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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비도 오는데 어딜 가자는 거야. 밑도 끝도 없이…."

"글쎄, 잔말 말고 따라오기만 하라니까… 어? 왜 이래 이거, 아까까지 잘 열렸는데 이 차가 갑자기 먹통이 됐나? 정말 이상하네."

가까이 가보니 녀석이 웬 검정 고급 승용차 앞에서 용을 쓰고 있었다.

"어 그것 참 별일이네."

그러면서 승용차를 발로 한 번 세게 차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그래, 왜 그러는데?"

우리가 궁금해서 그렇게 묻자

"아니, 우리 아부지 자가용인데 잠깐 끌고 나왔거든, 그런데 이게 이상하게 말을 안 들어 먹네. 차 문이 안 열린단 말야."

한참 동안 씨름하였으나 끝내 허사였다. 오히려 열쇠만 점점 망가질 뿐이었다.

"어떤 자식이 아마 이 열쇠구멍에 이쑤시개라도 쑤셔 넣었나봐.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문이 안 열릴 수가 있나."

그러더니 녀석은 공중전화로 얼른 달려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얼마 후 오토바이를 타고 한 사람이 도착했다. 그가 한참 손을 보더니 새 열쇠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제서야 차문이 열렸다.

무조건 타라고 해서 우리는 엉겁결에 짐짝처럼 몸을 실었다. 녀석은 시동을 걸자마다 그대로 내달려 유성시내를 빠져나와 갈마동과 서대전을 지나 보문산으로 향했다.

"너 이 녀석, 차 운전하는 거 자랑하려고 그랬구나. 맞지?"

노진이 이렇게 묻자,

"나 아니면 너희 같은 촌뜨기들이 언제 이런 좋은 차 타보겠냐? 이 형님이 알아서 좋은 구경시켜 줄 테니까 부하들은 그저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느니라. 일단은 전망대에서 올라갔다가 그 다음에 유락통으로 가자"

녀석은 기고만장해서 이렇게 대답을 했다.

"뭐야, 이 자식이 누구 앞에서 형님이래! 너 나한테 한대 맞고 싶냐?"

노진이 벌컥 화를 내는 것을 지금은 운전 중이니 따질 것이 있으면 있다가 내려서 따지라며 내가 노진에게 참으라고 하면서 말렸다. 대신 나도 한 가지 물었다.

"너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나 하고 타고 온 거야, 그리고 면허증은 있는 거고?"

"야, 말씀드리면 순순히 차를 내주겠냐? 울 아부지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차인데, 출장간 사이 내가 살짝 끌고 나왔지. 또 면허증은 무슨 면허증이야 운전만 할 줄 알면 되지."

"그럼 너, 집에 얘기도 안하고, 거기에 무면허까지. 야, 당장 세워! 우리 내리겠어."

"내리고 싶으면 내려봐. 재주 있으면 내려보라구."

"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경찰한테 걸리면 어쩌려구 그래."

"야 걱정 붙들어 매라. 경찰들을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릴 하냐. 야, 이 차 타고 나오면 경찰들도 모두 경례를 한다 경례를. 걔들이 똥차나 가지고 시비하지 이런 고급차는 아예 건들지도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를 마."

그 사이 차는 빠른 속도로 보문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길이 좁아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다행히 비는 거의 멈춰 있었다. 녀석이 가자는 대로 보문산 전망대까지 갔다.

"왜 진경씨는 안 데려왔어요?"

영희가 물었다.

"몰라요. 삐졌나봐요. 내가 지난 번에 후배 수영을 좀 가르쳐줬는데 그걸 보더니 괜히 질투예요. 속좁게시리"

"야 임마, 그러니까 처신을 똑바로 해야지. 후배 수영 교습은 왜 네가 시키냐? 네가 무슨 강사라고 되냐?"

노진이 그렇게 조언하자 녀석은 오히려 큰소리치며 대거리를 했다.

"왜 이래 임마, 이 녀석이 나를 아주 우습게 보네. 내가 이래 뵈도 임마, 수영강사 자격증에 테니스, 탁구, 태권도, 볼링…. 없는 자격증이 없다, 없는 자격증이 없어 임마!"

"곧 죽어도 큰소리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 임마!"
"야 나둬, 싫으면 말라고 해. 어디 여자가 저 하나 뿐이냐. 줄줄이 따른다야 처치 곤란할 정도로"
"그래 잘났다 잘났어 얘길 꺼낸 내가 잘못이지."

한철과 노진이 이렇게 진경 문제로 한참을 티격태격 하였다.

비가 오고 나서 날까지 저물자, 대전시내가 하나의 거대한 호수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피어나는 불빛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 같았다.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에는 별 하나 없고 검은 천으로 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의 별이 모두 지상으로 추락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시내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녀석은 별안간 술과 음료수가 차 안에 있다며 가지러 간다고 내려갔다. 그런데 기다려도 녀석이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내려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왜 또 차문이 말썽이냐?"
"오늘 따라 참 이상하네. 정말 괴신이 곡할 노릇이야. 내가 분명히 술과 음료수, 그리고 안주거리를 가져다 실었는데 없단 말이야"

짐칸까지 열어젖힌 녀석은 노진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도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 이거, 너희 아버지 차 맞기나 한 거야"

노진이 지나가는 말로 농담처럼 말했다. 그때서야 차량번호를 확인한 녀석의 몸이 별안간 돌처럼 굳어졌다.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데."

"이거 우리 차 아닌가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우리 차는 대전 3트로 시작하는데, 이 차는 잘 봐 3투잖아"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지금껏 자기네 차도 아닌 것을 몰고 다니며 기분 냈단 말야. 오, 하느님 맙소사!

덧붙이는 글 |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8회에서 계속됩니다.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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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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