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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진 작은 밭이 많은 바닷가 마을에는 밭갈이를 소로 한다.
경사가 진 작은 밭이 많은 바닷가 마을에는 밭갈이를 소로 한다. ⓒ 김준
사곡리는 여수지역 모든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정월 보름날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을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곳이다. 전화를 걸어 방문하겠다는 말에 이장 정종표(54)씨는 볼 것도 없고 간단하게 하는 행사인데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하셨다. 두 시간 이상 전화통을 붙들고 겨우 찾아낸 마을인데 그럴 수 있나.

사곡1구는 어업을 주업으로 하지는 않지만 어촌계가 있고 마을어장을 가지고 있다. 마을어장에서는 주로 꼬막, 바지락, 새꼬막 등으로 공동소득을 올리고 있다. 보름이라 몇 집에서는 대문 앞에 짚을 놓고 밥 한 숫갈, 각종 나물, 과일, 꼬막 등이 어우러진 보름밥이 놓여 있다. 그곳 주민의 이야기로는 산신을 비롯한 온갖 잡귀잡신에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옛날부터 까치나 까마귀에게 주는 것이라고도 한다.

산짐승과 나누어 먹는 보름밥.
산짐승과 나누어 먹는 보름밥. ⓒ 김준
주민들이 만들고 즐기는 축제 '당산제'

당산제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마을축제'인 것이다. 마을에 따라 엄숙하게 유교식으로 치르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무당을 불러 한바탕 걸판진 놀이판을 벌이는 곳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매구라고 하여 풍물들이 마을을 휘졌고 다니는 당산제도 있다. 이러한 마을의례는 부르는 이름도 당산제, 별신제, 도제, 당제, 도당굿, 별신굿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무슨 이름으로 부르던 공통된 것은 마을주민들이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마을축제라는 것이다.

당산제를 준비하는 데는 많은 금기사항들이 있다.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볼 때 '절대 제수품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제관은 '초상난 집에 가지는 않는다', 금줄의 새끼는 '왼새끼를 꼬아야 한다', 음식을 준비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침이 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등. 이러한 금기사항은 마을에 따라 다르다.

그렇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있고, 매구를 칠 만한 사람들이 있고, 제관도 돌아가면서 뽑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가장 기본적인 매구꾼을 꾸리기도 어렵고, 제관을 뽑기는커녕 할 만한 사람을 하나라도 찾기 어려운 것이 시골마을 실정이다.

당산제를 위한 소박한 제물이 차려졌다. 시골에도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서 인지 제상에 올려진 사탕이 이채롭다.
당산제를 위한 소박한 제물이 차려졌다. 시골에도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서 인지 제상에 올려진 사탕이 이채롭다. ⓒ 김준

노인회장이 제를 지내고 있다.
노인회장이 제를 지내고 있다. ⓒ 김준
여기다가 돈은 어떻게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을 봐다가 음식을 장만할 사람이 없다. 모두 노인들만 사는 시골에 누가 나서서 제수를 마련하겠는가. 마을주민들이 하루 동안 먹고 놀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여간 머리 무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나 군에서 만들어낸 달집태우기, 줄다리기가 자리를 대신할 뿐 마을주민들의 모두 모여서 한바탕 놀아대며 한 해 액땜도 하고, 일 년 계획도 나누던 마을축제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것도 마을별로 할당하거나 심지어는 군인들을 동원하고 몇 천만 원의 재정지원을 해서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사곡1리의 당산제도 겨우 그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1시에 시작된 당산제는 아주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마을 회관에서 한 차례 매구를 치고, 한 순배 술판이 벌어진 뒤 다시 매구를 치며 도로 옆 당산나무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전에 간단한 상이 당산나무 앞에 차려졌다. 상 위 제물이라고 해봐야 마른 명태, 멥쌀, 사과, 배, 귤, 사탕, 삶은 돼지고기가 전부다. 매구꾼들이 매구를 치기 시작하면서 한 사람씩 나와서 멥쌀 아래 돈을 놓고 당산나무에 절을 했다.

보통 많게는 2만 원에서 적게는 5천 원을 내놓고 절을 하는데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이렇게 해서 당산제를 하면서 걷힌 돈이 40여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장의 말로는 마을 일로 주민들에게 돈을 걷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유일하게 일 년 중 보름 당산제에서는 서로 돈을 내고 당산나무에 절을 한다고 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빌려서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평소와 다름 없는 복장에 매구를 치는 주민들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평소와 다름 없는 복장에 매구를 치는 주민들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 김준
옛날 매구꾼이 복색(의복)을 갖추고 궁물을 쳤을 때는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하루에 많이 돌아야 서너 집 돌고 나면 하루가 저물었기 때문에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해서 보름 무렵까지 매일 매구를 쳤다고 한다. 집집마다 돌다보면 술상은 기본이고, 쌀과 약간의 돈을 내놓다. 이렇게 해서 모든 돈으로 일 년간 마을을 운영하고 이장을 비롯한 마을 임원들 활동비도 만들었던 것이다.

당산제를 마치고 다시 마을 회관으로 돌아가면서 마을에 유일한 가게에서 지신밟기 흉내를 냈다. 한참 요란스럽게 매구를 쳐대자 주인이 과자와 음료수를 내놓는다. 입담 좋은 매구꾼과 구경꾼들은 술과 안주를 내놓지 우리가 어린아이냐며 더 요란스럽게 매구를 쳐댔다. 다시 길을 되돌아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회관으로 돌아와서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오후 내내 놀이판이 벌어졌다.

당산제를 준비하는 이장과 개발위원장은 당산제가 초라하다면 연신 필자에게 옛날 당산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오히려 화려한 복장을 갖추고 동원된 당산제보다 훨씬 정겨웠다. 그곳에는 정치인도 없고, 기관장도 없다. 오직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준비하고 흥겹게 놀 뿐.

50대 영계 이장과 여성개발위원

어느 마을이나 그렇지만 사곡리 마을도 젊은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그래도 당산제를 구경하는 틈 속에 젊은 영계들을 찾을 수 있었다. 효동마을 이장은 54살이다. 개발위원장 이조년(62)씨는 우리마을 이장은 '영계'라고 자랑한다.

당산나무가 아름다운 사곡리, 도로변에 위치해 여름철이면 운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쉬어간다.
당산나무가 아름다운 사곡리, 도로변에 위치해 여름철이면 운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쉬어간다. ⓒ 김준
사곡리의 젊은 이장 정중표(54)씨는 몇 년 전 아버님을 잃고 마을에 내려와 눌러앉았다. 마을 입구에서 사구실 농원이라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정씨는 마을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장을 맡아야 했다. 젊은 사람이 없는 탓에 사구실 주민들에게 정씨의 귀농은 늦둥이를 본 것과 다름없다.

사구실 마을에 정씨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호(戶)를 이룬 경우도 5가구나 되지만 이들은 모두 여수 공단 등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로 마을에서 잠만 잘 뿐이다. 사곡리에서 여수 공항까지는 10분 거리, 신호만 잘 받으면 15분 정도에 여수 공단까지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주변에 여수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개발위원장의 이장 자랑은 끝이 없다. 마을회관을 신축하는 일이며, 건강센터를 만들어 찜질방과 운동기구를 갖춰 놓은 일 등. 그중 필자에게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여수시나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각종 시설을 신축한 것보다 마을운영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개발위원에 여성을 포함시켰다는 것이었다. 사실 농어촌에서 개발위원의 역할이란 마을주민들 전체가 모이는 총회를 대신하는 의사결정기구이며, 마을 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이다.

최근 일부 마을에서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정책의 하나로 여성 이장을 뽑기도 했다. 전남 도내 6651곳 중 여성 이장은 339곳에 이른다고 한다. 여성 이장이 선출되면 마을에 부업 장려금 500만 원, 마을안길 및 도로포장, 회관 증개축 비용 등이 지원되는 등 각종 사업에 인센티브가 주워진다. 이러저래 여성 이장이 선출되면 4000여만 원의 지원사업이 생기기 때문에 많은 농어촌마을에서 여성이장을 선출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농어촌 마을 총회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설령 남자가 없어 여자가 가정을 꾸린다고 해도 회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곡1리는 여성 이장은 아니지만 여성개발위원이 전체 13명 중 5명이나 된다. 여성개발위원을 선정한 것은 남자들만 회의를 해서 마을 일을 결정하고 나면 꼭 '뒷소리'가 나오고 마을일 추진이 원활하지 못해 이장 정씨가 생각해낸 일이라고 했다.

사실 사곡리에는 나이든 여자 혼자서 사는 가구도 많이 있으며, 노부부가 사는 경우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훨씬 일 처리가 나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젊은 이장이 만나서 일을 보는 것이 수월치 않는 일이다. 이런 때 여성개발위원들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뿐만 아니라 혼자 사는 노인들이 늘어가는 농어촌에서 이들의 일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오늘 같은 당산제를 지내는 날에도 여성개발위원들이 더 적극적이다. 음식과 상차림도 모두 여성개발위원들이 나선다. 과거에는 이장이 부탁을 해야 겨우 가능했던 일들이다.

유치원생까지 포함해 전교생이 28명이 사곡리 분교
유치원생까지 포함해 전교생이 28명이 사곡리 분교 ⓒ 김준
갯벌이 주 소득원인 사곡리

사곡리는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중심에 있는 마을이 사곡1리이다. 바닷가에 자리해 밭이 많고 논이 적은 이곳 마을들은 순천만과 여자만이 연결되는 곳에 위치한 마을들은 마을어장 '보물단지' 갯벌을 가지고 있다.

사곡리 어촌계에는 4개 마을 공동어장이 있고, 이 어장은 마을별로 지선어장이 나누어져 있다. 사곡1리 지선어장은 40ha의 바지락, 꼬막, 새꼬막 양식장이다. 인근에 복촌, 궁항, 입촌, 광암, 봉전 등 바닷가에 접한 마을들은 낙지도 잡고, 석화도 까는 어촌마을들이다.

사곡1리는 어선어업을 하지는 않지만 상인들의 요구나 마을주민들의 필요에 따라서 공동으로 바지락이나 꼬막 작업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양식장에서 2억 4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려 호당 3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사곡리는 일제시대에 목화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까지 이곳에는 목화공장이 있을 정도였다고.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밭농사가 제일 많아 사곡리 포구에는 밭작물을 사기 위한 상인들로 늘 번잡한 곳이었다. 지금도 사곡1리에서 3000평 이상 논농사를 짓는 사람은 겨우 2명에 불과하며 대부분 작은 밭을 일구고 있다. 만일 갯벌이 없었다면 진즉 뭔 일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농사만으로 살기에는 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뻔한 농사에 주민들 호주머니에서 마을운영비를 걷는다는 게 이장으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이래저래 일 년간 마을을 운영하려면 1000여만 원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장 활동비도 사실 주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갯벌에서 나온다. 결국 마을운영하는 데 주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은 거의 없다. 이번 불우이웃돕기 성금 20여만 원도 바지락과 꼬막 작업으로 갯벌에서 나온 공동기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사곡리의 보물단지 '갯벌', 갯것을 팔아 불우이웃도 돕고 마을경비로도 쓴다.
사곡리의 보물단지 '갯벌', 갯것을 팔아 불우이웃도 돕고 마을경비로도 쓴다. ⓒ 김준
사곡1리에는 초등학생 19명에 유치원생 9명해서 전교생이 28명인 작은 분교가 있다. 지금이야 분교라지만 그전에는 전교생이 500명이 넘는 학교였다. 이장과 개발위원장은 마을에 학교가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실 이렇게 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사실 전적으로 갯벌 덕분이라고 한다.

사곡리 전체 낙지잡이, 양식업 등 갯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30∼40여명 된다. 이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갯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들을 붙잡을 소득원이 없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이곳을 떠날 사람들이이다.

정월 보름이면 이곳 학교에 사곡리 4개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별로 줄다리기를 했었다. 지금처럼 마을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한 사람이 이장에 각 반장들로 마을이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곳 초등학교는 자연스럽게 명절에 좋은 놀이터요, 공부를 하려고 직장을 구하려고 도시로 나간 친구들의 모임의 장소였다.

뿐만 아니라 명절이면 체육대회, 각종 노래자랑 등 작은 시골의 초등학교는 단순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습의 공간만이 아니라 도시의 종합문화센터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요즘 지자체별로 대형축제에 수억 원, 작은 축제도 수천만 원이 지출되고 있다. 그 규모도 매년 커지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매년 새로운 축제가 만들어져 그 수도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동원되고 구경꾼에 불과할 뿐 참여하고 즐기는 축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이다.

보름날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즐기는 당산제는 그 비용이 많아도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 지자체마다 축제를 한 개씩 줄이고 그 비용을 마을별로 당산제에 지원한다면 수십 개의 마을축제가 보름마다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당산제만한 마을축제가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사곡리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순천IC - 여수 방면 - 율촌 - 상봉 - 사곡리

칠면초가 군락을 이루있는 순천만과 잇대어 있으며, 오는 길에 순천만의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농주리(관련기사 참조, 요즘 짱뚱이는 어떻게 까탈스러운지)가 있다. 특히 낙조가 아름답다. 인근에 김훈의 칼의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순천왜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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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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