 계속하는 것은 몇 년에 한 번씩 재미를 볼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3배 농사가 3-4년에 한 번씩은 온다는 것이다. 그때 그동안 농사 잘못 지은 것을 갚는다. 문제는 그렇게 버틸 수 있는 자원이 없으면 큰 규모의 굴 양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하우스에 모여서 굴을 까고 있는 남성리 아낙들.
ⓒ 김준
겨울철이면 남성리 아낙들은 모두 양식농가 하우스에 모여 굴을 깐다. 경기가 좋아 서울 사람들이 굴을 많이 먹을 때는 하우스에 40-50명의 아낙들이 모여서 굴을 까기도 했다. 지금은 열댓 명이 모여서 굴을 까고 있다. 보통 하루에 20kg 정도 까는데 kg에 2천원을 받기 때문에 4만원 벌이를 하는 것이다. 물론 아주 잘 까는 사람은 6-7만원 벌이를 하기도 한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는 양식 농가 한 집에서 300-400박스가 서울로 올라갔지만 지금은 겨우 30-40개가 올라갈 뿐이라고 한다. 단골 거래처에 약간 보내고, 직접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소매할 뿐이다.

고흥의 굴양식 어민들은 경기에 매우 민감하다. 하루빨리 경기가 살아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외식도 하고 식당에서 굴을 찾기 때문에 고흥굴이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경기가 살아나야 서울 사람들이 굴을 먹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남성리 갯벌 가는 길 : 남성리 갯벌은 나로 1대교 건너기 전 왼쪽에 있다.

                      국도 이용, 광주 - 화순 - 벌교 - 나로도
                      고속도로 이용, 호남고속도로 순천 IC - 고흥 - 벌교 - 나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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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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