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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빛 : 박진수 학생 그림
고생 끝에 빛 : 박진수 학생 그림 ⓒ 김형태
"직업과 관련지어 하나 더해 볼까? 이번에는 음…육씨가 계장이 되면 육계장(육개장)이 되고, 주씨가 차장이 되면 주차장, 소씨나 우씨, 또는 어씨가 시장이 되면 소시장, 우시장, 어시장이 되고, 장씨가 의사가 되면 장의사가 되지."

나의 언어유희에 이번에도 폭소가 터졌다.

"그러면 정씨는 좋겠네요. 정씨가 교수가 되면 정교수가 아니라도 늘 정교수 소리를 듣게 되잖아요."
"대신 조씨는 안 좋겠다야. 조씨는 교수가 돼도 늘 조교수 신세를 못 면할 테니까."

초희의 말에 영희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철이 말을 이었다.

"아이, 나는 교수되려고 했더니 포기해야 되겠네. 어차피 성이 조씨니 조교수 밖에 못될 거 야냐. 그냥 나중에 사업이나 해야겠다."

녀석의 말에 모두 입을 벌려 껄껄 웃었다. 웃음이 다소 수그러들자, 놓칠세라 노진이 일침을 가했다.

"야, 그럼 너 조사장이나 조회장이 되는데?"

"조사장? 조회장? 그것도 그러네. 그럼 그냥 체육관이나 차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조관장이 되나. 조관장?"

"어쩐지 조간장, 양조간장처럼 들린다."

한철과 노진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야, 나는 그럼 뭐하지. 할 게 없잖아. 그렇게 보면 네 녀석이 최고네. 명씨는 실력이 있든 없는 항상 명교수에 명강사, 명의사 소리를 들을 것 아냐. 야, 노진이 너는 참 좋겠다. 빨리 아부지한테 큰 절이라도 올려 임마. 그리고 이젠 대충대충 공부해도 되겠다."

"그건 또 왜?"

"어차피 너는 돌팔이 의사가 돼도 모두들 명의라고 불러줄 거 아냐 임마. 명의라고. 야, 정말 부럽다. 부러워. 나도 성 바꿔야지 안되겠네. 아부지! 날 하필 조씨 가문에 태어나게 했습니까?"

"아부지? 그건 임마, 영희씨 전매특허잖아. 허락도 없이 함부로 쓰고 있어 이 녀석이. 그리고 성(姓)을 바꾸려면 너는 성(性)에 관심이 무진장 많으니까 기왕이면 성(成)씨로 바꿔라."

"그러면 성교사, 성교수, 성박사, 성사장, 성회장, 성관장, 성기장? 에이, 이 녀석이 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어?"

그러면서 한바탕 한철이 노진과 안고딩이를 하였다.

"어쨌든 소씨가 이래저래 손해보는 것이 가장 많겠어요. 무슨 직업을 갖든지 소기자(속이자), 소시장(牛시장), 소교수(속였수), 소계장(소개장), 소대리(소대가리) 아니냐고?"

"그래도 늙어서는 좋지 왜? 나이가 먹어도 소교수, 다시 말해 젊은 교수로 불러 줄 테니까. 노씨보다는 낫지 않겠어? 노씨의 경우, 젊은데도 자꾸 노교수라고 하잖아."

이번에는 진경과 영희가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러자 초희도 한몫 거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구씨는 늘 구(舊)교수가 되고, 신씨는 늘 신(新)교수, 전씨는 전 (前)교수, 현씨는 현(現)교수가 되겠네요."

"끝이 없네요. 이젠 그만 해요. 더 이상 계속하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이라고 하겠어요."

영희의 마지막 마무리 말로 성(姓)과 직업을 관련 지은 언어유희는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래서 다음은 이름과 관련된 언어유희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봄날의 아지랭이를 무척 좋아했대. 그래서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애기가 생기면 첫애는 '아지'라고 짓고, 둘째애는 '랭이'라고 지으려고 했대. 그런데 그 여자가 하필 강씨 성을 가진 남자를 만난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 강아지, 강 냉이? 하하하"

한철이 이렇게 급하게 끼어 들며 말했다.

"내가 아는 대학 교수 중에 '애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 그런데 그 교수 성이 뭔지 알아?"

"뭔데요? 빨리요."

이번에는 노진이 말을 꺼내자 진경이 무척 궁금하다는 듯 다그쳐 물었다.

"장씨였어요."

"그럼, 장- 애- 자- 호호호."

진경은 한바탕 웃고 나더니 자기도 비슷한 것을 알고 있다며 소개했다.

"제 친구 중에 이름이 '신숙'으로 언뜻 보아 아무 문제없잖아요. 그런데 성이 뭔지 알아요?"

그러자 영희가 익히 안다는 듯 말했다.

"임씨, 아니야?"

"맞아. 임씨. 그래서 임신숙이야, 임신숙!"

"그 비슷한 것은 왜 많잖아. '인숙'이란 이름인데 성이 '여'라서 여인숙, '치국'이란 이름인데 성이 '김'이라서 김치국, '신애', '시내'라는 이름인데 성이 '조'나 '한'이라 서 조신애(조심해) 한시내(한심해) 등‥‥‥."

진경의 대답에 이렇게 영희가 자기도 알고 있는 이름들을 소개했다. 나는 이번에는 각도를 달리해서 아는 예화 하나를 들었다.

"우리교회에 곽정신이라는 애가 있거든, 성과 이름 어디를 봐도 아무 문제 없잖아? 그런데 그 집에 전화를 하면 문제가 되는 거야. 거기, 정신이네 집이죠? 정신이 지금 있어요? 정신이 지금 밖에 나갔다. 그럼, 정신이 언제 들어오는데요? 글쎄, 좀 있으면 들어오겠지 뭐."

"하하하! 호호호!"

다시 폭소가 터졌다. 내 말에 힌트라도 얻었다는 듯, 진경이 예화를 이어갔다.

"제 친구 동생의 이름이 한재길이에요. 역시 성과 이름 아무 문제없는 거 같잖아요. 그런데 이름을 부르면 문제가 돼요. 한번 불러보세요?"

"재길아, 재길아, 꼭 제기랄 하는 것 같네."

노진이 진경의 말대로 불러 놓고는 괜시리 멋적어 했다.

"생각난 김에 나도 하나 설해볼까? 여자들이 있어서 말하기 조금 곤란하긴 한데 ‥‥‥."

한철이 이렇게 뜸을 들이자 노진의 재촉이 빗발 같았다.

"뭔데 그래 임마, 빨리 말 못해. 그렇게 뜸을 드릴 거면 아예 말을 말든지? 아 어 서 빨리 얘기해. 밥 다 타겠다."

"그래, 말 나온 김에 까짓 것 얘기하지 뭐. 왜 옛날 고 3 때 국사선생님한테 들은 건데."
"국사 시간에? 네가 수업 시간에 들은 것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단 말야. 야, 이거 놀라운 사건인데. 대체 뭐야? 되게 궁금하다야."

노진이 한철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 비아냥거리듯 얘기했다.

"너 이 자식, 공부 좀 한다고 나를 아예 바보 천치로 아는구나. 이래 봬도 임마, 딴 건 잘 기억 못 해도 여자와 성에 관련된 얘기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한다 임마!"

"그래, 미안하다. 하기사 그쪽 방면은 네가 나보다 한 수 위지. 인정한다 인정해."

두 녀석이 이렇게 물고 뜯다가 한참만에야 한철이 본론을 얘기했다.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31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현직 국어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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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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